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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성과 염치: 표현의 자유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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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이창훈 (211.♡.4.136)
    댓글 댓글 30건   조회Hit 1,290회   작성일Date 25-01-12 13:58

    본문

    인간이 누리는 시간과 공간은 유한하다.

    내가 무엇을 표현하면 다른 누군가가 사용할 시간과 공간이 줄어 든다.

     

    100분 중 60~70분을 혼자 말해 놓고선

    "내가 하고 싶은 말 하는데 왜 더 못하게 막냐" "표현의 자유 억압하냐"는 사람은

    자신이 차지하는 공간과 시간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거나

    80 90분까지 독재하려는 염치 없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상 ""는 다른 존재의 자유를 억압한다.

    다른 이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 방법은 내가 사라지는 방법뿐이다.

     

    이곳에서 살아 갈 작정이라면 나는 "서로가 서로를 억압하면서도 어떻게 같이 더 잘살지"를 질문해야 한다.

     

    d60fbc0ee703f6db333a49f79727f0a3_1736657610_3853.jpg 

    René Magritte (1939): Time Transfixed


    ----------------##

    최진석 교수는 질문하는 자가 건너 간다고 말한다.

     

    기본학교 3기 학생 중 (수업 시간에) 독보적으로 많이, 오래 질문한 자가 있다.

     

    입학식과 졸업식을 제외하면 (3기 기준) 최진석 교수의 수업은 총 14회였으며 매 수업은 식사와 산행을 빼고 4시간씩이었다.

     

    질문 1:

    이 학생 혼자 질문 기회를 60~70% 차지할 때 3 16명이 건너가는 총량이 클까

    이 학생이 염치를 알고 30~40%의 기회만 차지할 때 3 16명이 건너가는 총량이 클까.

     

    질문 2:

    이 학생이 개인별 시간-공간이 좁았을 (총인원 30명 안팎) 2기 소속으로 60~70%의 기회를 넘보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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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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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한상도 (2024.11.22): 개성과 이익
    https://nwna.or.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2268

    (댓글 中)
    "다른 누군가와 사회를 이루면서도 내 개성과 자유가 100% 그대로라면 1인 독재 체제에서 내가 그 1인 독재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창훈과 경만이가 사용한 글자 수는 [이창훈: 1048자, 경만이: 3323자]입니다. 한정된 공간을 누가 과도하게 점유하고 있나요."

    profile_image

    노경민님의 댓글

    노경민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역시 이번에도 왜곡과 날조로 승부하시는 ㄷㄷㄷㄷ

    전제부터 정정하고 갈게요.
    1. 사람 1이 질문을 많이 한 이유는 책임감 때문이다.
    2. 사람 1은 질문을 혼자 독점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빼앗지 않았다.

    1) 사람1은 자기소개 때, "우리가 리더의 가면을 쓰고 수업에 임했으면 좋겠다. 질문을 통해 수업 분위기를 전화하고 주도하기 위해 노력하자. 그래야 다 같이 성장할 수 있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람 1은 본인이 한 말에 책임지고자 초반에 적극적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다만 주에 하나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던진 질문은 수준이 낮았습니다. 질문을 뜻을 굳이 설명하자면, "봐바. 이런 바보 같은 질문도 답해주시지? 너희들도 해봐!" 같은 뉘앙스에 가까웠습니다.

    2) 항상 질문을 많이 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교수님이 사람 1을 직접 지목하며 "질문 한 번 해봐!" 라고 하셨지만, 사람 1은 "질문할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라고 거절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교수님은 "사람 1! 요즘은 질문을 안 하네?", "사람 1, 오랜만에 질문하네?" 같은 식으로 계속 말을 걸어오셨습니다. 이에 몇몇은 사람 1을 향해 "왜 질문을 안 해요?" 라고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기회를 줘야죠." 라고 답했습니다.

    사람 1이 원하는 것은 본인이 질문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질문이 쏟아지는 풍경을 원했습니다. 그래야 본인이 떠올려보지도 못한 새로운 생각들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사람 1이 기본학교에서 가깝게 지낸 사람들이 질문은 많이 하지 않았지만, 교수님의 말에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되짚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죠. 쌩뚱맞게 그림을 그리겠다고 선언한 동지, 장르를 만들겠다고 덤비는 사업가가 대표적이죠.


    결론)
    이번에도 왜곡, 날조하셨습니다.
    질문할 기회를 빼앗긴 사람이 이 글을 작성했다면 모를까, 질문도 많이 하지 않았죠.
    사람 1이 모든 질문을 독점했다면 모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죠.

