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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문장2기] 신은 땅을 딛고, 둥근 것은 구른다(열하일기_연암박지원)_1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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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송선형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393회   작성일Date 24-06-20 00:27

    본문

    신은 땅을 딛고, 둥근 것은 구른다


    새문장 2기 송선형

     

    어찌 참된 소리를 내어 자기 마음을 크게 한번 펼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_[본문 140]

     

    발걸음과 함께한 붓의 기록

    사소함에도 역사는 있다. 작은 먼지 한에도 그 시간이 스며들지 않은 것이 없다. 현대에 오기까지 인류 변천의 여정은 거대한 강줄기에서 갈라져 흩어지다 다시 모여 몇 가닥이 뭉치다 다시 헤어지고 어떤 줄기는 길을 틀어 흐르다 어느 날엔 메말라 흔적이 되기도 했다. 그 경로가 희미해진 물줄기는 미지수를 갖는 방정식처럼 수수께끼를 품고, 길잃은 부표 浮標처럼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현재에도 선명히 흐르는 물줄기는 그 의식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여러 문명 속에서 살아남았던 인류의 가꾸어온 양식의 틀이다. 그러나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편집되어 사용되었음으로 시작점의 원형 그대로가 아닌 시공간마다 다른 모습으로 남아있다. 끊임없이 재생되는 역사의 단편들은 승자들의 단련된 입김이 작용하여 일부는 고결한 문장을 얻고, 일부는 차단되어 흙 속에 파묻혀 버려 잊히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을 휘어잡는 힘 위에는 문자가 있었고 문자는 곧 지혜로 통하였다. 많은 통치자들은 권력의 영속성을 위해 황금처럼 변치 않을 지혜를 갈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혜는 시간에 고갈되는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합된 문자들에 의미를 봉인하고 구슬 ()과 같은 귀중한 보물처럼 신봉하게 되었다. 그 자체로 고유함이 부여되어 어떤 상황에서든 변치 않을 진리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봉인시킨 지혜 주변으로 가치 판단이란 강력한 테두리를 둘러쳤다. 봉인된 지혜는 밤에도 빛나는 인공의 태양이 되고 그 중심으로 그를 보필할 행성들이 하나둘 모여 주변을 감싸 돌았다. 하지만 실학 實學의 도입과 발전에 고결한 지혜의 순도는 의심을 받게 되었다. 조선 후기 때 유럽의 선진 과학과 청나라의 제도는 시대가 요구하는 지혜였고 조선에 만연되었던 답습기만 하는 성리학은 빛을 잃고 있던 태양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속박에서 벗어난 어떤 이가 솟아나는 풀처럼 써 내려간 기록엔 몇 %의 진실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애초에 그런 글은 위와 같은 진실의 순도를 말하는 비율에 빗대어 설명할 수 없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차라리 그 기록은 황금보단 같은 것으로, 겪고 있는 매 순간을 그 자리에서 소화 시키며 일단 붓 지나가는 대로 종이란 수레에 실어 버렸을 테니 말이다. 또한 그 모습이란 발바닥이 닿는 길마다 들러붙은 여기저기 작은 돌들이 모여 서로 엉겨 붙다 시간에 층이 쌓이고 이런저런 상황에 압축과 침식 등의 변형을 겪고 그 통에 독특한 결을 이루니 그 층마다 성분과 빛깔도 성질도 다 제각각이라 아주 울퉁불퉁 제멋대로 생긴 돌덩이이다. 그리고 그 서사란 입체적이고 생생하여 그 자체가 진실이고 동시에 거짓이라 그저 그렇게 살아간 자의 이야기라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니 한 시대의 자유로운 영혼이 익숙지 않은 풍랑을 맞으며 길을 걸어가게 된다면 어떤 기록을 남기게 될 것인가!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자신만의 동력으로 작성한 여행기엔 그저 발 닿는 대로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 말로 주고받은 것과 느껴진 모든 것이 새로운 문장으로 적혔을 것이다. 게다가 그 방랑자가 호기심으로 무장한 지식인이었고 사람 사귐에 근면하며 매사 유머를 끌어내 주변 사람과 박장대소함에 정성을 들일 줄 안다면 그 사람이 남긴 기록이 주는 즐거움이란 늘 기대 이상일 것이다. 이 여행기의 저자 연암 박지원은 어린 시절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그 통에 학업이 다른 또래보다 늦었고 청년 시절엔 우울증도 겪어 출세의 길에서 멀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의 아픔이 다른 선비들은 좀처럼 갖지 못했을 경험을 하게 하였고 그 덕에 남다른 철학과 시선을 갖추게 했을 것이다. 그는 여행 내내 길 위에서, 말 위에서, 혹은 촛불 곁에서 숙취 중에도 그날에 있었던 많은 일들을 열정적으로 적어 내려갔다. 또한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의 친구들과 그 출신과 신분에 상관없이 필담으로든, 몸동작으로든 필사적으로 소통하려 하였다. 함께 여행길에 올랐던 조선 사행단의 가장 아래 계급인 마두들마저 되놈이라 멸시하였던 청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그의 모습에서 그가 품고 있는 인류애가 얼마나 폭이 넓은지 알 수 있었다. 또한 신문물과 제도 그리고 역사나 그를 품은 지역의 형세 등에 관해서, 이국의 땅에 이르자 자신의 견해로 응축된 탯덩이같은 생각들이 비로소 때와 장소를 만나 울음을 터트리고 태어나 그 발자국이 문장으로 적혀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진짜와 가짜의 지혜

