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할 수도 있음] 섹스 섹쓰 쎅스 쎽쓰 쎾쓰 쎾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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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한 바람이 도심을 훑고 지나가고, 참새들의 소리는 작은 교향곡처럼 동네에 울려 퍼진다. 거리에는 분주히 뛰어가는 이도, 신호를 재촉하듯 급하게 교차로를 가로지르는 차량도 없다. 모든 것은 바다 위를 유유히 가르는 요트처럼 도로와 도보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듯 움직이고 있다.
초록색 리바이스 후드티와 펑퍼짐한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은 남성은 드 넓은 사거리의 횡단보도를 홀로 가로지른다.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텅 빈 스타벅스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문 너머로 스며드는 것은 진한 커피 향 대신 깨끗하고 쾌적한 공기의 냄새다. 그는 맨 구석, 노트북 앉아 편의점에서 사온 샌드위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스마트폰으로 음료를 주문한다. 그 후 노트북과 책을 펼쳐놓으며 고요히 생각의 바다로 자신을 던진다.
이 남성은 초록색 후드티와 펑퍼짐한 청바지처럼 평범한 옷차림, 스타벅스는 외부 음식 반입이 허용된다는 규칙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젊은 존재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천 년을 넘게 우리동네 뒷산을 지켜왔을 법한 산신령을 연상케 한다. 그의 얼굴과 맞지 않는 옷차림과 세속적인 습관이 그 사람을 더욱 오묘하게 만드는 걸 넘어, 묘한 불쾌감을 일으킨다.
"90살 황춘복님~ 주문하신 밀크티 나왔습니다~"
스타벅스 바리스타의 목소리는 소리는 마치 먼 바다의 항해사에게 전해지는 신호처럼 고요함 속에 울려퍼졌다. 모니터에 몰두하던 남성은 조용히 일어나 밀크티를 받아들고 자리로 돌아온다.
밀크티 잔이 모두 비워지고 내부의 물기 마저도 보이지 않을 때 즈음, 동네를 가득 채우던 참새들의 지저귐은 서서히 잦아들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붐비며 발소리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스타벅스 안은 바리스타의 목소리가 아닌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웃음소리로 가득 차고 있다.
모니터를 응시하던 90살 황춘복은 전화를 받는다.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지며, 따뜻한 인사말이 흘러나왔다.
"어어~ 오랜만이군. 그래 그래 무슨 일이야? 아~ 그래? 그래 그래 한 번 볼게."
90살 황춘복은 노이즈캔슬링 기능이 있는 에어팟을 귀에 꽂은 채,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편안하게 전화 통화를 시작했다. 그에게 주변의 소음도, 바리스타의 목소리도 모두 먼 곳의 잔물결처럼 희미했다. 매장 내부의 소리들은 마치 참새들의 지저귐 같은 배경음에 불과했고 자신의 목소리도 그 속에 묻혀 사라지리라 생각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시골 촌 여자가 도시로 가더니 자유분방하고만..."
90살 황춘복은 무언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사실 이 여자는 다소 급진적이야. 무언가에 반발하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수 많은 사람들에게 유혹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그런데 이 반발심에는 건강함이 함께 하고 있어. 몸이 건강해야 마음이 건강하듯이 건강한 육체로 반발하고 있지."
90살 황춘복은 평소 생각해보지 않았던 대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흥미로워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봐바. 헐 벗은 모습도 아름답지만, 여성의 음모마저도 윤이 나고 건강해보이잖아?"
참새 방앗간처럼 시끌벅적했던 스타벅스 내부는 90살 황춘복을 중심으로 점점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주위에 앉아 있던 여성들은 90살 황춘복의 말에 반응하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들은 조용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그 순간 스타벅스의 소음은 점차 다른 리듬으로 변화했다. 90살 황춘복은 여전히 노이즈캔슬링 에어팟을 끼고 자신의 세계에 몰두해 있었고, 자신이 던지는 말들이 주변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저 탄탄한 몸매를 봐. 이건 자연스럽게 형성된 여성의 몸이 아니라 꾸준한 운동을 넘어 엄격한 다이어트를 통해 인공적으로 빚어낸 신체야. 그러니까 저 모습은~...."
