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로그인
  • 참여
  • 책 읽고 건너가기
  • 참여

    책 읽고 건너가기



    새말새몸짓 책 읽고 건너가기의 참여자 게시판입니다.

    매월 선정된 책을 읽고 나누고 싶은 글귀, 독후감, 그림 등을 올려주세요.

    , 글은 300이내로 올려주세요



    [새문장 3기] 삶의 고통을 이해하고 치유하기(채식주의자-한강)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김현식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53회   작성일Date 25-04-16 23:36

    본문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대한민국의 작가 한강이었다. 소식이 전해지자 오프라인과 온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는 한강의 책들로 가득 채워졌고, 책을 사고 싶어도 구매하지 못하는 보기 드문 일이 벌어졌다. 대한민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고 자랑스러웠다. 매년 서점에 마련되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특별 코너는 늘 외국 작가들의 책으로만 채워졌었다. 대한민국의 작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한강의 책이 전 세계 서점에 진열되고, 세계의 독자들이 한국 문학을 접할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에 큰 의미가 있다고 느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한강일까? 스웨덴 한림원은 무엇 때문에 그녀와 그녀의 작품에 주목했을까?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 문장

     

    한강의 수상 소식을 듣기 전, 나는 그녀의 책 세 권을 읽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였다. 세 작품 모두 읽는 내내 쉽지 않았다. 글이 어렵거나 복잡해서가 아니었다. 이야기 속 폭력과 상처를 마주하는 일이 감정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작별하지 않는다소년이 온다는 국가가 무고한 시민에게 가하는 폭력을, 채식주의자는 가정 내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폭력을 다루고 있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의 수상 이유로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들었다. 실제로 그녀가 쓴 소설은 제주 4·3 사건, 5·18 민주화운동 등 한국 현대사의 아픈 역사와 그로 인해 상처받은 개인들의 이야기를 다루었고, 가정 폭력의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과 치유의 과정을 담아내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폭력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는 어느 날 꿈을 꾼 이후로 고기를 거부하고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남편과 가족들은 영혜를 이해하지 못했고,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설득과 호소, 강요와 협박까지 동원하며 그녀를 예전의 정상(?)적인 모습으로 되돌리려 했지만, 영혜는 점점 더 고립의 대상이 되었다. 육식을 계속 거부하자 아버지는 영혜를 억지로 제압하고 고기를 입에 넣었다. 참다못한 영혜는 스스로 손목을 그어 저항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매질을 당했고, 말 잘 듣는 딸이 아니라는 이유로 언니보다 더욱 심한 폭력을 겪었다. 어머니도 영혜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방관했고, 딸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남편은 그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조용하고 순응적인 아내 역할을 기대하며 결혼했다. 하지만 기대한 역할을 해내지 못하자 미련 없이 영혜를 떠났다. 영혜는 있는 그대로 가족들에게 사랑받지 못했고, 대신 순종적인 아내와 딸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강요받았다. 이는 사랑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었다.

     

    치유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영혜를 병원에 입원시킨 건 가족 중에 영혜를 가장 아꼈던 언니였다. 언니는 입원이 아픈 영혜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다. 어릴 적 함께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했기에, 누구보다 동생의 아픔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언니는 자신만의 방식과 판단으로 동생을 돌봤다. 영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귀 기울이진 않았다. 영혜는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고, 햇빛과 물만으로 살아가는 나무가 되고 싶어 했다. 모진 폭력을 견뎌왔던 영혜가 종국에 선택한 존재 방식이었다. 결국 언니는 병원에서 강제로 음식물을 투입 당하던 영혜를 데리고 나왔다.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하여 생명을 이어가는 대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함께 있어 주기로 한 것이었다. 치유는 변화시키려는 시도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채식주의자는 삶의 고통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추천4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