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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문장] 구슬의 변주_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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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아영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541회   작성일Date 22-11-24 01:59

    본문

    구슬의 변주



    정말 알고 있는 걸까. 너와 나 각각이 독립적인 존재라는 것을 안다면서 우리가 다르다는 것이 문득 새삼스럽다면. 같지 않음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고개를 돌린다. 우리는 다르다가 나를 가만히 쳐다보는 어느 고요한 순간, 그것이 훅 시리기 때문이다. 부모와 내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단짝이라도 우리의 인생은 다르게 펼쳐질 것이다, 부부더라도 각자만이 짊어져야 할 무언가가 있다, 스승의 가르침이 내 깨달음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인지된 분리는 우리 사이 휑한 틈을 남기고야 만다. 


    틈 사이로 고독하게 침잠하는 내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인다. 발끝에서 간지러운 듯하다가 이내 가슴께에서 불안이 불편하게 넘실댄다. 서서히 내 안의 무엇이 흔들리면서 소리를 낸다. 틈 없이 꽉 막힌 곳에서 구슬은 소리를 낼 수 없었지만 이제는 굴러갈 수 있다. 나의 호흡과 생각이 구슬을 타고 흐른다. 그것은 내 안에서 도르르 즐거이 길을 찾다가, 무겁고 어두운 굉음을 내며 터널을 건너기도 한다. 연주자는 구슬과 싸우지 않는다. 작은 떨림까지도 받아내고 모든 소리에 귀 기울여 진심으로 반응하여 온 몸으로 음악을 흘려보낸다.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신비함도 얼굴이 일그러지는 고통도 함께 통과한다. 생뚱맞은 음들이 한꺼번에 눌러지는 불협화음도, 종달새의 영롱한 소리도 모두 나의 구슬에서 나온다. 다른 노래인 듯 하지만 변주곡일 뿐이다. 단면으로 잘라낼 수 없고 정해 놓고 완성할 수 없는 피카소의 입체적인 얼굴과도 같은 것이다. 부정해 보지만 막을 수 없는 빗소리와 끼어드는 소음까지도 모두 다 끌어안고 연주하게 된다. 흘러가는 풍경과 함께 각도를 달리하며 변주되는 선율들이 모두 다르지만 하나인 나다. 때로는 유연히 유영하면서, 때로는 부서지는 물살 사이로 구슬 방울을 일으키며 강인하기도 한 신비로운 모습을 함께 품는다. 몰입하여 구슬과 일체 되었기에 자신을 흔드는 울림들 안에서도 평온하고, 그렇기 때문에 품을 수 있는 카리스마다. 


    고빈다는 끝끝내 자신의 구슬 소리를 듣지 못했다. 자기를 친구에게 묶고 스승과 엮어 구슬이 울릴 수 없게 가두었다. 정해진 답이 되고 싶은 사람, 운명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없는 사람, 남과 같이 되고자 하는 사람, 틈을 견딜 수 없는 사람. 이들은 흘려낼 소리가 없어 불안하고 슬프고 노엽다. 자기 안에 자신의 노래를 연주할 수 있는 구슬이 묶여 있는지도 모른 채로 구슬을 잃는다. 불안이 묻어 나오는 고빈다의 눈빛에서처럼 징징대고 싶고 질척거리고 싶지만 그것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 그저 습관이 된 불안에서 잠시 벗어났다 다시 불안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사실 그도 알았을 것이다. 징징대고 싶어 하는 자신을 인지하게 되면 다음에는 가만히 기다릴 수 있게 된다. 너울대는 마음이 잠잠해지면 다시 자기를 들어 올려 걸음을 옮긴다. 주저앉고 싶은 이도, 다시 추스르고 일어나 걷겠다는 이도 본인이다. 하염없이 약하기도, 당차고 저돌적이기도 한 면면들 모두가 울퉁불퉁한 자신의 모습이다. 


    그 모습 그대로를 끌어안고 고독한 틈 사이로 가라앉는 시간을 거쳐 다시 떠오른 이들은 흔들리며 피어나는 꽃처럼, 떨림으로 연주되는 구슬처럼 각자의 옴을 연주하게 된다. 나의 옴과 너의 옴이 싯다르타의 그것과 만나 한동안 함께 흐를 수도 있겠다. 너와 나 사이 틈은 단절이 아닌 각자의 연주를 위한 공간이 열리는 확장이었다. 틈은 두 개의 옴이 되었다가 다시 하나의 옴으로 흐른다. 세상의 변주곡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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