"허후.. 저 노망난 틀딱.... 나이를 곱게 먹어야지 진짜.."
근처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여성 중 한 명은 90살 황춘복의 말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마치 무언가에 휘말린 듯한 피로감이 서려 있었다. 90살 황춘복의 이야기가 그녀의 감정을 가로막는 세찬 파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녀는 친구와 연애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도 90살 황춘복이 입을 열기 시작하면, 마치 고요한 연못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대화를 멈추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 표정에는 그저 호기심이 아닌, 경계와 혼란이 엿보였다. 90살 황춘복은 여전히 자신의 생각에 몰두한 채, 노이즈캔슬링된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거 봐바. 이건 너무 잘 찍었는데? 아주 천재야 천재. 가죽 팬티에 목에 개목줄까지 착용하고 있는 모습, 강간 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있네. 이외에도 엉덩이를 대놓고 드러내는 천진난만함과 음탕함을 동시에 드러내놓고 있어. 여기는 네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있는 백발의 노인에게 브라자가 벗겨지고 있잖아. 사실 이 모든 것들은 말이야~..."
스타벅스 내부의 손님들은 하나둘씩 90살 황춘복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표정에는 90살 황춘복의 이야기에 대한 불쾌함과 불편함이 서려 있었고, 그 감정은 마치 물결처럼 테이블을 넘어 서로에게 전해졌다. 그 중 누군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조용히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그 손끝이 빠르게 화면을 넘기더니, 어디론가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90살 황춘복은 여전히 이 모든 것을 알지 못한 채, 흥미롭게 웃으며 자신의 세계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그만의 리듬으로 공기 속에 흩어졌고, 그 속에서 그는 혼자만의 대화를 이어갔다.
10분쯤 지나자 키가 큰 젊은 경찰관과 중년의 경찰관이 스타벅스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무언가 권태로워 보이는 중년 경찰관의 눈빛은 무언가를 빨리 찾고자 하는 기색이 어려 있었고, 어디론가 전화를 마친 후 그들은 곧바로 90살 황춘복이 앉아 있는 구석 테이블로 향했다. 그 모습은 마치 바람의 방향을 따라 길을 찾는 두 마리 새처럼, 목적이 분명했다. 매장 안의 소음은 경찰이 90살 황춘복 앞으로 다가갔을 때 순간적으로 가라앉았고, 모든 시선이 90살 황춘복 테이블 쪽을 향했다. 90살 황춘복은 여전히 이 모든 것을 모르고, 자신의 세계 속에서 흥미롭게 웃고 있었다.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나이가 지긋한 경찰이 90살 황춘복 곁으로 다가가 조용히 인사를 건냈다.
"사실 이건 미학적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 그 이유는~"
90살 황춘복은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있었기에 경찰관들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경찰관들의 말은 그의 주변을 스쳐가는 바람처럼 희미하게 흩어졌고, 경90살 황춘복은 여전히 전화 상대방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마치 그가 머무는 세상과 그들이 서 있는 현실 사이에 투명한 벽이 있는 듯, 90살 황춘복은 자기만의 호흡과 리듬을 이어 나갔다.
"어르신..?"
중년의 경찰은 90살 황춘복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치며 불렀다.
그제서야 90살 황춘복은 놀란 듯 경찰을 바라보며 한쪽 에어팟을 빼더니
"무슨 일 이시죠? 잠깐만 내가 이따 다시 전화할게."
"어르신께서 불법 촬영물을 보고 있다는 신고로 왔습니다. 노트북 좀 볼 수 있을까요?"
