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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문장] 존재와 메타포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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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정재윤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859회   작성일Date 23-05-22 06:48

    본문

    존재와 메타포

     


    정재윤

     


    칠레 이슬라 네그라, 대다수가 고기잡이로 살아가는 작은 어촌 마을. 마리오 또한 아버지의 고기잡이를 거들며 지냈다. 혈기 왕성한 17세 소년에게 어부 생활은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이렇다 할 의욕도 없던 그에게 우연히 우체부로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수신인은 단 한 사람, 칠레가 낳은 세계적 시인 파블로 네루다급여는 쥐꼬리지만 새로운 일, 만인에게 존경받는 시인을 향하는 설렘이 마리오를 들뜨게 했다. 소년은 네루다의 사인을 받기 위해 그의 시집을 샀다. 자신에게 콧방귀도 뀌지 않는 소녀들에게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기 위해 시집을 들고 다니며 폼을 쟀다. 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폼을 잡기 위해 펼치기를 반복하다 모두 읽어버렸다. 거장의 분위기에 압도당해 두 달여간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던 소년에게, 시집 완독 후 자신감이 생겼다. 소년은 우편물을 건네며 "백만 불짜리 헌사를 부탁드립니다."라고 사인을 요청했다. 네루다는 흔쾌히 응해주었다. 고대하던 순간이었지만 마리오는 충분치 않았다. 시집을 읽으며 새롭게 싹튼 내면은 보다 진전된 무엇을 욕망했다.


    전에 없던 새로운 호기심으로 무장한 소년. 시인에게 우편물을 건네며 무심코 은유 몇 마디를 던진다. 네루다의 시집을 읽으며 어설프게나마 시적 어법을 체득한 것이다. 새로운 세계는 새로운 언어에서 시작된다. 까막눈 어부들 틈에서 자란 소년은 자기 안에 싹튼 새로운 언어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네루다는 그런 소년에게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메타포라고!" 메타포(metaphor)란 행동, 개념, 물체 등이 지닌 특성을 그것과는 다르거나 상관없는 말로 대체하여, 간접적이며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은유를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메타포를 사용하는 것일까? AA라고 하면 재미가 없다. 독자는 무미건조한 이론과 설명으로 그 의미를 새긴다. 반면 AB라고 얘기하는 비유와 이야기는 흥미롭다. 흥미로움은 이해와 기억을 강화시킨다. A를 전혀 다른 B와 연결하여 상대에게 암시하는 바를 떠올리게 한다. 은유에는 언어의 맛이 깃들며 재미와 해학, 유연과 충격을 내포한다. 이러한 흔들림 속에 그 의미를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것, 이것이 메타포의 존재 이유다. 메타포는 이것과 저것을 연결하여 새로운 의미를 도출한다. 소년 또한 전혀 접점이 없는 거장의 시인과 자신을 연결하여 메타포라는 새로움을 욕망한다. 새로운 언어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열기 시작한 것이다.


    메타포는 이름으로 묶여 있는 사물의 의미를 무한한 가능성으로 여는 것이다. 마리오 또한 메타포를 접하고 아무것도 아닌 자신의 존재를 무한한 가능성에 놓으려 한다. "제기랄, 나도 시인이나 되었으면." 자신의 언어로 말하려는 햇병아리의 날갯짓에 네루다는 관심을 갖는다. 시상을 떠올리는 방법을 알려주며 따분한 일상, 평범한 삶을 시적으로 볼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소년에게 시 한수를 읊어 준다. 마리오는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울림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네루다는 소년에게 내재된 시적 감수성을 발견한다. 거장의 울림에 소년은 매료되었고 자신도 시인이 되길 원한다. 둘은 메타포를 통해 스승과 제자 그리고 친구가 된다둘의 우정은 네루다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17세 풋내기 소년과 대통령 후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노시인의 우정은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시집을 읽고 메타포에 빠져든 소년은, 이제 우편물과 함께 자신을 밝힐 등불을 들고 있는 스승을 찾는다. 메타포를 향한 호기심, 자신으로 살고자 하는 욕망은 소년에게 권위와 세대를 뛰어넘는 용기를 내게 했다. 무궁무진한 메타포의 세계를 유영하는 시인은 세계와 인간을 향해 열려있어야 한다. 네루다는 시 한수로 벅차오르는 소년의 떨림을 보았고, 시인의 존재방식처럼 소년에게 자신을 활짝 열었다.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삶의 기쁨을 선사하는 존재가 되었다. 메타포는 예술이다. 예술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닌 탁월함을 이루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질문을 끝까지 밀어부처 창조로 승화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위계와 서열이 없다. 이러한 속성과 같이, 메타포로 연결된 시인과 소년에게는 위계와 서열이 들어설 수 없었다. 둘의 우정은 이렇게 가능했다.