    고로, 질문에 답할 가치는 없고, 정정할 필요는 있어 이렇게 댓글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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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노경민"이 리더를 맡으면 바보짓을 책임지고 해내겠군요.

    "노경민"이 일부러 수준 낮은 질문을 던졌다면,
    그 문답을 듣고 있던 (노경민 포함) 16명은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profile_image

    노경민님의 댓글의 댓글

    노경민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현실의 이창훈은 왜곡과 날조를 일삼고 있으며 가짜뉴스를 당당하게 유포했죠.
    단체 채팅방 또한 허락 없이 유출해놓고 사과 한 마디 없죠.

    이창훈은 제가 단톡방에서 100만 원을 걸고 붙어보자고 했을 때에도 비굴하게 도망갔죠.
    아이러니 하게도 단톡방에서 이창훈님을 지지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죠.
    참고로 저에게 간접적으로 지지의사를 표명한 사람은 7명 정도였습니다. 제가 아싸처럼 지냈음에도 말이죠 ^_^b 거기에 제가 저를 찍어달라고 하면 찍어줄 사람이 2명 있으니 투표를 했으면 제가 100% 이겼겠죠.
    반면에 이창훈은 모든 모임과 술자리에 참석할 정도로 사이 좋게 지내려 노력했는데.. 이창훈을 지지한다고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있었나요?
    이게 현실입니다 ^_^

    이창훈은 이곳에서 인신공격, 왜곡과 날조, 가짜뉴스 유포, 상대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등 무한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타인의 사소한 말 한 마디에 제약을 걸려고 하는 태도가 우습네요.
    여기서 창훈님을 지지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쎽스섹스를 당당하게 외치는 저보다 부족할 것입니다.
    혼자 자폭하는 모습이 안쓰럽네요.

    왜곡과 날조한 게 드러났으면, 가짜뉴스라는 게 드러났으면, 정정하려는 태도라도 보여야 합니다.
    이게 책임감입니다. 무책임하고 비겁한 이창훈님 ^^


    추가로 이창훈이 쓴 글을 다시 볼게요. "QWER은 얼마나 추상적인가", (https://nwna.or.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2173&sfl=wr_subject&stx=qwer&sop=and)
    이 글에서 추상의 개념을 모르고 쓰셨어요.
    추상은 개별적인 대상에 일반적인 속성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강아지는 개별적인 개체라면, 동물은 이를 포함하는 추상적인 개념이죠.
    "QWER의 안무와 노래가 강서구민의 덕행이나 대학 총장의 덕담보다 더 추상적이다." 라고 하셨는데, 이건 추상이 아니고 영향력이죠.
    추상은 의미의 일반화 과정인 것이지 단순 크기나 범위가 크다는 걸 의미하지 않아요.

    논증구조가 참 혼란스러운데, 추상과 구체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 것 같아요. 더 공부 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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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투표를 제의하시길래 공평한 줄 알았더니
    뒤에서 사전 선거 운동을 하셨군요 :)
    공모자가 9명 있었다는 건가요!

    저는 서울 강서구민의 덕행 또는 한국 대학 총장의 덕담보다
    QWER의 안무와 노래를 닮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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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경민님의 댓글의 댓글

    노경민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사전 선거운동한 것도 아니고요ㅋㅋ
    제가 단톡방에 투표 제의 했을 때, 저를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보내신겁니다.
    대놓고 "경민님 찍을거임!!" 이런 건 아니고요. 간접적으로 "저는 부도덕 편에 가까워요." 같은 식으로 의사를 보내셨어요.

    제가 왜 글을 길게 쓰는지 알겠죠?
    고작 한 줄 마저도 그렇게 읽고 오해하시니까, 제가 길게 설명하는 거잖아요.
    물론 제가 오해하도록 쓴 것도 잘못이지만.

    무튼, 저는 창훈님이 QWER의 안무와 노래를 닮으려 하는 모습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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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23.♡.126.126) 작성일 Date

    "철학이 살 찌면 정치고
    정치가 살 빼면 철학이다."

    경민 형님처럼 추접하게 생각을 살찌우면
    정치도 추접하게 하나 봅니다.

    생각에서 기름기를 빼고 철학에 가까워져야
    2025년 새해에 건강을 되찾지 않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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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경민님의 댓글의 댓글

    노경민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그렇지 않습니다. 추잡한 건 이창훈이죠.
    책임감도 없이, 비겁하게 도망만 다니니까요.
    왜곡, 날조, 가짜뉴스 유포, 채팅방 유출까지 해놓고 정정도 안하고, 사과 한 마디 없잖아요?