중년의 경찰관은 말과 다르게 90살 황춘복이 반응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중년의 경찰관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손은 이미 90살 황춘복의 앞에 놓인 노트북을 향하고 있었다. 경찰관의 손길은 마치 낙엽이 떨어지듯 자연스럽게 노트북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
"어..!? 마돈나인가요?"
노트북에 있는 사진을 본 중년의 경찰관은 당황한 듯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마돈나의 'SEX' 화보집 중 일부이고 친구와 생각을 나누고 있었어요. 사진은 헐 벗고 있지만 묘한 여운이 남아 있어 음란하게 보이지는 않을텐데요. 물론 침대에 묶여 있는 모습은 누군가에게 속박 당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폐쇄적으로 보일 수 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자유로워 보입니다."
"하하.. 어르신 그런데 여기 손님들이 어르신의 외설적인 말에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외설이라뇨? 저는 이 사진 속 마돈나라는 건강하고 강인한 여성이 성에 통제 당하거나 패배하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삶을 하나의 신화라고 말했는 걸요? 이게 외설입니까? 그렇다면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그림도 외설적이겠네요?"
그 이야기를 듣다 못한 몇몇 스타벅스 손님들이 90살 황춘복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불편함과 약간의 긴장감이 엿보였다. 그들은 작은 파문처럼 90살 황춘복을 둘러싸고 있었고,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지며 찰나의 논박이 이어졌다. 그 논박은 마치 잠시 일어난 강물의 소용돌이처럼 짧고 강렬했지만, 곧 흩어졌다. 5분 남짓한 시간 후, 경찰관은 90살 황춘복에게 가벼운 당부의 인사를 건네며 조용히 자리를 떴다. 90살 황춘복은 주변의 소란이 가라앉은 후 천천히 짐을 챙겼다. 그는 문을 나서며 작은 한숨과 함께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마돈나.. 고맙다..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모델의 누드 사진이었으면, 난 진작 경찰에게 잡혀갔겠지. 이름 없는 작가의 말이 아닌 노벨문학상 작가의 말을 빌리지 않았다면, 난 지금 쯤 손자, 손녀뻘 되는 사람들에게 혼나고 있었겠지."
마돈나 SEX BOOK 30주년 기념 행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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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창훈님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부도덕은 왜 덜 다뤄지나 (2024.10.03)
https://nwna.or.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2039
경만이님의 댓글의 댓글
경만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이미 저 글에 댓글로 다 답했는데요~!?!?!
부도덕은 왜 덜 다뤄지냐? 그건 그릇의 크기입니다.
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부도덕에 발작할까? 그릇이 작기 때문입니다.
그릇의 크기 (24-11-01)
https://nwna.or.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2176&page=2
이 글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은 마돈나의 'SEX' 화보집 감상평이었습니다.
마돈나는 이 화보를 통해서 사회가 정의해놓은 여성이 아니라, 자신이 여성에 대해 스스로 정의 내렸고, 자유롭게 표현했습니다. 성에 대해 보수적인 사회에 정면으로 맞서는 도전을 한거죠. 어떻게 보면 상당히 부도덕하죠? 2024년에 보아도 논란이 될만한 내용들이 종종 있거든요. 더 나아가서 당시 팝의 여왕이 굳이 그런 걸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 용기도 못있더라고요. 결국 글은 마돈나의 SEX 화보집에 대한 감동 후기입니다. 물론 카페에서 주위 사람들이 오해하는 상황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감상평의 일부를 생략했죠.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그릇의 크기와 미묘한 신호에 반응하는 능력은 별개입니다.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르면 수영장은 수질검사를 반기별로 1회 이상 실시해야 하며
1) 잔류 염소 0.4~1.0mg/L, 수소 이온농도 5.8~8.6, 탁도 1.5 이하
2) 비소 0.05mg/L 이하, 수은 0.007mg/L 이하, 알루미늄 0.5mg/L 이하여야 합니다.
