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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문장] 자기 존재의 증명서_지하로부터의 수기(표드르 도스토옙스키)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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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이선영
    댓글 댓글 1건   조회Hit 2,904회   작성일Date 22-11-01 06:54

    본문

    자기 존재의 증명서

     

      눅눅한 습기가 살갗에 닿는 곰팡내 가득 한 지하실. 한 남자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았다.

    서슬 푸른 자의식의 날카로운 끝을 스스로에게 겨누고 있는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구린내 나고 추악한 자신의 지하에서 모욕과 조롱에 짓이겨진 채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악의 속으로 가라앉는다. 삶의 새로운 숨결을 들이마실 작은 창문조차 없는 그곳에서 남자는 자신만의 진짜 육체와 피를 가진 인간이라는 것조차 부정하는 주변 사람들을 조롱하고 멸시하며 자기 존재를 스스로 증명하고자 수기를 써내려 간다. 하지만 그의 오만한 시도는 세상 속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실패한다. ‘살아있는 삶으로부터 유리된 사람, 지하인간! 남자는 왜 스스로 지하인간이 되고자 했을까? 자기 존재의 증명에 실패한 이유는 무얼까?

     

     현명한 인간이라면 진정 아무것도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아무것도 되지 않기 위해 지하인간이 된다.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의식하며 살아가야 하는 시대환경의 영향으로 의식 자체가 병이 될 수 있으므로 차라리 꽉 막힌, 성격이 있는 존재가 되기로 한 것이다. 현실과 맞부딪히지 않고 스스로를 유배시키고 자기 내면의 바닥까지 딥 다이빙을 시도한다. 스스로에게 조차 솔직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의식의 흐름대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면한다. 벌레조차 될 수 없는 인간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지적 탁월함을 타고난 남자는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고 투명하게 비춰 보여 괴롭다. 위선과 모순이 훤하게 비춰 보이기에 기만의 가면을 쓸 수가 없다. 편견과 무지가 오히려 보호막이 되어 무난하게 타인과 관계를 맺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친구들이 역겨워서 견딜 수 없다. 남자가 얼마나 대단한 감정과 사상을 품을 수 있는지를 또 지적으로 얼마나 성숙했는지를 알아주길 바라는 이중적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초대 받지 않은 초대 손님으로 모임에 나타나 방구석에서 되새긴 성스러운 이념 나부랭이를 피력하고 싶어 몸이 달아오름을 느낀다. 하지만 실패한다. 안전한 지하세계에서의 정신과 이상은 현실 속에서 바스라지고 멸시 당한다. 친구들 모임에서 투명인간이 되어 버린 남자는 모멸감과 수치심을 엉뚱한 창녀에게 푼다. 자기가 받은 수치심을 고스란히 창녀에게 전한다. 강력한 상대에게는 헛발질만 하다가 연약한 상대에게 강펀치를 날린 격이다.

     

      남자의 지적 능력은 사회의 인정과 성취의 자양분이 되지 못했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실체를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지적 능력을 지녔지만 이는 자기 안의 지하세계를 더 깊이 파는 원동력으로 쓰인다. 인간은 자기 내면과 외부 환경의 양쪽을 오가며 살아야 할 숙명을 지녔지만 그는 외부 세계로 나가지 않고 오직 자기 내면의 세계로 깊이 빠져들었다. 결국 인간의 생은 타인의 인정과 사회적 관계 안에서 펼쳐 질 때만이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룬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자기만의 의미로 살다간 사람은 지하실에 방치되어야 할 인간이 아니다. 세상과 사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력을 지닌 사람이 감당해야 할 고통은 앎을 향한 동력이 되어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힘이 되어야 한다.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은 관계를 맺어야 할 숙명적 존재다. 나와 나, 나와 너 그리고 나와 세상과의 관계는 결코 쉽지 않다.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라는 존재가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는 있는가? 이미 사회에서 만들어놓은 인간의 행위, 특성, 모습 등을 규정해 놓고 그 틀 안에 들어갈 수 있어야만 그나마 평범하게라도 지낼 수 있다. 가정환경도 외모도 지적 수준도 속해있는 집단 속에서 많이 튈 수 밖에 없는 남자는 어린 시절부터 소외속에 산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조건에 대한 책임을 감당할 사람도 오직 그 자신밖에 없다. 있는 그대로 그를 사랑해주고 보살펴준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홀로 버티고 견디며 그가 속한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타고난 지력으로 불리한 상황이나 소외를 논리적인 말과 지식의 대방출로 극복해 보려고 시도하지만 헛일이다. 오히려 사람들은 더 멀어져 갈 뿐이다. 그에게 분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다른 이들에겐 보이지 않는다. 자기 능력으로 얻은 것들이 아닌 부모의 권력이나 재력으로 인해 교우들 간의 서열이 불합리하기만 하다. 그렇게 생의 버티는 그가 유산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지하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사색의 세계. 펼치고 펼쳐도 끝이 없는 무한의 영역에서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려 이런저런 모든 것들을 다 지껄인다. 논리와 감성이 뒤엉킨 그의 정신세계의 바닥은 느껴지지 않는다. 깊고 깊어서 계속 내려갈 수 있고 연결과 연결이 끝이 없이 계속 좌우로 확장된다. 자기 존재의 증명서로서의 수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나 그 끝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슬픈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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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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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석님의 댓글

    김민석 작성일 Date

    학대받고 소외당한 자들의 이야기가 가슴 깊이 울리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