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장] 완성을 이룬 자의 비밀(싯다르타_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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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을 이룬 자의 비밀
“우리는 지혜를 찾고 있으며, 지혜를 체험할 수 있으며, 지혜를 지니고 다닐 수 있으며, 지혜로써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지혜를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 자기 내면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나침반 삼아 생의 진리를 찾아다녔고 마침내 ‘완성을 이룬 자’의 미소를 머금은 싯다르타는 말한다. 살아있는 삶의 자양분인 지혜는 자기 몸 안에 스미고 베여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이다. 그것은 말속에, 책 속에, 지식 속에 있지 않다. 일면적일 때에만 말로 나타낼 수 있고 말이라는 겉껍질을 씌울 수 있으며 그렇기에 말로 표현된 진리는 전체성이나 완전성, 단일성이 결여되어 있다. 우리 내면에 현존하는 것은 일면적인 것이 아니기에 진리를 품은 지혜는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닌 ‘나’라는 소명의 조명을 비추며 스스로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르침을 통해 배울 수 없는 생의 지혜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내고자 하는 일’은 싯다르타가 자신을 향해 걷는 여정에서 몸소 체험하였던 삼라만상 속에,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 속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 고빈다: 함께 걷는 사람
유년 시절을 함께한 친구와는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통하는 것이 있다. 세상과 타인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어린 시절을 순수함을 함께 나눠서일까? 고빈다는 싯다르타를 믿고 따르는 유일한 동무이자 벗이다. 싯다르타가 사문이 되려고 떠날 때, 친구는 싯다르타의 여정을 함께 하기로 한다. 순수한 우정의 힘으로 함께 걷는 동무는 얼마나 큰 위안인가? 각자의 길이 다름을 알게 된 후, 한 명은 부처의 제자로, 다른 한 명은 시커먼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하지만 위기의 순간마다 고빈다는 싯다르타의 곁에 있다. 같은 지혜와 진리를 찾아 기꺼이 삶의 전부를 걸 수 있는 길동무가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거리두기가 가능한 우정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마음이 통하는 벗과의 연결은 나를 찾는 여정에서 자기 자신을 비추는 거울인 동시에 고독한 여정의 오아시스다.
# 고타마: 보여주는 사람
깨달은 자인 부처 고타마를 만난 싯다르타는 자기 자신의 가장 내면적인 곳까지 뚫고 들어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눈빛과 손짓 그리고 걸음걸이를 본다. 단순성, 완전성, 이 세계와의 일체성을 지닌 존재를 마주하는 신비와 환희를 느낀다. 고타마의 말이 아닌 그가 보여준 살아있는 몸짓들은 수많은 질문으로 꿈틀대며 싯다르타를 흔들어 깨운다. 고타마가 말하지 않은 자신만의 비밀, 결코 말로써 드러낼 수 없는 ‘자기로서의 완성 과정’이 가장 궁금하다. 스승이 가르칠 수 없는 것이 가장 알고 싶었던 싯다르타는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고 몸소 겪고 뒹굴어야 알 수 있는 것인 자아의 의미와 본질을 알아내기로 한다. 오직 자기 자신만이 몸소 겪으며 찾을 수 있는 것이라 확신하며 다른 모험을 떠난다. 배우는 사람에게 직접 보여주는 사람이 스승이다. 가고자 하는 길을 보여주는 사람, 스승과의 연결은 내면의 깊은 곳을 향하는 여정의 나침반이다.
# 바주데바: 온전히 들어주는 사람
뱃사공 바주데바는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과 함께 산다. 강의 소리를 듣고 강을 믿고 강을 매일 바라본다. 그가 강에서부터 익힌 것은 받아들임과 기다림의 지혜다. 바주데바에게 자신의 지난 여정을 이야기하며 싯다르타는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온전히 정신을 집중해 들어주는 사람에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며 그것이 강물에 씻기어 아물고 강물과 하나 되는 경험을 한다. ‘한그루의 나무가 빗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스스로의 내면으로서 자기 고백을 빨아들이는 사람’과 함께 하는 생생한 체험은 싯다르타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문을 활짝 열게 한다. 특정 기준으로 판단하거나 충고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이가 있다면 자신을 믿고 마음껏 모험을 떠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험난한 여정과 방황 후에도 ‘돌아온 탕자’를 따뜻하게 받아주는 아버지의 품속처럼 세상 속의 누군가는 모험하려는 의지를 지닌 영혼의 보호막이 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이루어지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품은 자가 누리는 축복이다. 싯다르타는 바주데바가 강으로부터 익힌 지혜를 몸소 터득하며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로 인해 겪어야 하는 사무치는 고통을 고스란히 끌어안는다. 이 세상과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 그리고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 볼 수 있는 자, 바로 자기 자신으로 완성되어 간다. 창백한 말이나 글, 사상이 아닌 현존하는 사물, 행위와 삶으로써 흐르는 강물처럼 일렁이며 사는 사람과의 연결은 ‘나’라는 소명을 찾는 여정의 등대다.
# 싯다르타: 자기 내면의 작은 새
자기 자신의 소리를 듣는 사람. 기다리고 사색하고 단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던 싯다르타는 배울 수 없고 가르칠 수 없는 생의 가장 중요한 지혜이자 진리를 찾아다녔다. 몸소 체험해야 아는 일.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가능한 일. 나로 사는 일을 위해 기꺼이 기존의 삶을 버리고 다시 태어날 용기를 지닌 싯다르타. 그는 늘 궁금해 한다. 그 호기심은 현재에 깊이 몰입하여 본질을 꿰뚫는 질문을 끌어 올린다. 자기 자신만이 완성을 이룰 수 있기에 생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각자의 내면에서 지저귀는 작은 새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다른 이가 대신 해줄 수도 없고 가르쳐 줄 수도 없는 ‘자아’와의 연결은 자기 길 그 자체이다.
자신으로 걷는 길에서 마주한 많은 사람들. 자기 자신을 포함한 길동무, 스승, 사랑하는 이들. 사람과의 진정한 연결,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하는 일로, 생각의 골방에 갇혀있지 않고 실행의 문을 열고 나와 부딪히고 깨지고 절망하고 때론 환희와 기쁨, 충만한 행복을 마음껏 누리면서 생동감 있게 살아가다보면 언젠가 그것을 마주할 수 있다. 완성된 존재가 보이는 미소! 조화, 세계의 영원한 완전성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신비의 미소를 머금고 삶의 완성이라는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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