https://www.law.go.kr/%EB%B2%95%EB%A0%B9/%EC%B2%B4%EC%9C%A1%EC%8B%9C%EC%84%A4%EC%9D%98%EC%84%A4%EC%B9%98%E3%86%8D%EC%9D%B4%EC%9A%A9%EC%97%90%EA%B4%80%ED%95%9C%EB%B2%95%EB%A5%A0
집에서 목욕하는 욕조에서는 (본인이 느끼기에) 온도만 알맞으면 큰 소란이 없지만
캐리비안 베이같이 하루에 만 명 넘게 찾는 수영장이 수질 관리 기준을 어기면 SNS뿐 아니라 언론사, 용인시, 문화체육관광부 등 온 나라에 난리가 납니다.
기준에서 벗어난 물 때문에 탈 난 사람이 확인되지 않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이 들어가는 양만 따질 거면 진흙탕이나 수영장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경만이님의 댓글의 댓글
경만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맞는 말입니다.
제가 쓴 글은 마돈나의 화보집이고 표현의 자유와 연결되어 있잖아요? 이게 수질 관리와 어떤 연결점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수영장의 수질관리는 공공 위생과 안전을 위한 기준입니다. 표현의 자유의 어떤 점과 연결되어 있을까요? 누군가가 도심 한복판에서 비키니를 연상케 하는 옷을 입고 다녔다고 하여, 식당에서 기괴한 젓가락질을 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공공위생과 안전에 위협을 끼치나요?
위 글의 90살 황춘복씨는 스타벅스의 규칙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죠? 그래서 외부음식 반입을 했지만 냄새가 나는 음식은 먹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화할 당시 스타벅스는 바리스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시끌벅적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자유롭게 전화로 대화를 나눴을 뿐입니다. 만약 황춘복씨가 다른 카페에서 외부 음식을 반입했다면, 스타벅스에서 냄새가 심한 음식을 먹었다면, 독서실에서 시끄럽게 전화통화를 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죠. 마돈나의 화보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선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나름대로의 장치들이 있거든요. 이 부분은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인데 마돈나의 화보집은 다소 부도덕해 보일 수 있지만, 성인식과 성윤리에 대한 강의 자료로 활용될 정도로 공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부도덕은 왜 덜 다뤄지나> 글을 보면,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갖고 살아가시는 것 같습니다. 글을 보면 "부도덕으로 이름 붙은 활동이나 생각이 (개인 또는 사회의) 생존의 질과 양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라는 내용이 있어요.
독서모임에 세 가지 룰이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1. 책을 읽고 서평을 작성한다.
2. 정해진 기간 내에 한 권의 책을 정독한다.
3. 함께하기로 한 과제를 한다.
독서모임의 구성원 중 한 명이 위 규칙 중 2개 이상이라도 지키지 않는다면, 독서모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누군가의 발목을 잡는다면 비판 받아야겠죠. 예를 들면 책을 읽고 오지도 않았으면서 책과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만 하는 경우가 있겠죠.
황춘복씨가 시끌벅적한 카페에서 가볍게 전화통화를 하며 누드 사진에 대한 감상평을 남긴 것도, 마돈나의 화보도 부도덕해 보일 수 있지만 강력하게 비판하거나 규제할 만한 일은 아니며, 이에 대해 훈계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긴 조선도 북한도 아니잖아요?
