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장] 거세당한 인간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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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당한 인간
정재윤
<의존성 성격장애>
의존성 성격장애란, 주변 사람들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욕구가 지나쳐 자신의 의존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매달리고, 의존 욕구가 거절될까 봐 무서워 다른 사람이 무리한 요구를 해도 순종적으로 응하는 인격장애를 말한다. 주변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분리 불안이나 불안정한 대인 관계를 흔히 보이곤 한다. 의존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낮은 자존감'을 가진 경우가 많으며, 이로 인해 자책하거나 스스로를 폄하하는 경향을 보이고, 자기주장을 잘 펴지 못한다.
의존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상으로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보호나 돌봄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과도하여 지나치게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며, 의존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될까 봐 항상 불안해한다. 의존하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매달리는데, 이러한 증상은 흔히 성인기 초기에 시작된다. 구체적인 증상의 예를 들면,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항상 다른 사람으로부터 매우 많은 조언을 들은 후에 비로소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자신의 대부분의 삶을 맡겨버리게 된다. 또한 주변 사람의 지지나 동의를 잃는 것이 두려워 반대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며, 자신의 능력이나 판단에 대한 확신이 없어 어떤 일을 스스로 시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하기 싫고 불쾌한 일일지라도 다른 사람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그 일에 자원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돌볼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혼자 있을 때면 무력감을 느끼게 되며, 자신을 지지해 주고 돌봐주던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그런 지지와 돌봄을 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을 급히 찾으려 한다. 항상 스스로를 돌보아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집착하게 된다. 청소년기에 과도하게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으며 만성적인 신체 질환이나 분리 불안 장애를 앓았을 수 있다. 우울증과 같은 기분 장애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광장공포증, 사회공포증 등과 같은 불안장애도 흔히 경험한다.
「의존성 성격장애 [dependent personality disorder]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자존감의 문제>
'자아존중감'이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자아존중감이 있는 사람은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할 수 있다. 자존감이 낮을 경우 불안, 우울, 열등감, 분노, 공포 등의 부정적 감정에 쉽게 휩싸인다. 심하면 우울증이 생기거나 자살 등의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의사결정에 의존적이거나 불확실한 태도를 보이며, 우울감에서 벗어나고자 과도한 음주와 비정상적 식습관을 가진다.
요조는 의존성 성격장애다. 성격장애는 '낮은 자존감'에 기인한다. 낮은 자존감은 거절, 버림받는 걸 병적으로 두려워한다. 삶의 주요 관심사는 타인에게 사랑받는 것, 인정받는 것이다. 상대의 비위를 맞추는데 인생을 허비한다.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으며 몸과 마음은 갈수록 소진되어 우울감에 빠진다. 낮은 자존감은 세상에 순종하는 삶을 산다. 욕을 먹거나 배척당하는 걸 견딜 수 없기에 어느 상황에서나 적응한다. 부당한 상황에도 싸우지 못하며 억지로 적응하다 내면이 망가진다. 자존감은 부정적 상황을 방어하고 시련을 이겨내는 힘이다. 하지만 낮은 자존감은 시련에 굴복한다. 인생에서 누구나 맞게 되는 시련을 뚫고 나아가지 못하고 좌절한다. 현실을 잊기 위해 쾌락을 갈구하다 중독되고 악화일로 끝에 결국 파멸한다.
인간은 자신을 가치 있다 여기면 사랑하고, 가치 없다 여기면 혐오한다. 요조는 세상 어디에도 맞서지 않기 위해 타인을 향한 필사적인 서비스 정신을 발휘한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게 대했지만, 우정이라는 것을 한 번도 실감해 본 적이 없다. 모든 교제는 고통스럽기만 할 뿐. 고통을 억누르기 위해 열심히 익살을 연기하지만 그럴수록 공허에 빠진다. 타인에게 호감을 살 줄 알지만, 그들을 사랑하지는 못한다. 인간에 대한 두려움, 관계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요조. 행복마저 두려워하는 겁쟁이는 자기혐오로 가득하다. "두꺼비. 그게 나야. 세상이 용납할 것도 용납하지 않을 것도 없지. 매장이고 뭐고 할 것도 없어 나는 개보다도 고양이보다도 열등한 동물인 거야. 두꺼비. 느릿느릿 꾸물거리기만 하는 두꺼비."
