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장] 우리의 조상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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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조상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다
기본학교 2기 박준희
2주전 늦은 저녁의 일이다. 친구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날은 서로의 쉼표 사이에 소위 ‘칼치기’ 수준의 끼어들기가 이어졌다. 점점 커지는 목소리는 오던 잠을 버선발로 내쫓았다. 대충 우리의 논쟁을 요약해보자면 ‘인간은 어쩔 수 없어’와 ‘그래도 인간이라면’의 대결 구도. 대략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원래 인간이 그런 존재야. 동물적 본능이 앞서잖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그 뒤에 명분을 덧붙인다고. 전쟁 일어나는 것도 그래. 결국 자기 욕심 때문에 쳐들어가는 거고,
-그런데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라고 해서 그들이 일으키는 전쟁과 공격을 옹호해줘야 하는지,
-옹호의 개념이 아니라 그게 인간의 한계인데 어떻게 해?
-죄 없는 피해자들은? 그래도 인간이라면 좀 더 수준 높은 사유를 할 수 있어야하지 않나?
책을 읽다가 그 날의 논쟁이 떠오른 이유는, 도스토예프스키가 네 생각이 맞다며 승기를 들어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보라,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면 모든 이론과 시스템 따위는 악마에게나 줘버릴 수 있는 존재다! 필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것은 인간의 가장 아름답고도 소중한 ‘가장 어리석은 것을 바랄 수 있는 권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감히 전범국들의 개별성과 독립성을 이해해줄 수 있지 않냐는 위험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국가도 인간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생명체가 아닌가. 그들이 미쳐서라도 고유의 의지를 발현하고 싶어한다면! 인간의 욕망과 파괴적인 본능을 소중히 여긴다면 같은 논리로 그들의 자유 의지를 비난할 수 있는가? 그들의 행동은 인간의 본능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의 행동은 (놀랍게도 우리의 역사를 포함해서) 인류의 모든 역사와 궤를 함께했다. 여기 영토 좀 넓히겠다고 당나라와 힘을 합쳐 형제인 고구려와 백제를 배신한 신라를 보라! 우리의 선조 고구려인들은 유민이 되어 포로로 살육당하고 노예로 전락했다. 눈뜨고 볼 수 없는 비참한 삶이었겠지. 그런데 나중에는 당나라의 남침이 두려워 몰래 고구려부흥운동을 후원했다고? 피가 끓는 대로 행동했다니 이해는 한다만, 파렴치한 신라 너는 절대 전쟁의 범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영원히!
그래도 전쟁은 안된다고.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니까, 맞다. 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갔다. 자유 의지를 펼치되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지, 그런 욕망은 수정되어야지. 수정되지 않으면 벌을 받아.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논리는 국가 내에서나 그럭저럭 먹혀 들어간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정당하게 벌을 받는 비율이 얼마나 높은 지는 모르겠다). 국가는 피해자 a를 무차별 폭행한 가해자 b에게 징역 7년에 준하는 벌을 내릴 수 있지만, 국가 a를 무차별 공격한 국가 b에게 징역 [7년 x a국 총 인구수]년을 내려 줄 세계정부는 어디에도 없다. 세계 경찰과 같은 미국이 있잖아! 모두가 한 마음으로 미국(혹은 동맹국)이 금융제재를 개시하고, 자산을 동결시키고, 수출통제 리스트를 작성해 가해자를 압박하길 손꼽아 기다리겠지. 하지만 이 마저도 미국(혹은 동맹국)의 이익과 반대된다면 그들은 멋쩍은 듯 침묵을 유지할 것이다!
세계 정세가 야생인 이유는 인간의 파괴 본능을 억압해줄 어떠한 강제 장치도 없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강자 앞에선 쫄고 약자 앞에선 침을 흘릴 뿐. 아, 물론 기댈 수 있는 숭고한 장치가 있긴 하지. 총에 맞아 울부짖는 인간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는, 자애로우신 강대국 지도자들의 공감능력! 그 공감능력이 피어 낸 한 떨기의 도덕성! 아, 인류의 모든 삶을 반영할 수 있는, 거친 호흡을 내쉬며 들끓는 충동 앞에서 한 줄기 이성의 끈은 너무나도 가냘프다.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통찰에 힘 입어 거듭 주장을 곧추 세운다. 인간이 아무리 불을 써서 고기를 익히고 이빨이 퇴화된 그 공간에 뇌를 발달시켜 이성의 은총을 키워도 우리의 조상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니까? 그 너머에는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전의를 불태우는 침팬지가 있다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내 주장을 긍정하면 긍정할수록 우울한 기분이 든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불신이 커져만 가서 언제라도 잡아먹힐 수 있는 먹이가 된 것 같으니. 인간의 조상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고 외치면서 친구의 주장에서 희망을 찾기 시작한다. 내가 인간의 사유능력을 과소평가했을 수도 있지 않는가? (당신들도 앞선 내 말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신들은 나의 이러한 변덕을 반겨야만 한다! (그렇다고 앞선 2,138자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원래 인간이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를 좋아하는 존재라는 걸 아시지 않는가. 인간의 조상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고 포유류 동물의 일원이어서 이성보다 본능이 앞설 수밖에 없다는 2 x 2 = 4 같은 소리에 반기를 들면서 내가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걸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디 가장 어리석은 것을 바랄 수 있는, 이 아름답고도 소중한 권리를 나에게도 보장해주시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에게 저주를 퍼붓고 나는 미쳐버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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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님의 댓글
김민석 작성일 Date
도스토예프스키의 고민이 이 글에서 보이네요. 그의 가장 큰 매력은 인간의 심연을 적나라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면서도, 인간의 관계 속에서 너무나도 미약하지만 또 다른 무엇인가를 보여주는데 있는 것 같아요. 읽느라 너무 수고 많으셨네요. 저도
소홀했던 작품 읽기를 다시 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