경만이님의 댓글의 댓글
경만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추가로,
어떤 말을 하고 싶은신지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과거에 이런 대화를 하다 답답해서 전화를 했을 때도 "그래서 어떤 말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같은 형식으로 되물었을 때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하신 걸로 기억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거 그냥 화풀이 한 거 아니냐." 라는 말과 함께 깔깔깔 웃고, 제 생각을 떠들다가, 제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 사과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번 대화도 그때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창훈님의 첫번째 댓글에는 어떤 가치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담겨있지 않거든요. 황춘복씨를 비판하는 것인지, 마돈나를 비판하는 것인지, 이 글의 제목을 비판하는 것인지 부족한 저로써는 알 수 없습니다. '부도덕이 덜 다뤄지는 이유' 라는 글을 첨부하셨는데, 마지막 사진을 보시면 알 수 있듯, 마돈나의 부도덕해 보이는 SEX BOOK은 30주년 행사가 열렸습니다. 다시 말해 부도덕이 덜 다뤄진 게 아니라, 더 다뤄졌죠? 이는 성 관련 강의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계속 다뤄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부도덕이 덜 다뤄지는 이유' 라는 글을 첨부하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어떤 가치를 전하고 싶으신 건지부터 이야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저는 전달하고픈 바를 충분히 전달했고, 제 글에서 무얼 읽어 낼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오늘의 해석이 이러했다면 내일의 해석은 또 다를 수 있습니다.
경민 형님께서는 본인의 글이 한 방향으로만 해석되길 바라시는 듯합니다.
새로운 가능성을 짓누른 채 논리와 사실을 비틀어 과거를 변호하고만 있습니다.
저는 통화 중 "경민 형님께서 자기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본인을 사랑하는 사람이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또 다시 하고 계십니다.
경만이님의 댓글의 댓글
경만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저는 전달하고픈 바를 충분히 전달했고, 제 글에서 무얼 읽어 낼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오늘의 해석이 이러했다면 내일의 해석은 또 다를 수 있습니다."
= 이건 본인의 의견을 고수하려는 고집에 불과합니다. 무언가를 비판하려면, 알아들을 수 있게 전달하는 게 우선입니다. 이게 소통의 기본 아닌가요? 사실 제가 전화로 물을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던 이유는 생각을 글로 정돈하면 더 제대로 전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거든요. 지금 창훈님이 하시는 건 꼬맹이가 울부짖으며 떼쓰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경민 형님께서는 본인의 글이 한 방향으로만 해석되길 바라시는 듯합니다. 새로운 가능성을 짓누른 채 논리와 사실을 비틀어 과거를 변호하고만 있습니다."
= 이건 창훈님의 일관성 없는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일 뿐입니다. 저는 새로운 가능성을 짓누르지 않았죠? 제가 한 방향으로만 해석되길 바랬다면, 창훈님께 어떤 것을 말하는지 물어보지도 않았겠죠? 그리고 제 생각을 상세히 전달하지도 않았겠죠? 새로운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묻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창훈님은 그걸 회피하고 있죠.
"저는 통화 중 "경민 형님께서 자기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본인을 사랑하는 사람이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또 다시 하고 계십니다."
= 이 부분도 제가 댓글과 전화로도 이미 답했습니다. 그건 본인의 뇌피셜이라고요. 그런데 아직도 또 같은 말을 하시네요? 제가 비슷하게 말했습니다. "나에 대해 알지 못하면 알려고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모르는 것을 왜 아는 것처럼 말하나요?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부도덕해 보이는 생각마저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뉘앙스로 말했습니다. 추가로 "나를 비하하는 듯한 내용도 있지만, 그것은 과거의 나를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로 지금의 내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라는 식으로 말했죠? 제 관점으로 보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창훈님일 수도 있는거죠. 그때 당시에는 글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댓글에 기생하며 지냈으니까요. 또 벽돌맨님에게 은유가 무엇인지 비판하면서 설명했지만, 정작 본인은 은유를 활용해서 글을 쓸 줄 모르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결국 어떤 가치를 전하고 싶은지 말하지 못하셨군요. 어쩌면 애초에 있지 않았던 것일 지도 모릅니다.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은유] 진흙탕과 수영장 (2024.11.15)
https://nwna.or.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2223
벽돌맨님의 댓글
벽돌맨 아이피 (211.♡.181.17) 작성일 Date
부도덕을 말할 때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친구와 통화했을 뿐인데 경찰이 압수 수색(?) 하는 상황을 맞닥뜨린 황춘복씨 처럼요. 그래서 부도덕을 이야기할 때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뫼르소도 부도덕한 인물입니다. 엄마가 어제 죽었는지, 아래 죽었는지 기억도 못 하는 인물이죠. 사회는 그가 행하고 말하는 것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단지 그가 냉혈한이라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합니다. 사건을 감정적으로 바라본 것이죠. 그런데 이때 뫼르소는 사형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부도덕을 말하는 인간, 그것을 재단하는 사회, 그리고 모든것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나타낸다고 보았습니다. 하나의 맹목적인 가치가 아닌 여러 가치를 포용 할 수 있는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부도덕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타인의 시선을 무릅쓰고 부도덕을 말하는, 마돈나, 뫼르소 경만이의 용기는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을까요?
