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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문장 2기] 삼류 선비(열하일기-연암 박지원)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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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강민서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234회   작성일Date 24-06-19 11:54

    본문

    삼류 선비-열하일기(연암 박지원)

     

    인생

    1780524일 북경을 출발하기 하루 전, 연암은 정사로 임명된 삼종형과 함께하는 연행길을 앞두고 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 연암의 마음을 알았는지 장복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창대와 함께 연암을 찾아왔다. “나으리, 내일 사행길에 나서면 석 달이 될지 열 달이 될지 모르는데 장도길에 운수라도 점쳐보면 어떨까요?. 일전에 사행길 다녀오다가 구했습니다.” 하고 연암의 눈치를 보며 타로 카드를 슬며시 꺼내 놓는다. 초행길이라 내심 궁금한 것이 많았던 연암이었지만 그래도 카드를 직접 뽑지는 않고 창대를 시켜 대신 뽑아 보게 하였다. 창대는 신기한 듯 카드를 한동안 살피더니 신중에 신중을 기해 석 장을 뽑았다. 창대가 뽑은 카드는 메이저 0, 10, 21번 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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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암은 창대가 펼쳐 놓은 카드를 묵묵히 보고 있었다. 이때 장복이 손을 비비며 카드 풀이를 시작하였다. “나으리, 카드가 좀 어수선하지만 제가 해석을 해 보겠습니다.” “그래, 어디 시원하게 풀어 보아라!” “그러니까 먼저 이 바보 카드는 나으리께서 참말로 기다리던 여행을 하게 된 것을 잘 말해주는 것인데, 봇짐에 종()이를 잔뜩 넣어 가면 고생이 되더라도 좀 나을 것이다 뭐 이런 의미이고, 가운데 카드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제 나으리께서 연경에 가면 수레바퀴를 많이 볼 것인데, 다양한 종류는 보지 못하고 똑같은 수레바퀴 한 종류 밖에는 못 보겠다 뭐 그런 뜻입니다. 여러 종류를 못 봐도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마시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그림이 가장 까다로운 그림인데 그러니까 이제 나으리께서 이번 사행길에 물에 빠져서 옷을 벗을 일이 많겠다. 그래도 죽는 순간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않으면 겨우 목숨은 부지하며 살길이 있겠다 뭐 이런 뜻인 것 같습니다.” 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웃다가 창대를 보며 하필 이런 카드를 뽑았냐고 타박을 할 기세다. 이때 창대가 코를 훌쩍거리며 카드를 가리키며 하는 말이,

    딱 보니 그거구만. 나으리는 사바팔방 걸리적 거리는 거 하나 없이 천하태평한 사행단으로 술병과 술잔을 들고 맘대로 돌아댕기겄구, 또 사행길에 온갖 길짐승 날짐승 조심허고 특히나 여자 조심허라 그렇지 않으면 탈탈 털리고 알거지 된다. 딱 그거구만요.” 하며 무릎을 쳤다.

     

    여행

    타로 카드에서 메이저 카드는 0번부터 21번까지 22장으로 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시작이 1이 아니라 0이라는 것이다. 메이저 카드 0은 바보(The Fool) 카드다. 바보처럼 순진한 인물의 긴 여정을 알리는 숫자가 바로 0이다. 바보 카드는 뒤에서 고양이가 물어뜯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춤을 추며 자기 길을 계속 걸어가고자 하는 순진한 방랑자의 출발을 의미한다. 그런데 카드에서 바보는 항상 움직이고 있고, 항상 어딘가로 가고 있다. 딱히 정해진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한곳에 머무르는 법이 없다. 0번 카드의 모험은 1번 마법사와 2번 고위 여사제의 신비에 싸여 시작된다. 바보는 여행 중 낯선 존재들과 조우한다. 은둔자, 전차, 천사와 악마, 심지어 죽음까지도 만난다. 0번에서 시작한 메이저 카드는 10번 운명의 수레바퀴를 지나면서 외적인 정복에서 벗어나 내적인 수용으로 의식이 반전되고 내면적 변화의 길로 들어선다. 여행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사건을 경험하면서 인식 변화와 함께 관점이 바뀌고 세상을 보는 시야가 달라지는 것이다. 운명의 전환점을 맞는 것이다. 메이저 카드 마지막 번호는 21(The World)이다. 21라는 숫자는 2(고위 여사제)1(마법사)이 함께 들어 있다. 춤을 추며 여행을 시작한 바보는 여행의 정점인 최후의 승리를 획득하며 마치 정반대의 것들을 춤 속에 통합이라도 하듯 두 개의 마법 지팡이를 손에 쥐고 신들의 보호 아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 처음으로 돌아오지만 더 이상 떠날 때의 바보가 아니다. 여행을 통해 모든 존재와 자신을 연결하고 대상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 상태, 즉 무한한 세계로 나아간 상태를 의미한다.

