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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문장] 시즌1 완결_찰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장폴 사르트르_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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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이선영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193회   작성일Date 23-06-21 23:52

    본문

    찰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이 세상에 던져졌다. 지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함께했던 사람들, 마주했던 상황과 목격한 무수한 사건들이 단단한 지층으로 켜켜이 쌓여 지금의 내가 여기에 있다. 장 폴 사르트르. ‘나는 나 자신을 마련하겠다는 커다란 욕구를 채우기 위하여 태어났다.’ 자기 세계의 창조자로서 그것을 이루는데 영향을 미친 가족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사건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강렬하게 빛나는 창조력의 원천은 바로 책이었다. 할아버지의 서재. 작달막한 고대의 유물에 둘러싸인 작은 신전 속에서 뛰어놀며 어른들의 손아귀에 쥐어진 자기 운명을 기어코 뚫고 나와 자기 자신으로 살다 간 인간! 자기의식을 활자화하여 삶의 소음대신 불멸의 기록으로 영원을 살게 된 위대한 작가. 말의 세계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영생을 얻은 자의 유년시절은 나의 그 시절과 포개졌고 쓰고자 발버둥치는 지금과 뒤엉키며 뿌연 안개 속에서 저벅저벅 다가오는 또 다른 나의 환영으로 느껴졌다. ‘아무나 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너를 선택했다.’ 그 환영이 내게 말을 건다. 말의 세계 속에서 읽고 쓰는 것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 거대한 장벽을 밀어내는 것 같은 힘겨움과 괴로움을 견디면서도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사르트르처럼 위대한 작가로서의 확신, 미래의 눈으로 지금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서도 뻔뻔하게 이 짓을 계속하는 것은 아마도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 꿈틀대기 때문일 게다. 더 나은 인간으로, 내가 원하는 완성된 인간으로 건너가고픈 의지. 그것은 곧 창조의 달인 신의 작업을 나도 한 번 쯤은 해보고 싶은 거다. 내 삶의 창조자로서 말이다.

     

       1. 읽기

       어릴 적 나는 책장에 꼿꼿하게 서있는 책을 한 권씩 집으며 제목을 순서대로 읽다가 호기심이 생기는 책을 고른 후, 풀 뽑듯 그것을 쓰윽 뽑아 읽는 걸 즐겼다. 종잇장 위에 나란히 줄 서있는 문장들이 데려다주는, 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마냥 신기했다. 지루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덮어버리면 그만이어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그 간결한 시작과 끝도 좋았다. 상상했던 이야기가 아닌, 제목과는 전혀 다른 것이 펼쳐질 때의 당혹감. 어떨 때는 그냥 뽑아든 책이 펼쳐준 세계가 몹시도 흥미진진해서 나도 모르게 그 속으로 퐁당 빠져버리기도 했다. 그때 느꼈던 희열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주인공과 한 인물이 되어 짜릿한 모험을 즐기기도 하고 슬픔으로 온 몸이 젖고 눈이 퉁퉁 붓기도 했다. 주로 밖에서 뛰어놀기에 바빴지만 책을 펼쳐서 혼자 노는 것 또한 즐겼던 그 시절의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나는 지금도 읽기를 즐긴다. 책 속에 나란히 줄서 있는 글자들이 내 눈을 지나면서 머리로, 마음으로 전달되어 책과 하나로 연결되는 기분을 느낀다. 그러면서 주인공이나 작가의 영혼이 내 안의 어딘가에 스며든다. 누군가가 풀어놓은 말들을 읽고 그 말이 내 안에 쌓이며 나는 더 나은 내가 된다. 넓고 깊은 사유는 그것이 쌓인 지층의 두께에 비례한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느냐가 아닌 어떤 책을 어떤 방식으로 읽었느냐가 그 두께를 결정한다. 수동적으로 문장을 따라가기만 하면 남겨지는 게 얼마 없다. 책장을 덮으면 썰물에 딸려 나가는 모래더미처럼 슈슈슉 빠지고 만다. 질문하고 의심하고 대화하며 읽은 책이 시야를 확장시키고 관점의 변화를 돕는다. 책이 도끼가 되는 거다. 기존의 생각을 흔들고 예전의 생각을 깨고 다른 차원의 사유로 진화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이런 책읽기의 방식은 어른이 된 후에 알게 되었다. 다만, 나는 운이 좋게도 집에 책이 좀 있었고 그것들을 마음대로 읽을 시간이 충분했다. 어떤 책일 읽으라는 가이드도 없었지만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의무도 없었다.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가득했던 시절에 잉여의 시간을 보내는 유쾌한 방식이 바로 책이었다. 읽는 자는 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숙명을 어쩌면 나는 이미 예감, 아니 확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 쓰기

       말들로 쌓인 내안의 지층이 지각 변동을 일으킨다. 밖으로 나오고 싶기에 꿈틀거리며 흔들리고 갈라진다. 그것들은 다른 차원의 말 덩어리다. 마치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먼저 한 가닥을 뽑아서 정돈하고 풀어내야 한다. 무수한 경험이 감정과 생각 그리고 오묘한 인식의 차원에서 한데 엉켜있다. 한 가닥씩 꺼내놓으려면 문장으로 정선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꺼내고 싶었던 것은 이게 아닌데 머릿속에 있다가 밖으로 나온 문장들이 어수선하다. 때론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도록 부끄럽다. 나 자신과 마주하는 거다. 내 존재를 드러내 증명하고 싶다면 말로써 다른 이의 생각이나 가슴에 가 닿아야 한다. 강력하게 연결되기를 바라는 욕심은 버리더라도 이해되길 원한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말의 영역에서 라는 존재를 뿌리내리도록 하는 게 아니라 나의 존재의 뿌리가 단단하기에 말을 통해 그것을 입증해 보이는 거다. 그러므로 말이 먼저가 아니라 나를 먼저 단단히 세워야 한다. 아니다. 어쩌면 말로서 나를 세울 수도 있겠다. 읽고 쓰는 과정을 통해 이라는 사물이 라는 생명체를 거치고 통과하여 새로운 기운을 지닌 그 무엇이 된다. 사물에서 의미를 지닌 대상이 되어 나름의 생명체를 지닌 것이 되는 거다. 물론 책에는 작가의 영혼이 담겨 있다. 대가의 작품일수록 전 인류가 새겨야 할 지혜와 통찰이 녹아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내게 의미를 지니려면 나를 통과해 나온 것들이어야 한다. 내가 창조하는 세계에서 의미를 만드는 주도권은 쥔 자는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감정의 조율과 생각의 숙성으로 최후에 드러나는 문장을 배열해 쓴 글. 엉덩이를 뭉개고 앉아 몇 시간이고 머리를 싸맬 각오와 풀어지지 않는 말뭉치를 인내심을 가지고 한줄 씩 내려놓는 일은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나는 한사코 버틴다. 언어라는 질료이자 수단으로 나의 세계를 창조하고 드러내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나를 책으로 만들어 육체대신 문체를, 시간이라는 연약한 나선 대신 영원을 얻으리라.’ 그러니 사르트르처럼 미래의 눈으로 내 삶을 바라보며 지금의 쓰는 어려움을 넘어서 순간을 영원으로 진화시켜 내가 죽어도 나를 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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