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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문장 3기] 삶을 긍정하고 자신만의 의미 찾기 (공터에서 - 김훈)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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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현식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087회   작성일Date 25-02-12 23:49

    본문

    삶을 긍정하고 자신만의 의미 찾기

    새문장 김현식

     

    설에 아버지를 뵈었다. 아버지는 귀가 잘 안들려 대화는 자주 끊어졌다. 무릎도 좋지 않아 계단을 절뚝거리며 오르내리셨다. 아버지는 누구보다 두꺼운 종아리를 가지고 있었고 힘이 좋아 일을 잘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종아리에 반해서 결혼했다고 말씀하셨다. 자신과 자식을 굶기지 않을 거라고 믿으셨다. 하지만 세월에 장사 없다고 아버지는 서서히 힘이 빠져갔다. 무릎 수술을 하고 나신 후에는 종아리가 눈에 띄게 얇아졌다. 소리를 크게 틀어놓았지만 잘 들리지 않는 TV를 보며 힘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지셨다. 마동수(馬東守), 마장세(馬長世), 마차세(馬次世) 삼부자의 삶을 보면서 아버지를 많이 생각했다. 그들의 인생 조각들과 아버지의 인생과 많이 겹쳐져 있었다. 특히, 마차세(馬次世)가 겨울에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며 눈길 위를 위태롭게 달리는 장면에서는 어릴 적 아슬아슬 눈길 위로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라서 마음이 시렸다. 김훈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오르락내리락했던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묵묵히 살아갔던,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할 것 없이 애쓰며 살아왔던 아버지 같은 평범한 마동수(馬東守) 가족의 삶을 담담히 보여주고 있다.

     

    힘에의 의지(the will to power)

    아버지는 소처럼 사셨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드시고 일을 하러 나가셨다. 경기도 이천에서 농사를 지을 때는 논과 밭으로, 서울에 올라와서 시장에서 땅콩을 구울 때는 새벽 시장으로, 막노동할 때는 건설 현장으로, 두유와 우유를 배달할 때는 골목과 아파트 사이로 나가셨다. 말없이 일하러 갔다가 말없이 돌아오셔서 주무시고, 다음 날 다시 나가셨다. 전날 힘든 일을 하셨어도 하룻밤만 주무시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생생하게 일을 나가셨다. 니체는 삶의 본질을 '힘에의 의지'로 보았다. 니체는 생명체를 발견할 때마다 나는 힘에의 의지도 함께 발견했다.”라고 말했다. 이는 단순히 먹고사는 그것뿐만 아니라 자신 속에 진정한 자아를 찾고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주어진 삶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하고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마동수(馬東守)는 만주의 길림과 장춘, 일본의 공습을 받은 상해와 대련, 식민지의 남산경찰서 뒷골목, 인공(人共) 치하의 서울, 피난지 부산, 서울 달동네 등 끊임없는 고난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삶을 버텨왔다. 고해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굳건히 지탱하며 살아갔다. 비록 가족들을 성실히 돌보며 살지 못해 그의 아내와 자식으로부터 충분히 이해받지 못했지만, 세상에 해 끼치지 않고 나름 애쓰며 살았다. 그의 애를 쓰며 살아가는 모습과 강인한 생명력은 니체의 '힘에의 의지'를 생각나게 한다. 마동수(馬東守)는 모순에 가득한 굴곡진 한국 현대사 속에 이리저리 휩쓸렸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애쓰며 살아갔다.

     

    삶의 공허함

    아버지의 고향은 충북 괴산이다. 대가족을 이끌던 할아버지는 한 입이라도 줄이기 위해 초등학교를 마친 아버지를 내쫓듯 인천으로 보냈다. 어린 나이에 일은 서툴렀고 결국 매를 맞다가 귀를 잘 못 맞아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 후 여러 지역에 일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경기도 이천으로 흘러들어와 가족을 꾸렸고 몇 년 후 가족을 데리고 일을 찾아 서울로 왔다. 어떤 의미를 찾아 돌아다닌 것이 아니었다. 돈을 벌기 위해 자기 밥벌이를 하기 위해 가족들을 건사하기 위해 떠돌아다녔다. 세상과 불화하며 세상을 부유했던 마장세(馬長世)처럼 어느 곳 하나 아버지를 따뜻하게 맞아준 곳은 없었다. 마장세(馬長世)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대가족의 전통적인 가치관이 무너지고,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대표한다. 마장세(馬長世)는 한국전쟁 중에 태어나 아버지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고 방황하며 살아가다가 결국 이민을 떠났다. 자신을 구속한다고 느끼는 가족, 자신이 베트남에서 사살한 전우가 묻혀있는 한국을 떠나 먼 남태평양에서 고독한 삶을 살아갔다. 그의 모습은 현대인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허우적대며 살아가는 공허한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삶을 긍정하고 자신만의 의미 찾기

    아버지와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은 마차세(馬次世). 한눈팔지 않고 우직하게 물적 토대를 만들어 가족을 지켜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는 자신의 병은 모두 아버지 탓이며 이혼을 하겠다고 끊임없이 말씀하시지만 나 없이 저 사람이 어떻게 살겠니?’ 하며 항상 아버지를 측은히 여기며 아버지를 떠난 적이 없다. 함께 살아오면서 생겨난 일상의 사소한 것들이 쌓여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질게 묶어놓은 것 같았다. 공터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공간이자, 그들의 내면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공터는 비어 있지만, 동시에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는 공간이며 채워갈 수 있는 공간이다. 마차세(馬次世)의 삶 속에 비어 있는 공터를 박상희와의 일상성으로 채워가고 자기 삶의 역사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공터에서 인물들은 삶의 긍정과 허무를 동시에 경험하지만,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 나간다. 마차세(馬次世)가 오토바이로 종일 달리며 살아가는 것은 삶의 지겨움과 허무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애쓰며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임을 보여준다. 좌절할 수 있고 시련을 당할 수 있지만,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난 속에서 생명력을 피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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