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장] 파도와 춤 추는 자_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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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와 춤 추는 자_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두 사람.
거친 흙냄새가 나는 사람과 책벌레.
진창을 뒹구는 이와 종이인형.
춤 추는 자와 노새.
조르바는 몰입한다. 일을 할 때도, 사랑을 할 때도, 춤을 출 때도… 무언가를 한다 하면 다른 소리를 못 들을 만큼 집중하여 자신을 갈아 넣는다. 그 옆의 나는 어정쩡하다. 배경인지 주인공인지 알 수 없게 모서리에 기대어 일어나는 일을 보고 있다. 행하는 자와 바라보는 자, 이 둘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조르바는 그를 뜨겁게 달구는 열정에 직접 달려든다. 자신이 뛰어오르고 싶은 파도가 보이면 그 위에 올라탄다. 거대한 물결의 꼭대기 위에 올라서 있는 조르바는 매 순간 살아있다. 모든 감각은 깨어있고 온 근육이 움찔댄다. 나는 파도에 올라타기 전에 이것이 옳은 일인가 정답일까 우물쭈물하다 모래밭에서 조르바를 바라본다. 그가 꼬르륵 물이라도 먹을라 치면 내가 바다에 나가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고, 파도 위를 오르내리는 그를 보노라면 많이 부럽다. 산처럼 솟은 물을 딛고 서 있는 조르바가 되고 싶다.
조르바는 갖고 있는 지식이 많지 않더라도 자신을 자극하는 무엇이든 그것을 온전히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소화시킨다. 우아하거나 고상하지 않지만 담대하고 솔직한 용기가 거침없이 시원하다. 생존이라는 전쟁을 대하는 실전의 태도일테다. 무식함도 부끄러울 새 없이 단순하고 힘 있게 쓰여진다. 조르바의 자기로 향하는 통로는 아주 짧고 확실한 모양이다. 나의 통로는 길고 굽이 굽어, 이게 나로 향하는 길인지 붓다로의 길인지 의문스럽다. 남들의 꿈을 등에 얹고 오가는 노새에게나 어울리는 길이다. 열정의 마그마가 끓어올라도 분출될 수가 없는 구조다. 나를 살리는 안전장치인지 되려 죽이는 장치인지! 마그마가 어디로 튈지, 이것이 맞는 길인지, 어떤 돌로 어떻게 굳게 될지,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다면 해 볼 텐데… 비겁하다. 틀렸을까봐, 내가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을까봐 주저한다. 틀릴 수 있다면 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만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는데, 그보다 훨씬 더 큰 손실을 담보로 하고 있기에 슬프다. 정으로 시작했다가 반을 통해서 합으로 갈 수 있는 신비의 역사를 지레 포기하는 것이다. 하면서 고치고 생각지도 못한 다른 것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 정반합의 묘미인데 끝을 처음부터 알아야만 출발하겠다? 끝을 알 수 없는게 인생인데 이 태도로 인생이 시작될 수 있나... 출발이 없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테고, 해결할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테니 말썽 없는 인생에의 소원만은 이룰 수 있겠다.
결을 거슬러 이런 억지를 부리지 않는 조르바의 몸짓은 자연스럽다. 그래, 조르바는 그만의 율동을 가졌다. 생로병사의 파도 위에서 즐길 것은 즐기고 슬퍼할 것은 슬퍼하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진심으로 넘어간다. 물컹이지만 묵직하고, 부서지는 듯 하다가 어느새 몰아치는, 감미롭지만 파괴적이기도 한 인생에 맞춰 조르바의 에너지가 고유의 몸짓으로 표현된다. 그 만의 춤이다.
머리가 가슴보다 무겁고 정신이 몸을 묶어버린 사람인 나는 조르바가 감탄스럽다. 부러워하는 마음을 안고 모래밭에 앉아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기에 인생은 짧고 귀하다. 파도가 옳을 수도 그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파도를 타야 춤을 출 수 있다. 물에 들어가야 파도를 탈 수 있다. 두려운 파도에 들어가서 씨름하다 보면 무식하고 솔직한 몸부림이 춤으로 승화될 때가 온다. 물에 들어가기 전에 춤이 완성 되는 것이 아니다. 껍데기와 알맹이가 같은 곳을 향하고 있는 조르바의 육신과 영혼처럼 파도가 나의 그것들도 하나로 연결되게 다져줄 것이다. 그 때, 물컹이는 바다를 단단하게 두 발바닥으로 맞딛고 일어서게 된다. 파도가 나를 죽이지 않는다면 나를 들어올려 자유케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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