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과 염치: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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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누리는 시간과 공간은 유한하다.
내가 무엇을 표현하면 다른 누군가가 사용할 시간과 공간이 줄어 든다.
100분 중 60~70분을 혼자 말해 놓고선
"내가 하고 싶은 말 하는데 왜 더 못하게 막냐"며 "표현의 자유 억압하냐"는 사람은
자신이 차지하는 공간과 시간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거나
80분 90분까지 독재하려는 염치 없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상 "나"는 다른 존재의 자유를 억압한다.
다른 이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 방법은 내가 사라지는 방법뿐이다.
이곳에서 살아 갈 작정이라면 나는 "서로가 서로를 억압하면서도 어떻게 같이 더 잘살지"를 질문해야 한다.
René Magritte (1939): Time Transfix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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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교수는 질문하는 자가 건너 간다고 말한다.
기본학교 3기 학생 중 (수업 시간에) 독보적으로 많이, 오래 질문한 자가 있다.
입학식과 졸업식을 제외하면 (3기 기준) 최진석 교수의 수업은 총 14회였으며 매 수업은 식사와 산행을 빼고 4시간씩이었다.
질문 1:
이 학생 혼자 질문 기회를 60~70% 차지할 때 3기 16명이 건너가는 총량이 클까
이 학생이 염치를 알고 30~40%의 기회만 차지할 때 3기 16명이 건너가는 총량이 클까.
질문 2:
이 학생이 개인별 시간-공간이 좁았을 (총인원 30명 안팎) 2기 소속으로 60~70%의 기회를 넘보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댓글목록
이창훈님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한상도 (2024.11.22): 개성과 이익
https://nwna.or.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2268
(댓글 中)
"다른 누군가와 사회를 이루면서도 내 개성과 자유가 100% 그대로라면 1인 독재 체제에서 내가 그 1인 독재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창훈과 경만이가 사용한 글자 수는 [이창훈: 1048자, 경만이: 3323자]입니다. 한정된 공간을 누가 과도하게 점유하고 있나요."
노경민님의 댓글
노경민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역시 이번에도 왜곡과 날조로 승부하시는 ㄷㄷㄷㄷ
전제부터 정정하고 갈게요.
1. 사람 1이 질문을 많이 한 이유는 책임감 때문이다.
2. 사람 1은 질문을 혼자 독점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빼앗지 않았다.
1) 사람1은 자기소개 때, "우리가 리더의 가면을 쓰고 수업에 임했으면 좋겠다. 질문을 통해 수업 분위기를 전화하고 주도하기 위해 노력하자. 그래야 다 같이 성장할 수 있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람 1은 본인이 한 말에 책임지고자 초반에 적극적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다만 주에 하나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던진 질문은 수준이 낮았습니다. 질문을 뜻을 굳이 설명하자면, "봐바. 이런 바보 같은 질문도 답해주시지? 너희들도 해봐!" 같은 뉘앙스에 가까웠습니다.
2) 항상 질문을 많이 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교수님이 사람 1을 직접 지목하며 "질문 한 번 해봐!" 라고 하셨지만, 사람 1은 "질문할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라고 거절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교수님은 "사람 1! 요즘은 질문을 안 하네?", "사람 1, 오랜만에 질문하네?" 같은 식으로 계속 말을 걸어오셨습니다. 이에 몇몇은 사람 1을 향해 "왜 질문을 안 해요?" 라고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기회를 줘야죠." 라고 답했습니다.
사람 1이 원하는 것은 본인이 질문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질문이 쏟아지는 풍경을 원했습니다. 그래야 본인이 떠올려보지도 못한 새로운 생각들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사람 1이 기본학교에서 가깝게 지낸 사람들이 질문은 많이 하지 않았지만, 교수님의 말에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되짚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죠. 쌩뚱맞게 그림을 그리겠다고 선언한 동지, 장르를 만들겠다고 덤비는 사업가가 대표적이죠.
결론)
이번에도 왜곡, 날조하셨습니다.
질문할 기회를 빼앗긴 사람이 이 글을 작성했다면 모를까, 질문도 많이 하지 않았죠.
사람 1이 모든 질문을 독점했다면 모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죠.
고로, 질문에 답할 가치는 없고, 정정할 필요는 있어 이렇게 댓글 남깁니다.