    사실 이런 질문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왜 자유를 제한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걸 왜 새말새몸짓 자유게시판에서 주장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그토록 물었는데, 본인이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 하셨죠?
    그러니까 설득력도 떨어지고 창훈님 곁에 아무도 없죠.

    추가로 "철학이 살 찌면 정치고 정치가 살 빼면 철학이다." 라는 최진석 교수님의 말을 또 오독하셨는데요. 이쯤 되니까 창훈님이 의도적으로 왜곡과 날조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독해력, 문해력, 지식 수준 차이인지 모르겠습니다. 창훈님은 말을 줄여야 한다는 뉘앙스로 말씀하셨는데, 저 말은 그 뜻이 아닙니다.

    철학이 살이 찐다는 말은 현실 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살이찌면, 철학은 추상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실제 현실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가 된다는 말이죠.
    반대로 정치가 살을 빼면 철학이 된다는 말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치 행위에서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차원으로 축소된다는 뜻이고요.
    제발 좀 알고 말하시길 바랍니다. 부끄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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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7.♡.86.252) 작성일 Date

    훈고하는 태도로 사십시오.
    저는 창의하는 태도로 살겠습니다.

    #한상도 (2024.10.08): 갈아만든 떡
    https://nwna.or.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2109

    (댓글 中)
    "저는 최진석 교수님의 기본학교 3기 수업보다 상도님의 [갈아만든 떡]이 '훈고'라는 재료를 더 탁월하게 다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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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경민님의 댓글의 댓글

    노경민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창훈님은 억압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훈고적인 태도고요.
    저는 자유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창의하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왜곡, 날조, 가짜뉴스 유포, 개인정보 및 사생활 침해에 준하는 카톡 채팅방을 유출해놓고 염치와 지성을 논하는 게 창의인가요 ㄷㄷ

    대놓고 떠먹여주는 김태유 교수님 강연도 왜곡 날조해서 "정책의 본질은 자유의 제한이다" 같은 말을 하는 걸 창의로 생각하시는 건가요?
    최진석 교수님의 "철학이 살 찌면 정치고 정치가 살 빼면 철학이다." 라는 말도 똑바로 이해 못해서 말을 줄여야 한다고 이해하시는 걸 창의라 생각하시는 건가요?
    지금 창훈님이 하시는 대부분의 말은 해리 G. 프랭크퍼트가 말하는 개소리에 가깝습니다.

    일단 창의라는 것은 지식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지금 창훈님은 기존의 지식도 똑바로 소화 못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QWER은 추상적인가 같은 이상한 말을 하시잖아요. 물론 이해합니다. 최진석 교수님의 말씀에 모두가 집중할 때 병 든 닭처럼 꾸벅 꾸벅 졸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니까요.

    근데 창의하는 태도로 사는 창훈님은 응원합니다. 바이올린 켜는 모습이 가장 멋있었다는 생각은 아직도 변함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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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23.♡.212.249) 작성일 Date

    노경민 (2025.01.07): [서평] <비밀>, 폴 트루니에 지음
    https://www.nwna.or.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2373

    위 글을 읽으며 본인의 이번 달 목표를 되새겨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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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경민님의 댓글의 댓글

    노경민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이번 달은 실패했습니다ㅋㅋ 다음 달을 노려야 할지도!?!?!?
    (*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를 통해 혼자 박박우기며 고집부리는 이창훈과 다른 사람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냄.)

    그런데 누군가가 왜곡, 날조로 저의 존엄성과 주체성을 공격했다면, 이에 대응해야죠.
    저는 누구처럼 비판이 들어왔을 때 논점을 회피하며 도망치는 비겁쟁이가 아니여서요. ^_^b
    이번에도 이창훈은 제 비판에 똑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말을 돌렸다.
    뭐 여기서 가장 쪽팔린 사람은 본인이겠죠.

    일단 이창훈님은 왜곡, 날조, 가짜뉴스 유포를 시작으로 상대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채팅방 유포에 대해서나 다시 돌아보시죠.


