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힘과 크기를 키우고 싶다면!? (3)
페이지 정보
본문
키보드 배틀 후유증으로 머리가 아직도 핑핑 도는 중이다!! 일기장에 생각을 남기는 것도 좋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남기는 이유는 생각의 힘과 크기가 더 커져서 함께 성장할 수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사실 짧은 시간 동안 하게 된 키보드 배틀은 매우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우리가 이정도 수준 밖에 안 되는 것인가.' 같은 생각을 시작으로, '내 생각의 힘과 크기가 더 컸다면, 더 나은 방향으로 대화할 수 있었텐데' 아니면 '상대방 생각의 힘과 크기가 더 컸다면 내가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을텐데.', '하필 두 사람 생각의 힘과 크기가 그저 그러니. 이정도 대화 밖에 못하네.' 같은 생각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생각의 힘과 크기를 키운 방법을 공유하고, 나 또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며 생각의 힘과 크기를 키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남긴다!!!!
필사가 좋은 이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책 읽기와 쓰기 중 무엇이 더 가치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쓰기다. 읽기도 가치 있다. 하지만 읽기는 인내를 필요로 한다면, 쓰기는 인내와 고통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물론 제대로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 그런데 읽을 때는 군것질을 하듯 가볍게 넘기는 게 아니라, 밑줄을 치며 정성을 들여가며 넘기는 게 아니라, 필사를 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이 새키. 설마... 또.. 그 책을 홍보하려고 하는건가..?" 라 반응할 수 있지만, 나는 옛날부터 책을 읽을 때 필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필사를 하면 일상생활에서도 쓸 곳이 많다. 1편에서 말한 것처럼 필사도 안 한지가 상당히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과거에 필사한 내용들을 들춰보면 배우고 느끼고 깨닫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서,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고 감동 받아 친구에게 감상평을 공유한다고 해보자. 친구는 30초도 넘기지 못하고, 눈에 힘이 풀리고 손끝은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향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있는 문장을 필사한 다음 내것으로 만들어, 일상에 접목시켜 말하면 친구의 눈빛은 달라진다.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을 보면, "죄인이라 불리는 것만큼 인간의 허영심을 선동하는 건 없지. 양심은 우리를 에고이스트로 만들지." 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 문장을 필사하여 내 것으로 만들었다면, 일상에 접목시켜 말할 수 있다. 아래는 다소 부족한 예시 문장이다.
"내가 키배뜰 때, 상대에게 왜곡, 날조한 잘못을 지적했잖아? 그런데 걔는 오히려 자존심을 세우면서 버티더라. 아이러니 하게도 나에게 진정성을 따지며 본인 입장만 옳다고 우겼지. 상대에게 죄인이라 부르면, 상대는 허영심이 더 발동해서 양심이고 나발이고 결국 본인이 잘났다는 식으로 태도가 바뀌는 것 같아."
이는 생각의 힘과 크기를 키우는 방법에 대해 공유할 자격이 부족한 표현이지만 ㅠㅠㅠㅠㅠ, 무튼!!! 이처럼 생각의 힘과 크기는 단순 필사라는 따라쓰기를 통해 커지는 게 아니라, 따라 쓴 다음 나만의 언어로 바꿔서 일상 생활에 쓸 수 있어야 커지는 것이다.
"죄인이라 불리는 것만큼 인간의 허영심을 선동하는 건 없지. 양심은 우리를 에고이스트로 만들지." 이 문장에서 핵심 키워드는 '양심'이다. 그런데 양심을 주제로 말할 때마다 이 문장에 얽매이면 모든 표현이 단조로워진다.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지만 이 또한 한계가 있다. 고로 생각의 크기를 키워서 더 다양한 표현을 하려면 수 많은 책에 남겨져 있는 '양심' 관련 문장을 필사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책에 어떤 문장이 있는지, 내가 원하는 키워드가 있는지 펼쳐보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이는 마치 보물찾기처럼 어쩌다 걸리는 것이다. 조금 무책임한 발언이지만 제대로 된 필사를 통해 생각의 힘과 크기를 키우려면 다독과 인내가 답이다. (* 라고 말했지만, 올해 읽은 책 0권 ㅠㅠㅠㅜ퓨퓨퓨ㅠ퓨ㅠㅠㅠㅜㅠㅜㅠㅠㅜㅠㅜㅠㅜ)
논외로 누군가는 양심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양심(良心)은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좋지만, 내 주관적인 생각에 따르면 개성, 고유한 색깔이 없기에 무미건조하다. 매력도 재미도 없다.