장우영님의 댓글
장우영 아이피 (211.♡.181.17) 작성일 Date
창훈님 안녕하세요?
말씀하신 자유에 관해 이야기해 볼게요. 민주주의가 만들어진 이래로 우리는 어느 정도의 자유를 보장할지에 대해 논의해 왔어요. 당연히 내 주먹이 상대방의 코앞에 닿기 전까지의 자유만 허용되어야 하지, 상대방의 얼굴을 가격하는 자유가 보장되어서는 안 되겠죠. 그러나 저는 창훈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서로 얼마만큼 "억압"해야 할지 논의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억압"보다 "자유"를 선행에 두고 얼마나 최대한 자유를 보장해야 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봅니다. 똑같은 말인 것 같지만, 무엇을 선행에 두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상반되게 나타납니다. 이러한 사례는 최진석 교수님이 말씀하신 한국의 과도한 규제에서도 볼 수 있어요. 생각이 안 나실 수도 있으니 다시 설명해 드릴게요. 한국은 어떠한 신기술이 나오면, 신기술을 먼저 사용해 보고 부작용에 대해 규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규제를 만들고 신기술을 적용한다고 하셨어요. 예시로 드론 산업을 설명하셨고요. 드론 산업은 처음에 한국이 최대 강국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과도한 규제가 시작되었고 점점 쇠퇴해갔습니다. 이에 반해 중국은 드론 사용에 자유를 부여하고 그 후 일어나는 부작용에 대해 규제 진행했죠. 결과로 전 세계 드론 산업은 중국이 최대 강국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억압"을 먼저 생각하느냐, "자유"를 먼저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선도 국가가 될 수가 있느냐 중진국으로 남느냐로 나뉜다고 생각해요. 내 주먹이 얼마나 상대방의 코 가까이 갈 수 있는지 논의해야 하지, 내 주먹을 얼마나 뻗지 말아야 할지를 먼저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적용하여 질문에 답변을 드리자면, 최진석 교수님은 어떠한 억압도 지시하지 않으셨죠. 그래서 애초에 1인당 질문 수 제한 같은 억압은 없었습니다. (*저는 우리의 수업 도중 한 명의 학생이 과도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가정해 볼게요) 자유로운 질문과 대답이 있었고 이것에 불편함을 느꼈다면 창훈님이 교수님께 제안하면 됩니다. 기본학교에서 억압할 수 있는 주체는 최진석 교수님이니까요. 그렇다면 교수님께서 판단하시겠죠? 어떤 것이 건너가는 총량이 큰 것인지를요. 그 후에, 교수님과 우리들간의 발전된 토론이 있을 수 있어요. 저는 이러한 방식의 진행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요, 창훈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애초에 "억압"부터 시작해서 1인당 질문 수 제한을 두었으면 어땠을까요? 혹은 그러한 규제가 없었더라도 다들 질문을 주저하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어땠을까요?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로운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요? 감히 예상컨대 우리 기본학교는 대학교, 고등학교 수업과 같이 질문 없는, 주입식 교육이 되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교수님이 지향하시는 바도, 건너가기도 "억압"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서는 생각의 질과 양이 저하될 것이라고 확신해요.
따라서 본 질문에서 말씀하시는 “학생이 먼저 염치를 알고 질문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제 귀에 ”자유 보다는 억압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로 들려요. 질문 위 본문에서 작성하신 내용도 그렇구요. 본 게시판이 ”억압” 게시판이 아니라 “자유” 게시판인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우영님 안녕하세요 :)
기본학교 3기 때는
토론하다가 강냉이를 집어 던지는 자유와
숙소 안에서 담배 피는 자유까지 보장됐습니다.
제가 형님들 눈치 안 보고 할 말 하는 것도 기본학교의 자유 덕입니다.
2023년 1월, 기본학교 3기 수업 중에 제가 경민 형님의 질문을 막았다면 "과도한 규제"겠지만
2025년 1월까지 2년 동안 "노경민"이라는 신기술을 경험해본 후 (경민 형님 코 정중앙에) 뻗는 제 주먹은 "자유 이후의 부작용에 대한 규제"에 가깝겠네요.
무한에 가까운 자유를 2년여 누렸으니 이제 선을 그어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