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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문장 3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김훈-공터에서)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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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강민서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110회   작성일Date 25-02-13 00:07

    본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마동수는 다리를 오므리고 입을 벌린채 혼자서 죽었다. 그렇다. 삶이란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마동수가 살아온 시간은 눈 덮인 만주의 길림이거나, 장춘이거나 일본군의 공습을 받는 상해나 대련, 식민지의 서울 남산결창서 뒷골목, 인공 치하의 서울이거나 피난지 부산이었다. 그의 온 생애를 관통해 보아도 그의 삶에서는 사람 소리, 짐승 소리, 비바람 소리도 생겨나지 않는 적막한 풍경 그 자체다. 김훈의 공터에서는 혼란의 역사를 살아온 가족의 삶을 조명한 작품이자,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생하기지리호(人生何其支離乎)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다. 약자에게는 더없이 치열하고 살벌하다. 사람은 죽어도 한 생애가 끌고 온 사슬은 대를 이어 진행된다고 하였던가. 가축 우리에 문짝을 달고 피란민을 수용하던 축사에서 마장세와 마차세가 태어났다. 연탄 두장을 들고 얼어붙은 산비탈을 오르다 넘어진 이도순은 고관절에 금이 가서 병원에 입원해 남편 마동수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차남 마차세 혼자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다. 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마동수의 삶은 장남 마장세의 떠돌이 삶으로, 마차세의 남루한 일상으로 파고든다. ‘상전벽해 속에서 벌어지는 소유와 결핍, 지배와 피지배와의 관계가 시간 속에서 축적되고 공간 속으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마동수의 삶은 일제시대에 태어나 현대사의 파란만장한 시간을 겪으며 살아오신 아버지의 생애로 밀려갔다 밀려왔다. 아버지는 1932년 생으로 만 921개월 2일을 사셨다.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칼을 찬 일본 선생 이야기, 총알이 빗겨간 6.25 전쟁 당시의 이야기, 해방 후 토지개혁을 지켜봤던 이야기, 이장이 되셔서 마을 안길을 넓힌 새마을 사업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사는 일이 더 치열해졌을 때는 남해안 바닷가 어장막 여기저기를 돌아다니시며 어구(魚具)를 손질하셨다. 가장이 되셨던 아버지에게는 더 이상 정치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없었다. 젊은 가장(家長)에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무의미했다기보다 당장의 현실이 사람을 작아지고 쪼그라들게 만들었으리라. 가장 시급한 일이 처자식을 먹여살려야 하는 눈앞의 현실이었을 테니까. 그 덕에 아버지의 후손들은 군사독재 시대를 지나고 민주화 시대를 지나며 산업화의 역군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나라 경제를 발전시키며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혁명의 중심에 서 있지는 않았다.

     

    다시 공터에서

    역사적 변화 속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무엇일까? 벗어날 수 없는 인연의 굴레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마장세는 두려움에 회피를, 마차세는 성찰을 통한 수용을 선택했다. 그 선택의 과정은 얼핏 비슷해 보였지만 그러나 결말은 판이했다. 마장세는 몰락으로, 마차세는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을 남겼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죽음은 완강하고 적막했다.’ 어떤 기억은 후련한 소멸로, 어떤 이야기는 더 선명한 기억과 아픔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죽음은 이별도 아니고 끝도 아니었다. 한 시대와 긴 생애를 살아오신 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 그 온기를 다시 이해하고 각인하는 시간이었다.

     

    공터가 미완의 공간이듯 인간 삶도 본질적으로 미완이다. 삶도 공터도 모든 길로 통한다. 그래서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설레는 에너지이다. 삶의 경계에서 휘청이며 떠돌 때, 내 안의 깊은 통찰로 방향을 찾고 새롭게 나아갈 나만의 공터는 어디인가? 그 불완전한 공간에서 기다리며 삶을 새롭게 살아갈 용기가 있는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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