물론 사전을 찾아보는 건 좋은 습관이다. 개념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갖춰져야 말도 정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진석 교수님 또한 나에게 "개념, 용어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중요하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예를 들면, 양복을 이루고 있는 칼라(옷깃)를 포함해서, 라펠 솔기, 프런트 패널, 안쪽 솔기 등까지 알아야 본인의 생각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말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내가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의 크기와 힘을 키우려면 사전만 들춰보는 게 아니라, 결국 여러 책을 읽으며 필사해야 한다. * 라고 말했지만, 올해 읽은 책 0권이다.. ㅠ픂퓨퓨ㅠㅜㅠㅜㅠㅜ)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비밀노트에 필사해놓은 '양심'을 키워드로 한 문장을 조금 공유하고자 한다. (* 그때 당시에는 펜으로 썼다. 손이 아파서 대충 쓰느라 글씨가 엉망이라 읽기 힘들다. 그리고 손이 아파서 줄여서 쓰느라 책의 내용과 100% 일치하지 않다. 고로 원본과 조금 다르다.)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바다보다 웅장한 게 있지. 그건 하늘이야. 하늘보다 웅장한 게 있지. 그건 양심이야."
니체, <우상의 황혼>, "인간은 신의 한 실패에 지나지. 그렇지 않으면 신이 인간의 하나의 실패에 지날까? 본인 행위에 대해 비겁한 흉내를 내지 마. 나중에 그것을 눈 뜨고 죽이지 마. 양심이 물어 뜯는 방법에는 체면이 없지. 자기로서의 인생의 이유만을 갖고 있다면 어떠한 생의 형식이든 대개 어우러져. 인간은 행복 같은 것을 찾지 않아. 그런 것을 하는 것은 아마 영국 사람들 뿐일거야. 인생에 관해서는 어느 시대에든지 현자들은 같은 판단을 내리고 있지."
에리히 프롬, <건전한 사회>, "양심의 본질은 동조하지 않는 것. 모든 사람이 예스라 말할 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양심이다. NO라고 말하려면 양심은 그 NO에 따른 판단의 정당성에 확신을 가져야 하지."
이희승, <지조>, 양심의 질식이 되풀이되면, 양심이 마비될 것이다. 양심이 마비되면 어떠한 부정과 불의도 기탄없이 감행한다.
이외에도 몽테뉴, 장 자크 루소, 존 듀이 등등의 책을 통해서도 양심을 키워드로 한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문장들을 필사하고 내 것으로 만들다보면, '양심'이라는 것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일상 생활에서도 다양하게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친구에게 카톡을 보낼 때도 "야이 양심없는 새뀌야.."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고독에 닿으면 너도 알게 되겠지..." 처럼 나름 세련된 느낌으로 보낼 수 있다. (많이 부족하지만ㅜㅜ) 여기에 '양심'을 넘어서 '사랑', '염치', '정의' 등등의 키워드들이 쌓인다면 세상에 대한 이해도도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고로 필사는 하나의 장르에만 국한될 게 아니라, 문학부터, 사회과학, 심리학, 철학, 과학 등 다양한 장르의 책에서 할 수 있다.
어쩌면 이는 첫번째 글에서 모든 주간지를 다 읽어야 한다는 주장과 비슷한 맥락이다. 모든 주간지를 보면 동일하게 다루는 주제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각 주간지의 성향마다 주장의 방향이 다르고 주장의 방향이 같더라도 사용하는 논거, 근거, 이유가 다 다르다. 그래서 모든 주간지를 다 읽으면 특정 이슈에 사용된 여러 논거, 근거, 이유 중에서 가장 보편 타당한 것들을 선택해 나만의 생각을 만들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생각의 힘과 크기가 커지는 것이고, 더 나은 나만의 질문을 던지고 답까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물론 안 한지 개 오래되서 지금의 나는 빈약함.) '양심'을 다루고 있는 여러 문장들을 만나보고 이에 대한 해석의 방향과 이유, 당위를 살펴보면 양심에 대해서도 더 나은 질문을 던지고 나만의 답을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언론사만 보는 이유는 학창시절 때의 습관이 남아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10대 시절에 수학 공부를 할 때는 똑같은 문제집 3권 사서 풀었다. 동일한 3권의 문제집을 모두 풀고 나서 2번 이상 틀린 문제를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그 이유는 채점을 하고 오답 체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틀렸다는 것은 내가 그 문제에서 다루는 개념을 똑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 하나의 언론사만 선택해서 그것만 집중적으로 파는 것은 자기만의 확실한 답을 만드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생각의 크기를 키우지 못한다.