    지금까지의 이창훈님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창의하는 태도로 살겠다고 하셨으니, 이를 응원하는 마음에서 정리한 것입니다.
    이것도 정성 없으면 못합니다. (자화자찬 맞음)


    1. 의도의 모호함

    이창훈은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함. 이유와 근거가 거의 없음. 소통의 기본 원칙을 어겨놓고 대화와 토론의 목적을 흐리게 만들어 놓음.
    이창훈은 "저는 전달하고픈 바를 충분히 전달했고, 제 글에서 무얼 읽어 낼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라 말하며,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지 않고 독자에게 해석의 책임을 전가하여, 소통을 혼란스럽게 만듦.


    2. 책임 회피

    책임과 진정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본인은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논리적 근거와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며, 질문에 직접적으로 답하지도 못함.
    이창훈은 "스스로의 존재를 지우는 자의 말과 행동은 언제든 없는 셈으로 바뀔 수 있다."라는 발언을 통해 익명성을 비판했으나, 정작 자신의 책임감 관련 비판은 답변을 회피.
    하지만 이창훈은 개인의 책임과 자유의 관계를 강조하며 도덕적 주체로서의 태도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의 과거 발언과 행동에서 이러한 태도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3. 내로남불, 이중적인 태도.

    이창훈은 개인의 책임과 자유의 관계를 강조하며 도덕적 주체로서의 태도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의 과거 발언과 행동에서 이러한 태도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ex)
    1) 독서모임에서 책 안 읽음. 서평도 안 씀.

    2) 왜곡, 날조, 가짜뉴스 유포, 카톡 채팅방 유출 등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지 않음.

    3) 김태유 교수의 강연 내용 왜곡, 최진석 교수의 발언 오해 등 사실 관계에서 잘못을 저질렀으나 이를 인정하지 않음. 자신에게 적용되는 책임은 회피하면서 상대방의 책임과 진정성을 비판하는 태도는 모순적이고 신뢰를 저하시킴.


    4. 왜곡, 날조의 일상화.

    1) 이창훈은 김태유 교수님의 강연 내용을 인용하여, "구성원의 자유: 내생적 성장"과 "사회의 엄격한 관리: 외생적 성장"이라는 식으로 논지를 전개했다. 하지만 김태유 교수의 실제 강연 내용과는 다르다. 실제로 김 교수는 외생적 성장을 국가의 정책적 개입(산업 정책, 보호무역 등)으로 설명했으며, 구성원들의 말과 행동 통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2) 이창훈은 최진석 교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철학이 살 찌면 정치고, 정치가 살 빼면 철학이다."를 "말을 생략하라"로 왜곡된 메시지를 전함. 하지만 최진석 교수님은 철학이 살찐다는 것은 철학이 구체적 현실과 만나 응용되고 실천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철학적 사유가 이상적인 논의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 행동으로 나아갈 때 정치로 변모한다는 뜻이다.

    3) 독서모임, 기본학교에서의 일도 왜곡 날조함.

    이창훈은 독서모임에서 '관전자'였다고 주장함.
    하지만 독서모임 구성원의 권리를 행사했으므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는 구성원이 맞다.

    이창훈은 "기본학교 3기 학생 중 (수업 시간에) 독보적으로 많이, 오래 질문한 자가 있다." 라고 말하며 다른 이의 기회를 빼앗은 것처럼 왜곡 함.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음.

    4) 이창훈은 상대의 글마저도 왜곡했다. 그는  상대의 글에서 특정 문장이나 짧은 구절을 떼어내어 자신의 관점에 유리하게 해석하거나, 본래 의도를 벗어난 맥락으로 왜곡했다.


    5. 상대를 함부로 평가하는 태도.

    이창훈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새로운 가능성을 짓누른다." 같은 식의 발언은 상대를 함부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주장과 비판은 논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창훈은 이유와 근거도 없는 무지성 비난에 가까웠다. 상대가 그 이유를 물었음에도 답변하지 못했음.


    6. 논리의 일관성 부족

    이창훈은 '책임', '용기'를 강조하면서, 정작 본인은 책임지지 않는 발언과 행동을 함. 더 나아가 본인의 글이 모호하다는 점을 간과하고 상대방의 이해 부족으로 문제를 돌림.
    본 글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억압하면서도 어떻게 같이 더 잘살지 질문해야 한다" 고 결론을 내렸지만,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음.
    다시 말해, 추상적인 개념만을 제시하고 구체적 실천 방안을 제공하지 않아, 텅빈 공허한 빈수레에 가까움.


    7. 폭군의 자세

    글은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다루지만,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발언을 억압하려는 태도를 암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진정한 논의와 표현의 자유를 지향한다면,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며 대화의 균형을 유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논리를 강화하기 위해 타인을 억압하는 방식은 오히려 자신의 주장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렸다.


