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장] 바다에서 길어내는 나_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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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길어내는 나
세상이 있다. 바다가 있다. 그곳에서의 삶이 있다.
삶은 삶이고 모두는 모두 대로의 성질을 드러낼 뿐인데 삶이 고통이다는 말은 어디서 생겨났을까. 삶이 고통이라기보다 세상에 비쳐 반응하는 그때의 자신을 만남이 고역스럽다는 것 아닐까. 내가 만나는 힘들어하는 나를 부정하고 숨기고 싶다면 내가 되고 싶지 않다는 거다. 세상에 의해 드러나는 새로운 자신을 만나는 지점들은 발견의 순간들이다. 더 나은 내가 되겠다는 포부가 있다면 축복이 될 찰나들이다.
감정은 밀어낸다고 해서 밀려나지 않는다. 고통을 밀어내려고 아무리 애써봐라. 그놈이 다시 스물스물 찾아온다. 노인은 보이지 않는 추에 끌려 다니는 상황에서도 부정하지 않고 자신을 탐험한다. 자기와 이야기하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해서 만들어낸다. 그 나이가 되도록 두려움, 절망, 씁쓸함, 외로움에 얼룩지지 않고 폭풍우 같은 감정에서 자신을 되찾아 깨끗하고 담담하게 지켜간다. 매일 바다에 나가면서 어제의 자기 대신 새로운 자신이 샘솟게 한다. 가진 것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그렇게 존재하는 지금을 대응하면서 담담히 바다에 나간다. 지루하게 긴 나날동안 아무런 성과가 없었는데도 침대 위 신문지에 자기를 밀어 놓지 않고 다시 배 위에 오른다.
노인에게 바다는 자기를 만나기 위한 곳이다. 물고기를 잡지 못했다고 배를 그만 탈 생각은 없다. 그가 잡고자 했던 것은 고기가 아니라 오늘의 자신이니까. 노인은 바다에서 만나는 자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매일 바다에 나가기를 반복할 수 있다. 87일 동안 아무것도 잡지 못했어도 다시 바다에 나가기를 의심하지 않는다. 바다에서의, 삶에서 만나는 오늘의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를 태우면 새로이 샘솟은 자신을 쟁취한 사자로 매일 잠들 수 있다.
어디서 빌릴 수도, 구걸할 수도 있지만 노인이 원하는 것은 그런 무엇들이 아니다. 아침의 한기에도 바다에 나가고, 어지러워도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힘까지 짜내는 인간, 아린 손을 바다에 담그고 무거운 돛을 등에 지고 돌아오는 감동스러운 자신을 만나고 싶다. 증명하고 싶은 것은 진실되고 떳떳한 자기이지 남을 놀래킬 고기가 아니다. 지친 몸을 다독이며 새로 만나는 자신의 모습으로 더 감동스러운 자기를 켜켜이 쌓아간다.
매일 성장한다는 것은 하루하루 내 안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물 주는 것이리라. 내가 나 찾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멈추지 않으면 나는 계속 새로 샘솟는다. 매일 나가는 바다에서 오늘도 눈이 반짝 켜지는 이유다. 거기서 조금 더 새로운 나를 만나는 내일은 그래서 희망적일 수밖에 없다. 나와 새로운 나 사이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든든하고 짜릿하다. 낚싯줄에 연결된 고기를 느끼면 누가 가져다준 고기는 저어하게 된다. 노인은 분명 내일도 이른 아침 배에 자신을 태울 거다. 그 누구도 대신 길어줄 수 없는 나를 만나는 길, 목표와 목적만큼이나 그가 정말 원하는 것은 열심히 가는 자기의 모습이니까. 진심으로 가고 있는 자신을 만나, 결국 해내는 단단한 자기를 오래도록 환대하고 싶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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