    속재필담에는 연암이 심양에서 사귄 상인 전사가에게 진짜와 가짜 골동품을 구별하는 법과 가짜 골동품이 어떠한 방법으로 진짜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지는지 그 자세한 설명을 듣게 된다. 우선 진짜의 모습을 세밀히 알아 진품을 알아보는 눈을 갖추는 것이 중요했다. 정말 진귀한 골동품은 흙 속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 묻혀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한다. 또 가짜가 진짜처럼 보이도록 흉내 내는 방법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그 과정이 얼마나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는지 알려준다. 이 대화에서는 전사가라는 사람이 비록 상인이지만 골동품에 관해서 여느 학자 못지않게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짜가 진짜가 되는 마법은 한편으론 과학의 발달을 가져다주기도 하였다. 조금 비약적인 견해일지 모르나 한편으로 사기 詐欺를 위해 시작된 수법들은 어느 순간 발명의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고도 생각한다. 오늘날에는 실험실에서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낼만큼 눈부신 기술을 갖추게 되었다. 천연 다이아몬드 중 가장 젊은 원석은 12억 살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류는 새로운 기술로 단 3~4주만으로 그 기간을 단축해 버렸고 그 완성된 모습은 전문가도 육안으로 판별이 쉽지 않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골동품도 아니고 속임수를 위한 노력도 아니지만, 이 인공의 다이아몬드는 시간을 극복하여 성공한 과학적 성과로 현세대들은 이를 또 하나의 진실로 받아들이며 그 물성의 가치를 천연 다이아몬드와 더불어 인정하고 있다. 다이아몬드의 어원은 그리스어인 아다마스δάμας이며 뜻은 정복할 수 없는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제 탄생의 유일성은 정복당했고 영원불멸의 상징으로서 그 의미만이 복제되어 사용될 것 같다. 더 강하고 영원성을 갖춘 물질이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무엇이 무엇을 진짜로 만드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현상은 그저 차고 기우는 달의 모습 같기도 하다. 흰색을 더욱 흰색으로 만들고, 흑색을 더욱 흑색으로 만드는 것은 그 옆에 더 환한 흰색과 그 옆에 더 어두운 흑색이다. 그렇기에 나열되는 현상의 모습 중에 가장 그렇게 보이는 것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진짜이고 가짜를 판별하는 지혜인지도 모른다.

    춘추 春秋는 공자가 쓴 유교 경전 중 하나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이를 아름다운 의리로 삼아 우러러 공경하였지만, 이미 그 내실은 잃어 텅 빈 껍질 같은 것이었다. 우리의 선비들은 실상 그 본토에 진출할 기회는 거의 없어 그 학문은 이 좁은 한반도의 울타리 속에 고여 건강하게 자라지 못했다. 소위 학문이란 신중히 생각하고 명확히 판별하고 상세히 묻고 널리 배우는 것_[본문 377]이라지만 그들에게 춘추명분 名分대의 大義만이 강조되어 부모의 나라를 멸망시킨 오랑캐를 멸시하고 그 명 나라를 잊지 않는 것이 도리임을 일깨우는 그림쇠곡척이 되었다. 한편 청나라 황실은 이와 같은 뿌리에서 자란 주희의 주자학을 자신들의 황실에서 대대로 이어온 학문이라고 내세운다. 이는 당시의 사대부들을 감화시키고 다스리기 위한 책략이었다. 이 계책은 유교를 숭상하는 한족을 품으로 끌어오는 데 성공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 속에 숨겨진 의도에 분개하는 선비들로 하여금 주자학에 대한 양가감정을 불러오게 하기도 하였다. 명나라 말엽 나라의 조종 祖宗으로 삼은 주자학이 오랑캐가 일으킨 청나라의 황실로 이어져 자연스레 천자의 위상으로 지켜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청나라는 현재 역사에서 명실공히 중화를 다스렸던 마지막 왕조로 당당히 기록되었다.

    연암은 골동품을 제대로 보는 법을 알기 위해 전사가와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 내용에서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생기는 인간이 느끼는 혼돈은 마치 먹구름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는 기분을 들게 했다. 보이는 사물이 그러한데, 보이지 않는 것의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함은 더욱 혼미스러워 이내 명분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치밀한 공방전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엔 가짜가 진짜가 되는 신기 神技를 부리기도 하고, 또 찰나엔 또 하나의 진짜가 탄생 될 때도 있다. 진실에도 중심이 있다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좌우에 치우쳐 있음을 알면서도 그 자리가 중심이 되도록 꾀를 낸다. 그 자리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우선이 될 때 옳고 그름은 정해지고 방향성이 정해지며 사건으로 흐른다.

    오래된 골동품일수록 영롱한 빛을 내는 이유에는 그 치열함이 스며들어있기 때문이고,

    영원함을 상징하던 다이아몬드도 그 유일함을 잃고 나서야 정의되었던 의식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으로 모색 될 수 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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