    결론
    1. 이창훈은 명확한 근거와 이유를 통해 자신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2. 존중 받고 싶다면 타인의 입장부터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3. 주장과 행동 간의 일관성을 유지할 줄 알아야 한다
    4. 철학적 사유만하지 말고 구체적인 현실로 연결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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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우영님의 댓글

    장우영 아이피 (211.♡.181.17) 작성일 Date

    창훈님 안녕하세요?

     말씀하신 자유에 관해 이야기해 볼게요. 민주주의가 만들어진 이래로 우리는 어느 정도의 자유를 보장할지에 대해 논의해 왔어요. 당연히 내 주먹이 상대방의 코앞에 닿기 전까지의 자유만 허용되어야 하지, 상대방의 얼굴을 가격하는 자유가 보장되어서는 안 되겠죠. 그러나 저는 창훈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서로 얼마만큼 "억압"해야 할지 논의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억압"보다 "자유"를 선행에 두고 얼마나 최대한 자유를 보장해야 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봅니다. 똑같은 말인 것 같지만, 무엇을 선행에 두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상반되게 나타납니다. 이러한 사례는 최진석 교수님이 말씀하신 한국의 과도한 규제에서도 볼 수 있어요. 생각이 안 나실 수도 있으니 다시 설명해 드릴게요. 한국은 어떠한 신기술이 나오면, 신기술을 먼저 사용해 보고 부작용에 대해 규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규제를 만들고 신기술을 적용한다고 하셨어요. 예시로 드론 산업을 설명하셨고요. 드론 산업은 처음에 한국이 최대 강국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과도한 규제가 시작되었고 점점 쇠퇴해갔습니다. 이에 반해 중국은 드론 사용에 자유를 부여하고 그 후 일어나는 부작용에 대해 규제 진행했죠. 결과로 전 세계 드론 산업은 중국이 최대 강국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억압"을 먼저 생각하느냐, "자유"를 먼저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선도 국가가 될 수가 있느냐 중진국으로 남느냐로 나뉜다고 생각해요. 내 주먹이 얼마나 상대방의 코 가까이 갈 수 있는지 논의해야 하지, 내 주먹을 얼마나 뻗지 말아야 할지를 먼저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적용하여 질문에 답변을 드리자면, 최진석 교수님은 어떠한 억압도 지시하지 않으셨죠. 그래서 애초에 1인당 질문 수 제한 같은 억압은 없었습니다. (*저는 우리의 수업 도중 한 명의 학생이 과도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가정해 볼게요) 자유로운 질문과 대답이 있었고 이것에 불편함을 느꼈다면 창훈님이 교수님께 제안하면 됩니다. 기본학교에서 억압할 수 있는 주체는 최진석 교수님이니까요. 그렇다면 교수님께서 판단하시겠죠? 어떤 것이 건너가는 총량이 큰 것인지를요. 그 후에, 교수님과 우리들간의 발전된 토론이 있을 수 있어요. 저는 이러한 방식의 진행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요, 창훈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애초에 "억압"부터 시작해서 1인당 질문 수 제한을 두었으면 어땠을까요? 혹은 그러한 규제가 없었더라도 다들 질문을 주저하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어땠을까요?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로운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요? 감히 예상컨대 우리 기본학교는 대학교, 고등학교 수업과 같이 질문 없는, 주입식 교육이 되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교수님이 지향하시는 바도, 건너가기도 "억압"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서는 생각의 질과 양이 저하될 것이라고 확신해요.

     따라서 본 질문에서 말씀하시는 “학생이 먼저 염치를 알고 질문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제 귀에 ”자유 보다는 억압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로 들려요. 질문 위 본문에서 작성하신 내용도 그렇구요. 본 게시판이 ”억압” 게시판이 아니라 “자유” 게시판인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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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우영님 안녕하세요 :)

    기본학교 3기 때는
    토론하다가 강냉이를 집어 던지는 자유와
    숙소 안에서 담배 피는 자유까지 보장됐습니다.

    제가 형님들 눈치 안 보고 할 말 하는 것도 기본학교의 자유 덕입니다.

    2023년 1월, 기본학교 3기 수업 중에 제가 경민 형님의 질문을 막았다면 "과도한 규제"겠지만
    2025년 1월까지 2년 동안 "노경민"이라는 신기술을 경험해본 후 (경민 형님 코 정중앙에) 뻗는 제 주먹은 "자유 이후의 부작용에 대한 규제"에 가깝겠네요.

