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장] 가벼움에 대한 동경 - 모든 것이 냉소적으로 허용되길 바라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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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네 사람은 각기 다른 사랑을 하고 있다. 이들은 한 시대를 동시에 살면서 각기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서로의 사랑을 통해 존재의 가벼움 또는 무거움에 대해 경험한다.
그들 각각의 사랑은 처한 상황과 처지에 엇갈리게 되며 시대의 흐름과 정치적인 상황에 몰려 무기력해지고 소외되기도 하며 파괴되어 간다.
니체는 영원회귀의 세상에서 개인의 몸짓은 무거운 짐이라 일컫는다. 무한히 반복되는 세상 그 안에서 인간이 덜 무겁게 사는 것이란 무엇일까?
토마시는 왜 그렇게 수많은 여자들과의 섹스에 집착했던 것일까? 영혼과 육체를 분리할 수 있는 토마시의 바람기는 언뜻 보기엔 타락한 속물이다. 어쩌면 토마시에게 섹스는 답답하고 무거운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수단이자 쾌락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수많은 섹스파트너 중 사비나와의 관계는 특별하다. 서로에게 필요충분조건은 무겁지 않아서 좋다. 그래도 삶에 대한 공허는 어쩌랴. 어쩌면 이러한 공허로 인해 순박하고 보살펴야 할 것 같은 시골처녀 테레자에게 단번에 끌렸을 것이다. 테레자를 만난 후 토마시의 인생은 뜻하지 않는 곳에서 변곡을 만들어 냈다. 테레자로부터 연상된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는 토마시의 인생을 비틀어 버렸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오이디푸스를 비유한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은 토마시의 삶을 관통해 버렸다. 기고문 한 장으로 자신의 사명을 날려 버리고 유리창 청소부로 살게 되지만 이렇게 사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 오히려 자신의 바람기를 마음껏 펼치며 육체적 쾌락을 더욱 탐닉한다. 통속적으로 보면 토마시의 인생은 기고문 한 장과 테레자의 시골 생활에 대한 제안으로 나락으로 추락했다고 볼 수 있지만 토마시의 말대로라면 전보다 자유롭고 행복하다. 훨씬 가볍고 단조롭다.
테레자 또한 철없는 엄마로부터 끊임없이 독립하고자 하지만 쉽지 않다. 더구나 엄마는 자신의 인생이 꼬인 것은 테레자를 잉태하고 부터라며 끊임없이 테레자를 가스라이팅하며 옭아맨다. 이는 테레자에게 자신의 존재에 대해 죄책감을 갖게 하며,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을 독서라는 탈출구를 통해 끊임없이 도피하고자 한다. 토마시가 답답하고 무거운 세상에서 섹스에 중독된 것처럼 테레자는 책을 통해 척박한 현실에서 이상을 꿈꾼다. 서로는 다른 듯 닮아있다. 그래서 서로는 운명처럼 느꼈던 것일까?
자신의 존재에 대해 환영받지 못했던 테레자는 드디어 자신이 잘하는 일을 찾았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애국하는 일. 자신이 존재해야 하는 의미를 찾은 것이다. 탱크와 총칼을 앞세운 탄압에 맞서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증거를 남기는 일, 목숨을 걸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해야만 하는 일,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을 수 있다. 토마시와 견주어도 덜 열등해졌다. 어쩌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거운 일들을 잘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테레자의 몸짓은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무거운 짐이 되어 버렸고 이는 스스로를 절망하게 한다.
아버지의 권위와 전체주의에 강한 반발을 가지고 있던 사비나, 그녀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다. 키치를 죽도록 혐오하며 어느 대열에도 속하고 싶지 않다. 이 여자 역시 자유연애와 섹스를 탐닉하지만 토마시와는 다르게 예술가로서 승승장구한다. 너무나 가벼워서 경쾌하기까지 한 그녀의 삶.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질 줄 아는 사비나의 삶은 쿨해서 유쾌하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마치 유목민처럼 이탈하며 탈주한다. 배신이야말로 새로운 세계로 가는 지름길이라 여긴다. 체제에 반항하고 전체주의를 극도로 혐오하며 부모에게조차 순종하길 거부한 사바나는 그래서 더 가볍게 살 수 있다. 그에 비해 충직하게 삶을 살아온 프란츠는 사비나의 반항적 기질과 도전적인 성격에 매료 되지만 도무지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되지 않는 그녀가 더 신비롭고 매력적이다. 점점 프란츠의 행동은 사비나를 의식해 담대해지려 하지만 결국 자신을 향해 걷지 못하고 껍데기인 체로 생을 마감한다.
인간은 천년을 살 것처럼 행동하지만 고작 백 년을 살아내기도 버겁다. 버겁다는 것은 무겁다는 것으로 대체된다. ‘나’라는 티를 좀 내려고, 뭔가 이루기 위해 버둥거리며, 때로는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만들어 피 터지게 싸우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며 구속해 버린다. 그래서 대부분의 삶은 복잡해지고 무거워 진다. 내가 만들어 놓은 경계에 스스로를 가둬버린다. 그래서 어느 궤도에 올라서면 탈주와 도전은 더 힘들어진다. 그러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모든 극단주의 대한 사비나의 혐오를 통해 작가는 치우치는 것에 대한 경고를 던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 매우 동경하며 그 가벼움을 통해 그동안 불합리한 것들을 냉소적으로 허용해 보길 소망해 본다. 그러면 다시 유쾌하게 어디로든 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키치: 속악한 것, 가짜 또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난 사이비 등을 뜻하는 미술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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