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장] 아모르파티:운명을 긍정하라!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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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운명을 긍정하라!
뱀이 되어 보기로 한 여정:
백면서생의 나는 온 몸으로 세상을 경험하고자 갈탄광 사업을 하게 되었고 우연히 만나게 된 조르바와 (아니 어쩌면 조르바는 세상 물정 모르는 나를 등쳐 먹고자 일부러 접근한 건지도) 함께 크레타섬으로 떠난다.
나의 친구 스타브리다키는 자기가 자기가 아니라면 과감하게 자기 자신을 버리고 이웃사랑의 이념으로 살아 보라는 나의 설교에 속아 자신의 고통보다는 인류의 고통을 직시하면서 내면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들을 위한 삶은 강한 자아를 유지하기 위한 방어일 뿐) 전쟁에 참전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성과 비이성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며 생각을 실행하고자 도전하기도 벅차다. 그 와중에 조르바를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인지도 모른다. 나는 진리에 가까이 가려고 엄청난 먹물을 뒤집어 썼지만 만고풍상을 다 겪은 조르바에 비하면 애송이에 불과하다. 어찌나 모든 것들에 대해 그렇게 유연하며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지 나는 조르바가 부럽다 못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조르바는 온갖 변화를 몸소 부딪혀 터득한 삶을 통해 하나의 생각이나 이념에 얽매이지 않은 인간이였고 그 자유스러움은 머리끝부터 손끝까지 오롯이 자신으로 살게 하였다. 항상 머리가 이겨 먹는 나에게 조르바는 무식해져야 하며 모든 책들을 불 싸질러야 비로서 인간(=자유)이 될 자격을 얻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온전히 욕망이 시키는 대로 한 번 살아 보라고 부추긴다.
중요한 것은 오늘, 지금 이 순간!
조르바는 일할 때는 곡괭이가 되고 탄광이 되며, 배가 고프면 육신을 위해 맛있게 먹어대고, 졸리면 자고, 키스할 때는 오로지 키스만 하는 현재에 충실한 인간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다. 오르탕스 부인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조르바를 통해 자유를 획득했기 때문이다. 조르바는 구속하지 않는다. 자유를 획득했다는 것은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 조르바로부터 오르탕스 부인은 자신의 과거를 추앙받을 수 있었고 오롯이 자신이 되어갔다.
그럼 세상 만물에 대해서 조르바는 어떻게 대하는가? 물아일체가 된다. 산투르가 되고 녹로가 되며 땅이 되고 물이 되며 동물이 되고 신이 된다. 모든 대자연을 경이롭고 신비하게 바라보며 매 순간 그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지금 이순간 세상 모든 것은 조르바 앞에서 기적일 수 밖에 없다. 조르바는 금방 죽을 것처럼 현재를 살기 때문에 항상 열정적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집중할 수 있다.
‘그는 피가 덥고 뼈가 단단한 사나이....... 슬플 때는 진짜 눈물이 빰을 흐르게 했다. 기쁠 때면 형이상학의 채로 거르느라고 그 기쁨을 잡치는 법이 없었다’
애정과 집착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
젊은시절 산투르에 반한 조르바는 기필코 연주법을 배워 평생을 즐기며 산다. 또한 도자기를 빚다가 방해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손가락을 거침없이 잘라버린다든지, 식탐에 대해서도 토할 때까지 먹어 집착을 끊는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모든 걸 걸고 도박을 하며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이민족과 이교도들을 잔인하게 살인하고 방화와 강간, 몰살도 서슴치 않고 자행하였다. 그러나 자신에 의해 살해된 불가리아 신부의 구걸하는 어린 자녀들과 맞닥뜨리고는 쓸데없는 이데올로기에 놀아난 자신을 깨닫게 되며 조국과 종교와 물질의 가치로부터 해방되었고 구원의 길을 찾았다. 인간(=자유)이 되었으며 더 나아가 휴머니스트가 되었고 이제는 선과 악을 초월하려고 한다.
조르바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이 되자 드디어 인간(=자유)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춤을 추게 되었다.
신과 악마가 있다면 춤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영혼과 육신이 하나가 될 때 나올 수 있는 몸짓.
조르바의 춤은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되지 않을 때 이성의 한계를 넘어 버릴 때, 주체할 수 없을 때 나오는 몸짓이다. 이성과 비이성이 서로 넘나들 수 있을 때 드디어 자유가 보장되고 비로소 춤을 출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춤은 자유이다.
과부를 짝사랑하다가 자살에 이른 남자, 운명을 감당하지 못한 나, 그리고 과부는 누가 죽였나?
한 번뿐인 인생! 오, 아모르파티~ 내가 과부와의 만남을 감당만 할 수 있다면 황홀한 사랑에 빠졌을 텐데...... 이렇게 이성과 비이성 사이에서 우물쭈물 하는 사이 과부는 사회적 의지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파블리는 과부의 선택도 아버지인 마브란도니 영감의 위로도 받지 못하자 자신의 의지를 타인의 의지로 대체시켜 버렸다. 즉 타인의 의지가 자신의 의지로 인식되면서 자기 자신의 존재 자체를 감당하지 못하고 최악의 순간, 자살이라는 비극적 운명을 선택한 것이다. 그럼 소멜리나(과부)는 누가 죽였나? 널리 확산된 오류(화냥년, 씨암말 쯤)를 통해 여론이 형성되고 이런 여론 뒤에 숨어 버린 사람들과 남자들의 이기적인 욕망이 애꿎은 과부를 학살했다. 조르바는 억울한 소멜리나(과부)를 동정하여 구원하려 했으나 결국 구하지 못하고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느끼며 신을 원망한다. 그러면서도 과부를 학살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앙심을 품은 마놀라카스를 우정으로 품어버림으로서 구원한다.
아모르파티!(운명을 긍정하라)
나는 모든 것을 잃은 뒤에 해방이 되었고 자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단단해졌으며 운명을 긍정하게 되었다. 얻기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 극한으로 한 번이라도 내몰려 봤는가?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볼 수 있다면 어디든 건너 갈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창틀을 거머쥐고 먼 산을 바라보다 눈을 크게 뜨고 웃다가 말처럼 울었습니다. 이렇게 창틀에 손톱을 박고 서있을 동안 죽음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조르바는 구차하게 애원하지 않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과 이별했다.
그럼 우리는 지금 충분히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있는가?
네 운명을 긍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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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다운로드 | DATE : 2022-08-25 11: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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