    무한에 가까운 자유를 2년여 누렸으니 이제 선을 그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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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우영님의 댓글의 댓글

    장우영 아이피 (49.♡.190.134) 작성일 Date

    먼저 강냉이를 집어던지는 폭력, 숙소 안에서 담배 피는 비윤리적인 행동과 노경민님의 글을 동일시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노경민님의 글은 어떠한 폭력도, 비윤리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형님들 눈치 안 보고 할 말 하는 것도 기본학교의 자유 덕입니다." 이 말은 제 말에 동의를 하시는 거군요?! 억압보다는 자유로운 기본학교가 있었기에 눈치 안보고 할말하는 지금의 이창훈님이 존재할 수 있는거잖아요. 그렇다면 본문의 수정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곳에서 살아 갈 작정이라면 나는 "서로가 서로를 억압하면서도 어떻게 같이 더 잘살지"를 질문해야 한다.
    -> 이곳에서 살아 갈 작정이라면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자유롭게 하며 같이 더 잘살지"를 질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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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7.♡.58.226) 작성일 Date

    이창훈의 자유가 노경민의 자유를 억압하듯
    장우영의 자유가 이창훈의 자유를 억압하네요.

    공간과 시간을 그대로 두고
    너도 나도 자유를 넓히다 보면
    서로의 자유를 침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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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우영님의 댓글의 댓글

    장우영 아이피 (49.♡.190.41) 작성일 Date

    맞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자유와 그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규제인거죠. 그런데 이창훈님이 지금 말씀하시는게 본문 내용이랑 상반되는거잖아요.

    기본학교의 자유 -> 할말하는 이창훈 탄생
    자유게시판의 자유 -> 서로의 자유에 대해 논하기

    “자유”에서 출발해서 “억압”으로 갈 수 있는 것이지 애초 “억압” 부터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내용의 수정은 사실 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창훈님이 하시는 행동과 같이 저도 한번 빨간펜을 드는 척 해봤습니다. 억압을 당하니 기분이 썩 안좋으시죠? 우리가 해야할 것은 서로의 생각에 빨간펜으로 “억압”을 먼저 해야하는것이 아니라 “자유”를 선행에두고 받아들이는 지성인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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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7.♡.86.252) 작성일 Date

    마치 이번에 처음 빨간펜을 들었다는 듯 말씀하시네요.

    벽돌맨 (2024.10.17): "이 글에 박혀져 있는 "반대 따봉" 두개가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어떠한 글에도 박혀지 있지 않은 “반대 따봉”이 왜 이 글에만 박혀져 있을까요?"
    https://nwna.or.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2141

    벽돌맨 (2024.11.15): "지금 창훈님께서는 자유의 가치를 가벼이 여기시는데, 말과 행동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사회는 공산주의 사회입니다."
    https://nwna.or.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2223

    저는 기분 좋으려고, 힐링 하려고 기본학교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탁월해지려고 기본학교를 찾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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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진님의 댓글

    박성진 아이피 (121.♡.160.219) 작성일 Date

    도쿄의 크리스마스이브 밤. 수많은 크리스마스 일루미네이션이 거리를 화려하게 밝혔음에도 이상하게 크리스마스다운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왜 전혀 크리스마스 같지 않을까 고민하며 긴자의 유명한 사거리로 들어섰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트럼펫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한 중년의 남성 악사가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의 자유로운 선율이 긴자의 거리에 울려 퍼지자, 크리스마스의 설렘이 제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심지어 평소 길거리 연주에 크게 반응하지 않는 일본인들조차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현장의 분위기를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자유로운 모습과 단순한 트럼펫 연주 하나가 거리 전체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습니다.

    그 길거리 연주는 밤 10시 무렵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윤리" 기준으로는 부도덕한 행위로, 다른이의 "자유"를 침범하는 행위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연주는 합법적인 버스킹이었고(공식적으로 신청된 연주), 주택가가 아닌 상업지구에서 이루어졌으며, 지나치게 큰 소음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연주의 진정한 가치는 이런 조건들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연주의 가치는 자유에 있습니다. 나머지 조건들은 그 자유를 누리기 위한 사회가 정해놓은 책임 혹은 규제일 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길거리 연주를 볼 때 자주 구경꾼들이 연주가를 평가하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사람들은 연주가의 자유로운 모습이 아닌 다른 것들에 더 집중하곤 합니다. (외모, 실력, 연주 장소, 멘트, 시각적 요소 등) 정작 그러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대중 앞에 나설 용기조차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유행과 밈에 지나치게 몰두하며, 가짜 정보에 쉽게 현혹되기도 합니다. 결국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유가 무엇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합니다.