경만이님의 댓글의 댓글
경만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엄마! 나는 커서 모난 돌이 될래요!! (https://nwna.or.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2169&page=3) 라는 글을 보며 많이 공감했습니다. 글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오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싫어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반골 기질이 썩 마음에 들고 앞으로도 바꿀 마음은 없다."
저는 이 생각이 부도덕을 말하는 용기의 씨앗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벽돌맨님도 알고 계시는데, 저만의 생각이 궁금하셔서 여쭤본 게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저만의 생각을 남겨보겠습니다.
용기는 다른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보다 나만 아름답게 여기기 시작하는 것을 넘어 , 심취하여 그걸 드러내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생긴다고 생각해요. 연예인 중에 류승범씨도 과거에는 옷을 잘 입지 못한다고 지적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게 유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잖아요? 비슷한 맥락이라 생각합니다.
황춘복씨가 마돈나의 SEX BOOK을 미학적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고 한 이유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미학적으로 바라보면 미학이라는 지식을 생산한 학자들의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거든요. 결국 다른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 똑같이 좋아하려는 시도와 다를 게 없습니다. 하지만 나만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감성에 온전히 의존하여 작품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건, 나만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을 쫓는 행위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이 아름다움을 쫓는 데 성공하여 심취하기 시작하면 그걸 나누고 싶은 용기가 생기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식을 섭취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최진석 교수님이 은유를 강조하신 것 같아요. 미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젠더학, 풍속사 등을 연결시켜서 나만의 SEX BOOK 감상평을 새롭게 직조할 수 있으니까요.
마돈나는 "예술작품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항상 예쁜 것은 아니다." 라고 했거든요. 마돈나도 단순 예쁜 것을 추구하는 게 아닌,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추구했기에 부도덕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품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주관적인 생각도 있습니다.
<돈 키호테>라는 소설도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부도덕했습니다. 지나치게 흥미 위주인 소설이라는 게 이유였어요. 지금의 웹소설이나 웹툰과 같은 취급을 받았던 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돈 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는 그것이 아름답고 재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소설을 아주 길~~~게 쓴 게 아닐까 합니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도 당시의 낭만주의를 비판하면서 등장했거든요. 다시 말해, 로맨틱 코미디는 "이 사랑이 저 사랑보다 더 아름답다." 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다가와요. 기존의 로맨스 장르는 낭만주의, 숭고한 사랑이 아름답다고 말한다면, 로맨틱 코미디는 낭만주의와 숭고한 사랑을 비웃잖아요? 로맨틱코미디가 말하는 아름다운 사랑은 '진정한 사랑은 모든 것을 낭만적으로 아름답게 포장하는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각종 오해와 갈등을 모두 품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에 가깝다고 봐요.
예술은 벽돌맨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피카소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처음 내놓았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비판을 받았거든요? 당시 전통적인 사실주의 표현을 무시하고 기하학 형태로 그림을 그려서 기괴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피카소의 친구인 조르주 브라크라는 "피카소가 석유를 마신 것 같다." 같은 악평을 내놓기도 합니다. 당시 피카소는 상당히 유명했기 때문에 사실주의에 입각한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는데요.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고 하더라고요.
