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장 3기] 어머니의 자서전 (공터에서-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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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이들의 삶>
‘공터에서’는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앞선 시대를 살다 간 마씨 집안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마동수와 이도순, 장남 마장세와 마차세의 파란의 삶을 담담하고 경쾌한 필치로 그려냈다. 그의 탁월한 문장력과 개성 있는 필체는 내게 매력적으로 각인되었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나 또한 부모님을 비롯, 우리 가족이 살아온 평탄치만은 않은 가족사를 마음 한 켠에서 그려내고 있었다. 김훈 작가 특유의 필체를 흉내 내면서...
‘공터에서’를 읽으며, 왜 제목이 ‘공터에서’일까 궁금했다. 나의 상상력의 한계로, 결국 검색을 하고 나서야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의 지난 삶 역시, 공터 같이 황량한, 불안하고 방황하는, 맨 땅에 헤딩하고 도전하는 삶이었던 것 같다.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내면은 어느새 어린 시절, ‘나만의 공터’로 찾아가 그 때의 나를 만나고 있었다.
‘어린 나이의 마동수에게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
내게 서울이라는 낯선 세상은 혼란, 방황, 단절, 소외, 고통이고 트라우마였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위암으로 떠나보내신 후, 6남매 교육을 위해 홀홀단신 서울로 상경하셨다. 상계동 수락산 자락 아래, 3평 짜리 단칸방을 마련하자 자식들을 서울로 전학 시키셨다. 두메산골에서 들로 산으로 맘껏 뛰놀며 천진난만한 유년시절을 보내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오니 할아버지ㆍ할머니, 시골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어머니는 여자 몸으로 홀로 6남매 건사하시느라 한 맺힌 세월을 보내셨고, 서럽게 우시며, 중학생이던 내게 “너는 커서 엄마 자서전을 써라. 엄마 삶을 책으로 쓰면 10권은 될거다” 라고 말씀하시곤 했고, 나도 자연스레 어머니의 고난의 삶을 책으로 써드려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사춘기도 없이 애어른처럼 학창 시절을 보내고 30대가 되어서야 사춘기가 찾아와 내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서울에 온 후 트라우마를 겪으며 결핍된 삶을 살아왔는데, 어머니가 내게 본인 자서전을 쓰라고 부담을 준 것에 뒤늦게 반발심이 올라왔다.
<내 삶의 공터에서>
내 삶의 첫 번째 공터는 서울로 상경한 5학년 때다. 어느 저녁 무렵의 집 근처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은 다들 저녁 먹느라 오붓하게 집안에 있는 시간에 오빠와 나, 여동생은 텅 빈 공터로 내몰려 있었다. 단칸방 집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그때의 불안, 소외, 고립, 처절하게 혼자라는 설움은 아직도 생생히 사무치게 뼈에 새겨진 듯 하다.
내 삶의 두 번째 공터는 바로 지금이다. 중증환자 대소변 기저귀가 수북이 쌓여 바닥에까지 나뒹구는 병원 오물처리실! 악취가 뼈 속까지 파고든다. 삶의 밑바닥, 나는 다시 공터 한가운데 와 있다. 사지마비 어머니 옆에서 3년 가까이 간병 중이다.
나와 정서적 유대감ㆍ친밀감이 별로 없던 어머니는 간병하는 동안 내게 어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 홀로 6남매 키우느라 수락산에서 커피 장사 하시던 이야기들을 해주시곤 했다. 어머니 발병 시 골든타임을 놓쳐 제때 손 써드리지 못한 탓에 죄책감 등으로 어머니의 삶을 책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써야만 한다>
‘공터에서’는 내게 무척이나 특별하게 여운이 남는 제목이자 작품이다. 작가 특유의 단문에 경쾌한 필치로 시적이고 시각적으로 그려낸 마씨 집안의 삶을 따라가면서 나와 부모형제의 지나온 삶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우리 가족사를 글로 쓰고픈, 써야만 한다는 마음이 차올랐다.
그의 시적인 인상적인 구절 하나를 들어본다.
p311. 화장장에서 내려오는 언덕에 억새가 피어서 바람에 흔들렸다. 억새꽃이 부풀었고, 그 속에 가을 빛이 자글거렸다.
p320. 마차세의 눈에 말의 핏줄은 피곤해 보였다. 뿌연 갈기가 늘어져 이마를 덮고 눈을 가렸는데, 터럭 사이로 보이는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작가는 그들의 삶을 말에 빗대어 이렇게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무거운 자기만의 생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는 육체적ㆍ정신적ㆍ심적으로 지치고 충혈되어 있는 것 같다. 작가는 그의 마음의 깊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을 모두 버리고 싶었지만 버려지지 않아 마침내 연필을 쥐고 쓸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나도 내 안에 있는 그것들을 밖으로 꺼내야만 함을 느낀다. 내가 살아나기 위해서!
작가님께로부터 어머니의 자서전, 그리고 내 삶을 써낼 볼펜을 선물 받은 기분이다. 나를 만나야 한다. 내 삶을 써내야 한다. 지금 이 삶의 현장, 두 번째 공터를 넓은 도화지 삼아 내 삶을 다시 스케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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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자서전공터에서-김훈.hwp (9.0K)
0회 다운로드 | DATE : 2025-02-12 22: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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