     

    소년의 어설픈 열정만으로 두터운 메타포의 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베아트리스라는 아름다운 소녀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진다. 마리오는 소녀에게 건넬 말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네루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해 잠시 이슬라 네그라를 떠나야 했다. 베아트리스와 네루다, 자신의 마음을 차지한 두 존재를 가까이할 수 없음에 소년은 속앓이를 한다. 애타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오직 시집을 읽으며 시상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네루다의 시를 외우며 소년의 언어는 점점 메타포로 채워졌다. 어느 날 마리오는 용기 내 소녀에게 고백한다. 메타포로 수놓은 고백은 매혹적이었다. "그가 말하기를 제 미소가 얼굴에 나비처럼 번진대요... 제 웃음이 한 떨기 장미고 영글어 터진 창이고 부서지는 물이래요. 홀연 일어나는 은빛 파도라고도 그랬고요." 소녀는 사랑 가득한 메타포에 녹아내렸다. 하나 철옹성 같은 막강한 존재가 마리오를 가로막았으니, 그녀의 어머니 로사였다. 로사는 마리오에게 절대 완고했다. 소년은 가진 것 하나 없는 하찮은 존재였다. 딸을 지키기 위해 마리오의 두 눈을 뽑아버리겠다는 협박까지 한다. 돌아온 네루다도 로사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사랑은 메타포를 창조하는 것과 같이 불타는 인내가 필요했다. 소년은 그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자신을 곤혹케 한 메타포와 사랑 모두 점점 그의 것으로 만들어 갔다. 시절인연은 소년의 결정적인 순간으로 무르익고 있었다. 마리오가 유려한 메타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때 즈음, 둘은 엄혹한 감시망을 피해 천신만고 끝에 결합한다. 로사는 결국 어쩔 수 없이 둘을 승낙한다메타포는 저항, 비판, 분석을 거치지 않고 바로 상대방의 잠재의식에 뿌리내린다. 잠재의식에 뿌리내린 깨달음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동기, 자극으로 발현한다. 메타포는 주입, 강요, 설득이 아닌 가랑비에 옷 젖듯 의식에 스며들어 존재의 변화와 성장을 이끈다. 이와 같이 메타포를 통해 네루다는 소년에게 전에 없던 삶을 선사했고, 마리오는 소녀에게 불타는 사랑을 선사했다. "시란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마리오의 표현처럼, 메타포는 작자와 독자 모두를 성장케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이다.

     

    네루다는 파리 대사로 임명되어 떠났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둘은 볼 수 없었지만 편지로 우정을 나눴다. 시간이 흘러 네루다는 귀향했고 마리오는 스승에게 자랑스럽게 내보일 시를 준비했다. 하지만 거장의 병환은 깊었다. 마리오는 애통했다. 고대하던 만남이었지만, 병상에 누워있는 스승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실낱같은 의식으로 네루다는 말했다. "이봐, 편안히 죽을 수 있도록 절묘한 메타포나 하나 읊어 보게." 마리오는 슬픔 속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메타포는 자유다. 세상 만물을 상식, 통념, 관념으로부터 해방시킨다. 하여, 창조자는 끊임없는 자유의지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어야만 한다. 자신을 족쇄는 아집과 집착, 구속과 안온함을 벗어나기 위해 끝없는 사투를 벌여야 한다. 그래야만 수 없는 메타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자유는 어떤 것에도 종속되지 않고,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메타포의 과정 속에 존재는 단독자로 우뚝 선다. 철저한 고독으로 자기만의 스타일을 창조하는 것이다. 탁월한 메타포는 기술이나 노하우가 아니다. 고도의 집중, 불타는 인내로 완성하는 존재의 정수다. 여기, 자유를 향한 치열함 속에 죽는 순간까지 단독자로 빛을 발하는 존재가 있다. 네루다의 메타포는 죽음 앞에서도 성성하다. 의식의 불꽃이 꺼지는 순간까지 메타포를 놓지 않는다. 거장은 자신이 시를 읊는지도 모른 채, 신들린 눈동자로 생의 마지막 사자후를 뿜어낸다.

     

    하늘의 품에 휩싸인 바다로 돌아가노니,

    물결 사이사이의 고요가

    위태로운 긴장을 자아내는구나.

    새로운 파도가 이를 깨뜨리고

    무한의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질 그때까지,

    어허! 삶은 스러지고

    피는 침잠 하려니.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149쪽)

    

    최후의 순간까지 창조할 수 있는가!

    네루다가 내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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