끝으로 부도덕을 말하는 용기는 자기만의 감성에 충실하고 자기만의 아름다움이 만들어졌을 때에야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자기만의 감성에 충실하고 자기만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요. 저는 미술관에서 난해한 예술작품을 보며 자기만의 감상평을 A4용지 한 장분량으로 작성하는 연습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최진석 교수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는 훈련과 생각하는 훈련이 이루어져야겠죠.
사실 이렇게 말하면, 제가 저만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사람으로 보여질 수 있는데요. 그건 절대 아닙니다.
논외로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벽돌맨님이 다룬 내용이 기억나질 않거든요. 어쩌면 벽돌맨님도 본인만의 감성과 아름다움을 품고 계시는 게 아닐까 합니다.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결과에 책임지지 않을 사람은 용기 없이도 말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가명이나 다른 무엇의 권위 뒤에 숨어
스스로의 존재를 지우는 자의 말과 행동은
(아무리 멋지더라도) 언제든 없는 셈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책임질 일이 생기면 사람들의 시선을 얼른
(내가 아니라) 힘있는 개념이나 권위자에게 돌리는 모습에서
용기가 아니라 비굴함이 엿보입니다.
벽돌맨님의 댓글의 댓글
벽돌맨 아이피 (49.♡.190.7) 작성일 Date
글쎄요.. 저는 말과 행동하는 것 자체가 결과에 책임을 지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말과 행동은 용기 없이 불가능한 행동입니다.
가명이나 다른 무엇의 권위 뒤에 숨어서 말과 행동을 하는 자들이 비굴하다구요? 그렇다면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많은 메세지를 쏟아내는 뱅크시도 비굴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말과 행동을 하는 자가 비굴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선이 두려워 말과 행동을 피하는 자가 비굴한 것입니다.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행적 하나하나가 기록되는 지금 시대에는, 하나하나의 말과 행동에 책임이 저절로 따라 올지도 모르겠네요. 특히나 그것을 통신망으로 흘려 보내 수백 수천 배 복사되도록 만드는 경우에는요!
저는 '가명이나 다른 무엇의 권위 뒤에 숨어 말하고 행동하는 자들'이 비굴한지 안 비굴한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의 존재를 지우는 자의 말과 행동은 언제든 없는 셈으로 바뀔 수 있다."고 위에 쓰여 있습니다.
본인의 이름과 권위를 내세우던 사람이 일이 잘 안 풀린다고 괜한 곳에 책임을 돌리기도 하니까요!
경만이님의 댓글의 댓글
경만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이창훈이라는 이름을 쓴 것과 경만이라는 이름을 쓴 것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이름 석자 하나로 그 사람이 몇살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존재인지 특정할 수 있나요? 애초에 자유게시판은 익명으로 활동하는 곳입니다.
창훈님은 본인 마음대로 "넌 너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 같은 방식으로 단정지었죠? 하지만 이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본인이 한 말과 행동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이름 따위에 내 전부가 담기지 않음을 알아야겠네요!
그럼에도 누군가의 삶을 30년 함께해 온 이름과
한두 번 사용되고 버려지는 이름은 그 무게를 감히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누구에게 '이창훈'이라는 이름이 처음이든 어쩌든
'이창훈'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는 "나"는 이 이름이 지난 30년 동안 어떻게 사용돼 왔는지 알고 있는 걸요!