    이야기가 다소 길어졌지만, 결국 자유보다 억압에 가치를 치중하면 정작 억압할 자유조차 사라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버스킹 문화가 살아나지 못하고, 재즈의 거장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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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23.♡.87.73) 작성일 Date

    기본학교 3기 졸업식 날 축구 형님 또는 창혁 형님 기획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한 기억이 나네요.
    작곡을 전공한 동근 형님께서 반주도 넣어 주셨는데 저는 두세 마디 지나고부터 가만히 얼어 있었습니다.
    이런 황당한 연주에도 박수를 보내는 기본학교 문화를 타고 거장이 여럿 나타났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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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성진 아이피 (121.♡.160.219) 작성일 Date

    도쿄에서 본 중년 악사분도 아마추어셨습니다. 창훈님의 연주는 황당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졸업식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펼쳐준 창훈님의 행동에 감사의 박수를 보냈을 뿐입니다.

    우리가 높은 사유의 시선을 가지고 현실을 논하고자 하지만, 실제 현장(현실)은 철학처럼 흘러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저는 창훈님의 연주를 있는 그대로 들었고, 그저 감상했습니다. 자유나 억압과 같은 어떠한 보이지 않는 실체를 가지고 연주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이곳에서 논해지는 여러 요소나 주제를 과거 기본학교에서 있었던 사례들과 직접적으로 매칭시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봅니다. 창훈님의 연주 시간이 졸업식 시간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했지만, 창훈님이 3기 동지들의 자유를 침범했다고 생각하는 동지는 없을 것입니다. 모두 그저 창훈님의 음악을 감상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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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우영님의 댓글

    장우영 아이피 (211.♡.181.17) 작성일 Date

    댓글이 안달려서 여기 답니다.

    이창훈 님의 빨간펜이 문제시되는 이유는 상대방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하는 태도 때문입니다. 제가 단 댓글들은 이창훈 님이 말씀하시는 도덕과 억압이 자유를 침해하고 상대방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했기 때문에 단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창훈 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단 댓글이 빨간펜이라고 할 수 있나요? 이 게시판에 한 사람의 글을 많아 이창훈 님의 자유가 침해됐다고요? 그렇다면 도서를 많이 출판하는 작가는 다른 작가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가요? 최진석 교수님이 10권의 책을 출간할 때 다른 작가가 한 권의 작품만 출간한다면 최진석 교수님이 타 작가의 자유를 침해한 것입니까? 이창훈 님이 기분이 좋아지시든 탁월해지시든 관심 없습니다. 그런데요,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재갈을 물리려는 태도로는 탁월해질 수 없을 것이라고 감히 확신합니다.

    이창훈 님은 항상 댓글을 다실 때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시는 것이 아니라 긴 글 중 작은 내용의 꼬투리만 가지고 댓글을 다시죠. 본 글에 대한 제 댓글의 주요 “주장은 자유를 억압 보다 먼저 생각해야 한다”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근거도 작성해 놓았고요. 이창훈 님이 다신 댓글 중에 이를 반박하는 주장과 근거가 있나요? 제가 봤을 땐 눈을 씻고 봐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의 이야기가 토론이 되기보다는 키보드 배틀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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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23.♡.164.44) 작성일 Date

    모든 대상은 범위를 한정하고서야 논할 수 있습니다.
    우영님께서는 위 게시글 내용 일부에 주목하여 댓글을 쓰셨습니다.

    재갈을 물리면 말의 양이 줄어 듭니다.
    우영님과 경민 형님께서 저보다 많은 말을 하시는데
    재갈 비유가 과연 적절한가요?

    일부 자유(바보 행세, 저질 정치)를 억누르자
    총 표현량이 (또는 총 자유가) 몇 배 증가하지 않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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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돌맨님의 댓글의 댓글

    벽돌맨 아이피 (49.♡.190.134) 작성일 Date

    저는 본 글의 주제를 "자유보다 억압을 먼저 생각 하자"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창훈 님이 게시글 내용 중 일부라고 하시니 할 말이 없어지네요. 제 문해력 탓이겠지요.
    그렇다면 본 글의 주제를 한 줄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재갈 비유는 말의 총 양이 아니라 이창훈 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도덕, 억압)들이 자유를 억압하는 내용이라서 그런것이죠...
    총 표현량이 자유가 아닙니다. 이창훈 님. 앞서 도서 출판을 예시로 설명드렸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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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23.♡.212.154) 작성일 Date

    저는 해석의 자유를 열어 두려 합니다.