어쩌면 지능, 성향차이일 수도 있다.
투자를 할 때도 몇몇 똑똑한 사람들은 간결하게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나는 머리가 좋지 않다. 그래서 쉬운 선택도 복잡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 2023년 말에 2024년 1월 1일 NISA 개편 이슈로, 일본 투자를 고려하게 되었다. 일본인들의 보수적인 성향을 고려해서, 100주씩 사야 하는 주식보다 1주씩 살 수 있는 ETF를 선택했고, ETF 중에서도 배당금을 많이 주는 쪽을 바라봤다. 그 결과 'NEXT FUNDS Nomura Japan Equity High Dividend 70 ETF'를 찾았다. (* 투자 하라는 거 절대 아님.) 이건 상당히 무식한 방법이지만, 2024년 일본 엔화 전망을 예측하기 위해 일본 시가총액 상위 150개 기업의 사업 계획서를 모두 살펴본 다음, 투자 결정을 내렸다.(* 물론 번역기 돌려서.) 똑똑한 사람들은 더 쉽고 단순하게 결정내릴 수 있었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바보니까ㅠㅠㅜㅜㅜ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상인의 감을 믿었던 것도 있다. 최진석 교수님과 김태유 교수님께서 공통적으로 하신 말씀도 "상인은 자기가 한 의사결정이 승패를 좌우한다." 였다. 그래서 일본에서 제일 잘나가는 상인 150명의 이야기를 들으면, 2024년 엔화 가치를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결과 2024년 엔화 가치를 긍정적으로 보고 사업 계획을 세운 곳이 있는가 하면,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사업 계획을 세운 곳도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대략 52:48 정도로 긍정적인 쪽이 근소하게 많았다. 그런데 일본 특유의 보수적인 성향을 고려한다면 52보다 더 높게 쳐줘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시가총액 상위 150개 기업의 사업계획서들을 모두 살펴보면 2024년 엔화 전망을 긍정적 또는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논거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논거들을 모두 골라낸 다음 중복되는 것들을 살펴 가장 보편 타당한 것들을 취합하면, 나름대로 합리적인 결정을 하게 된다.
다소 무식하지만, 무식하게 해야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를 그럴싸하게 설명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어야 생각의 힘과 크기가 강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비효율적인 방법을 그나마 당당하게 공유할 수 있는 이유는 기본학교와 함평에서 청년특강하시는 김문수 교수님의 일화를 통해 용기를 얻은 덕이다. 김문수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 그냥 머리가 핑핑 잘 돌아가는 타고난 천재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지 않았다. 김문수 교수님은 모든 벽면 방바닥에 논문을 붙여놓고 공부하실 정도로 집요하셨고, 새벽까지 주무시지 않고, 수 천명을 팔로잉 해놓은 개발자들의 트위터 글을 모두 보고 나서야 주무셨다. 그동안 내가 너무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김문수 교수님의 일화를 들으며 커다란 위안을 얻었다. 김문수 교수님 뿐만 아니라, 모차르트 또한 누군가는 타고난 신동이라 여길 수 있겠지만, 수 많은 작곡가들을 카피하고 매력적인 선율을 변주 해보는 기계적인 훈련이 없었다면 지금의 모차르트는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나다움의 시작은 모방이 끝나는 곳이다.
물론 내가 공유한 방법보다 생각의 힘과 크기를 더 크게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있겠지만!! 내가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그래서 김문수 교수님께 책을 쓰시면, 교수님은 우리나라 역사에 오래 오래 기억되실거라며 오지랖을 부리기도 했다. 리처드 파인만보다 훌륭한 물리학자가 많았음에도, 그가 천재의 대명사처럼 된 이유는 다른 학자들보다 책을 많이 남긴 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튼! 지능은 타고난 것일 수 있지만, 생각의 힘과 크기는 훈련을 통해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공유한다!!!
사실 내가 공유한 이 방법은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그렇기에 차라리 철학자의 공책(空冊) 으로 필사하며 나만의 언어를 구축해나가는 게, 생각의 힘과 크기를 키우는 데 더 더더더!! 좋을 것이다!!!
- 이전글문제아 24.12.07
- 다음글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24.12.0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