경만이님의 댓글의 댓글
경만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이런 대화가 오가는 이유는 창훈님이 전하고자 하는 생각을 전해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치와 가치를 논하는 게 아니라 말꼬리 잡기만 하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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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대해 설명해달라고 하니,
창훈님은 "저는 전달하고픈 바를 충분히 전달했고, 제 글에서 무얼 읽어 낼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오늘의 해석이 이러했다면 내일의 해석은 또 다를 수 있습니다." 라 말하면서 스스로 읽어서 해석하라고 하셨죠? 그런데 주제와 벗어난 말꼬리만 잡고 계시는데, 제가 어찌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관심법을 쓰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창훈님의 첫번째 댓글은 <부도덕이 왜 덜 다뤄지는가.> 두번째 댓글은 <공공 시설 관리 기준과 책임> 세번째 댓글은 <글이 각자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 이었잖아요? 그런데 창훈님이 남긴 댓글들이 원글과 제가 남긴 댓글의 주제와 연결되는 게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계속 다른 말만 하고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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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훈님의 댓글인 "가명이나 다른 무엇의 권위 뒤에 숨어 스스로의 존재를 지우는 자의 말과 행동은 (아무리 멋지더라도) 언제든 없는 셈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책임질 일이 생기면 사람들의 시선을 얼른 (내가 아니라) 힘있는 개념이나 권위자에게 돌리는 모습에서 용기가 아니라 비굴함이 엿보입니다."
여기서 존재를 지우는 것이 진정성과 책임감을 버린다는 등식은 항상 성립하지 않습니다. 익명성을 통한 발언에도 충분히 무게가 있으며, 오히려 익명성이 권력의 남용이나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더 객관적인 입장 전달을 가능하게 합니다. 필명으로 활동한 헤르만 헤세나 특정 배우나 장면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쿠엔틴타란티노, 봉준호 감독 또한 스스로의 존재를 지우는 것인데, 오히려 그들의 메시지는 더욱 선명해지잖아요? 그 이유는 본인이 했던 발언에 대해 모두 책임지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창훈님이 던진 질문에 대해 나름 열심히 답했죠? 다시 말해 저는 가명이지만 책임을 다하고 있죠?
그렇다면 창훈님은 어떤가요? 본인 스스로를 책임 있는 위치로 단정하고 상대를 함부로 평가하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지만, 본인이 뱉은 말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고 말꼬리만 잡다가 스스로 읽어내라며 회피하고 있죠.
더 나아가 본인이 그렇게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라면, 이번 회독하다 독서토론모임의 과제물도 하시겠죠? 그동안 서평도 부지런히 작성하셨겠죠? 그동안 함꼐 읽기로 했던 책들도 빠짐 없이 정독하셨겠죠? 만약 그렇지 않다면 본인의 책임감부터 돌아봐야 합니다. 저는 제가 쓴 글과 행동에 대해 모두 책임지고 답하고 있으니 제 책임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창훈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훈 아이피 (211.♡.4.136) 작성일 Date
1. 은유를 사용했기에 (하나씩 떼어 놓으면) 전혀 다른 이야기로 느껴집니다!
2. [회독하다] 소속도 아니시면서 오지랖이 과하시네요!
경만이님의 댓글의 댓글
경만이 아이피 (123.♡.33.101) 작성일 Date
그래도 생각을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지랖이 과하다는 건 알아요. 이창훈님 따라해봤습니다.
신승민님의 댓글
신승민 아이피 (121.♡.198.226) 작성일 Date
처음에 제목을 보고 드디어 새말새몸짓 게시글에도 스팸이 올라오는구나 생각했었는데요.
글을 읽은 다음 다시 제목을 보니 이보다 적절한 제목은 없는 것 처럼 보여요.
온라인 공간에서 게시글을 읽기 전에 보이는 제목은, 카페의 다른 사람들이 듣는 황춘복의 통화 내용과 매칭이 되네요.
또한 카페에서 다른 사람들이 황춘복에게 했던 생각들(어휴 저 미친 변태)을 제가 먼저 해볼 수 있게 만드는 제목이라서 재밌어요.
오늘처럼 가끔 글 단톡에 올려주세요. 이 페이지는 접근성이 좋지 않아서 자주 안들어오게 되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