    총 표현량은 자유가 아니라
    자유를 측정하는 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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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우영님의 댓글의 댓글

    장우영 아이피 (211.♡.181.17) 작성일 Date

    해석의 자유.. 네 알겠습니다.

    자유를 측정하는 지표가 어떻게 총 표현량이 될 수 있나요?
    제가 앞서 설명한 예시대로 도서를 많이 출간하는 사람이 도서를 적게 출간하는 사람보다 자유의 총량을 더 많이 가져간 것이고, 더 적게 출간한 사람의 자유 총량을 침해한 것인가요?
    이창훈 님의 주장대로라면 도서를 더 많이 출간하는 사람은 도서를 덜 출간하는 사람을 생각해서 스스로 도서를 출간할 자유를 억압해야겠네요?

    제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도서 출간을 예시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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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의 댓글

    ^^ 아이피 (125.♡.13.90) 작성일 Date

    기본학교에서는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동지들은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고 싶다면 할 수 있는 자유도 있었지만, 질문을 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을 자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는 이해한 것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라 후자의 자유를 주로 택했습니다.

    최진석 교수님의 "질문하는 자가 건너간다"는 말은, 꼭 특정 상황 내에서 질문해야만 건너갈 수 있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저는 한 번도 수업시간에 공개적으로 교수님께 질문한 적은 없었는데요. 제가 수업시간에 질문하지 않았다고 해서 건너가지 못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6개월간 고요하게 나 자신에게 귀기울이면서 조금 느린템포지만 저만의 질문을 찾아냈거든요. 그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새로운 질문들을 틔워내며, 졸업한지 한참지난 지금도 제가 책과 책사이로 여러 지식과 지식들 사이로 즐겁게 건너가는데 많은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2기였습니다. 2기도 마찬가지로 매수업마다 질문하는 몇몇 동지분들이 계셨습니다. 저는 오히려 동지들의 황당한 질문들을 듣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예상치 못한 질문들에 당황하는 교수님을 보는 것도 재밌었고, 어떨 땐 수업보다 질문에 대한 교수님의 답변이 저에게 영감을 줄 때도 많았거든요. 그리고 그 질문을 한 동지들에 대해서도 더 잘 알 수 있게 되어 참 좋았습니다. 본문처럼 '총량'과 그에 따른 '배분적'관점에서 생각해본적은 더더욱 없을 뿐더러, 기본학교와의 추억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네요.

    각자가 각자의 몸짓대로 자유롭고 아름답게 건너갔던 곳이 기본학교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몸짓들을 응원했고, 함께 건너가서 영광이었고, 참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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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23.♡.204.4) 작성일 Date

    "기본학교"라는 집에 1기, 2기의 경험이 쌓여 왔기에
    3기인 제가 이만큼 많이 배웁니다.
    (기본학교 학생이든 아니든) 새 말, 새 몸짓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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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왕규님의 댓글

    손왕규 아이피 (222.♡.127.230) 작성일 Date

    우 = 시
    주 = 공
    인 = 간

    모든 사물은 우주에 있고
    우주는 무한의 어디 쯤에 있고
    그 무한에 인간의 언어 좀 보탠다고 다 채워지지 않겠지요?
    그러나, 그 사이 인간이 있어 풍성한 무한이 완성되는 것인지도!

    서로 너그러이....

    두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의 일은 두 사람이 만나 해결하는 게 상책이지 않을까요?
    시공간에서 만나 이야기 해야지, 가상 공간에서 다양한 장소와 다양한 시간대에 흩뿌려지는 언어들이 불쌍해 보입니다.

    그냥 만나서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자들에게 이 모든 언어들이 소음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 소음이 아님을 증명하고, 결론만 올리면 될 것 같습니다.

    만나 감정을 교환해야지 감정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면 교감이 발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만나서 해결하면 좋겠습니다.

    종종 홈페이지의 글들을 보며 힐링하는 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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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경민님의 댓글의 댓글

    노경민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아~ 저도 백 번, 만 번 공감합니다.
    더 나은 방식의 대화였다면 참 좋았을텐데 그렇지 못해, 부끄럽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상대가 어떤 이유로 저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를 물어도 설명하지 않고 피하더라고요.
    전화로 해결하려 하지만, 상대가 또 피하더라고요.

    감정싸움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상대에게 기프티콘을 보내면서 응원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