    여행은 비우는 일이다. 자기 속에 자기가 많으면 타인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비우지 않으면, 열려 있지 않으면, 이질적이고 낯선 것을 결합해 새롭게 구축한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 자기를 비우고 온 감성과 지성을 열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애쓰며 걸어가는 일이다. 자신이 시작한 걸음을 멈춰서도 안 된다. 여행이 한때의 기념이나 휴식이 된다면 정해진 쳇바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더 높고 더 넓은 세상을 만나는 일은 끝내 요원하다. 매일 매일 새로운 눈과 마음으로 보고 들으면서 낯선 세상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볼 일이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 하나로 들뜬 0번 바보 카드의 주인공이 내 눈에는 갓을 쓴 연암의 모습으로 보인다면 나의 지나친 상상일까?

     

    배움

    며칠 전 동료들과 함께하는 학습공동체에서 잘 배운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말한 적이 있다. 어떤 동료는 잘 배운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것이라 말을 했고 어떤 동료는 학생의 삶과 연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잘 배운다는 것의 의미를 변화라고 말했다. 잘 배웠다는 것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앎에 파문을 일으키며 새롭고 다양한 관점을 갖게 하고, 행동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 배우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먼저 배우려는 사람의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 편견을 버리고 개방적 태도로 대상을 마주할 때 잘 배울 수 있다. 다음으로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호기심은 배우는 태도를 주도적으로 밀고 가는 힘이 된다. 더 깊이 더 많이 알고 싶은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상실한 채 이미 있는 것을 끌어안고 낡은 시각에 눌러앉는 순간 우리는 꼰대가 된다. 마지막으로 배움에는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잘 배움의 시간이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잠을 이겨야 하고,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먹을 것을 줄여야 한다. 때로는 사방이 막힌 것처럼 답답하고 해결되지 않는 과제에 머리가 터지기도 한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순간 도망가고 싶은 구실이 끝도 없이 밀려온다. 그래도 배움이 쌓일 때까지 쌓아야 달라진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알기 위해서는 접촉해야 한다. 접촉하지 않고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연암은 중화를 알고자 했다. 그것도 철저히 알고자 했다. 이유는 하나. “대개 천하를 위해 일하는 자는,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될 일이라면 그 법이 비록 오랑캐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마땅히 이를 수용하여 본받아야만 한다.” 배움은 생존의 양과 질을 증폭하려는 건너가는 자의 치열한 몸부림이다. 힘은 앎에서 나온다. 지식과 앎에 대한 개개인의 에너지가 사회적 움직임으로 이어질 때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 연암은 생각이 열려 있었고, 모든 것을 궁금해했으며 인내심이 있었다. 성리학의 관념으로는 현실을 개선할 수 없다고 판단한 연암은 철저히 중화를 배워 더 나은 삶을 꿈꾸었다.

     

    시선

    힘들 때 우는 사람은 삼류, 힘들 때 참는 사람은 이류, 힘들 때 먹는 것은 육류라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 우리나라 선비들이 연경에서 돌아온 사람을 만나 제일 장관이 뭐였는지 하나만 꼭 집어 말해 달라고 하면, 일류 선비는

    , 도무지 볼 것이라고는 없습디다. 아무리 드높은 학문을 이루었다 한들 일단 머리를 깎았으면 곧 오랑캐요 오랑캐는 개돼지나 마찬가집니다. 개돼지에게서 뭐 볼게 있겠습니까?

    이류 선비는 이렇게 말한다.

    성곽은 만리장성을 본받았고, 궁궐은 아방궁을 흉내냈을 뿐입니다. 명나라가 멸망하자 산천은 누린내 나는 고장으로 변했고, 성인들의 업적이 사라지자 언어조차 오랑캐들의 말로 바뀌어 버렸지요. 그러니 무슨 볼 만한게 있겠습니까? 진실로 10만 대군을 얻어 산해관으로 쳐들어 가서 만주족 오랑캐들을 소탕한 뒤라야 비로소 장관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삼류 선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백성들이 몽둥이를 만들어 두었다가 저들의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를 두들길 수 있게 된 다음에야 중국에는 볼 만한 것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비록 삼류 선비지만 감히 말하리라. 중국 제일의 장관은 저 기와 조각에 있고 저 똥덩어리에 있다.

    최고의 의리를 아는 일류 선비의 말은 누구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그 자신마저도. 이류 선비는 자기 논리에 갇혀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삼류 선비는 쓸모 없는 똥덩어리와, 버려지는 기와 조각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다. 질문과 호기심을 장착한 삼류 선비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야말로 자기 이상을 사는 사람이다. 삶이 여행이라면, 여행이 배움이라면, 배움이 사유가 확장되어 세계의 진실을 보는 것이라면, ‘로 살기 위한 건너가기라면 나는 기꺼이 삼류 선비를 배워보리라. 깊이 사유해 보리라. 힘들 때 여행하며 잘 배우는 사람이 일류다. 탁월한 일류다.

     

    보고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보지 못하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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