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장 3기]시·공간을 함께 견디는 우리들에게 (공터에서 - 김훈)
페이지 정보

본문
시·공간을 함께 견디는 우리들에게
‘미안허다’
‘죽은 육신의 적막은 완강했다. 돌이킬 수 없고, 말을 걸 수 없었다’
‘사람의 생애는 그 사람과 관련이 없이, 생애 자체의 모든 과정이 스스로 탈진 되어야만 끝나는 것 같았다’
신은 왜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하고 인생의 허무를 느끼게 하는 것일까! 죽음은 근원적인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마동수의 죽기 전 ‘미안허다’라는 말처럼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미안함’이라는 단어로 귀결 되어지는 것은 아닐까 표상해 본다. 이도순의 피난길에서 잃었던 남편과 딸아이에 대한 끝없는 연민, 베트남전에서 마장세가 받은 무공훈장에 대한 무거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마차세의 도리에 대한 어긋남. 미안함은 슬픔을 가중시킨다.
슬픈 세상은 공허하고, 상심으로 가득 찬다.
죽어가는 사람의 미안함은 죽음으로 종결되지만 산 사람의 미안함은 살아있는 동안 두고두고 누적된다. 그래서 산 사람의 미안함은 더 크고 더 가엾다.
‘부평초’
격동기 시절 나라 잃은 설움에 마동수는 상해와 만주에서 그 무엇인가 의미있는 것들을 찾아 헤매였지만 제대로 이룬 것 없이 조국으로 돌아와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한 채 부유한다. 6.25를 겪으며 의지할 곳 없이 살아남은 이도순의 삶 또한 남루하기는 마찬가지다.
남루한 사람들끼리 만나서 마장세와 마차세를 낳아 기르지만 그 어디에도 안락함은 없다.
남루한 부모를 닮아 남루한 자식들의 삶.
아버지의 하중을 피해 달아난 마장세는 고향도 없고 부모 자식도 없는 날아다니는 새가 되고 싶었다. 아버지를 잃은 장남이기보다 마치 제3자로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동생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자신에게 지워진 무거운 근본을 없애고자 한다.
오장춘의 밥에 대한 허기는 네 것과 내 것의 구별을 해체하였고 너절하게 살게했다.
시누크와 마장세의 아내 린다 또한 바람 속에 날려와서 연고 없는 땅에 떨어진 민들레 홀씨처럼 붕붕 떠다니다가 서로가 서로에게 안착했다.
근본이 없어서 그 안착은 불안하지만 견고해지길 응원한다.
모두 시대의 어둡고 아픈 격동기에서 배태된 남루하고 부평초 같은 삶이다.
그러나 이런 남루한 삶들이 각각의 점을 만들고 점들은 앞과 뒤로 응집하여 선을 만들어 역사가 된다.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어렸을 적 마을길 한 귀퉁이나 빈공터에서 나이 비슷한 또래들과 해 질 녘까지 한바탕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곳은 자발적으로 모인 아이들끼리 놀이를 선택하고 룰을 만들어 아무 때나 모일 수 있었고 놀 수 있었다. 그 놀음에서 우리는 개체로서 인정되었다.
더 나아가 학교라는 공터, 사회라는 공터에서는 자아를 더욱 질서 있게 견고히 하여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나’로서 존중받길 갈구한다.
내가 존재로서 증명될 수 있는 것들, 그것들을 위해 우리는 한평생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남루한 마동수와 대통령 박정희의 죽음에 대한 대비를 통해 근원적 삶에 대해 되새겨본다.
남루한 죽음도 위대한 죽음도 모두 죽음이라는 보편성에서는 더 무거운 것도 더 가벼운 것도 없다. 이것은 삶도 마찬가지이다.
각 개체로서 바라다보면 모든 삶은 소중하며 역사가 된다.
시·공간이라는 동시대적 공터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두고 점을 찍어야 할까?그 점들은 어떤 선을 그리고 어떤 역사를 만들어갈까?
마동수가 온전히 세상에 활착하지 못하고 떠돌면서 찾아 헤맸던 것이 바로 ‘온전한 나’로 증명 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을까 가늠해 본다.
온전한 나로서 살아내자.
.
.
.
그리고,
일상의 사소한 것들의 질감이 내 안에서 의미 있게 쟁여지길 바란다.
첨부파일
-
1공터에서- 시공간을 함께 견디는 우리들에게.pdf (48.8K)
3회 다운로드 | DATE : 2025-02-13 00:50:25
- 이전글[새문장 3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김훈-공터에서) 25.02.13
- 다음글[새문장 3기] 삶을 긍정하고 자신만의 의미 찾기 (공터에서 - 김훈) 25.02.1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