<거세당한 인간>
요조는 태생부터 자존감을 거세당한 인간의 모습이다. 인간실격은 1945년 전쟁 패망 후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전 후 모든 희망이 소거된 일본사회. 패배의 무력감에 휩싸여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한 국민. 당시 일본 젊은이들은 조각난 자존감으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고 바로 '인간실격'에 그들의 모습이 투영돼 있던 것이다.
연약한 사람의 자식은 짊어질 수 없을 만큼의 짐을 짊어지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정욕의 씨가 심어진 탓에
선이다 악이다 죄다 벌이다 하며 저주받을 뿐
눌러 꺾을 힘도 의지도 점지받지 못한 탓에
어쩌지도 못하고 그저 갈팡질팡할 뿐
오늘날 돈, 학벌, 직업, 명예, 외모, 인기가 가치 평가의 기준이 된 우리 사회. 그로부터 도태된 수많은 요조들이 절규하고 있다. 대다수 평범한 소시민은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사회. 미디어와 SNS가 만들어낸 허상과 한없이 초라한 현실사이 무력한 존재로의 전락. 거세당한 자존감, 탈출구 없는 인간실격 양산의 사회.
실체 없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던 요조.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거세당한 자존감은 헤어날 수 없는 개미지옥일 뿐. 알코올중독, 수면제, 자살기도, 모르핀중독, 정신병원까지. 결국 스스로 인간실격을 선언하며 완전한 폐인으로 전락한다. 더 이상의 의욕도 희망도 없이 "행복도 불행도 없다. 모든 것은 그냥 지나갈 뿐" 자기 위안으로 끝을 맺는다. 낮은 자존감으로 스스로를 패배자로 인식, 현실을 도피하려 온갖 중독을 헤매고 은둔형 외톨이로 숨어버린 우리의 자화상이다.
<자존감의 회복>
자신을 인간실격에서 구원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현대인은 욕망이 즉각적으로 실현됐을 때 얻어지는 쾌감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 쾌감은 일시적이며 더욱 강렬한 자극을 필요로 한다. 결코 채울 수 없는 갈증의 수렁이다. 인간은 쾌감이 아닌 '만족감'을 얻을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우리는 삶의 목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여러 성취를 통해 보람과 만족을 느낀다. 여기서 행복이 피어난다. 성취의 만족감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목적지향적 삶'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목적지향적 삶에 앞서 자존감의 회복이 선행돼야 한다. 낮은 자존감은 고통을 피하는 삶에 집중한다. 혐오스러운 자신을 견딜 수 없기에 떨어진 자존감의 방어, 보상을 위해 에너지를 쏟는다. 이런 삶의 형태를 근원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왜곡된 가치 평가 기준'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왜곡된 가치관에서 자신을 해방시켜야 한다. 병든 사회가 만들어 놓은 비정상적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잠재성과 가능성에 집중하는 것이다. 타인과 사회에 폐를 끼치지 않는 이상 누구도 열등하지 않으며, 누구도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다. 무엇을 하던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이 위대한 삶이다. 자존감은 모두의 것이다. 세상에 쓸모 있는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때, 묻혀있던 자존감은 비로소 움튼다.
요조는 그림이라는 '몰입'을 통해 현실의 지옥을 버틸 수 있었다. 목적지향적 삶과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몰입은 최상의 삶의 기술이다. 관념, 편견, 왜곡을 벗어나 오직 나로서 존재하게 한다. 어떠한 시련과 고난에도 전도되지 않으며 자신을 나아가게 하는 힘 몰입. 몰입을 통한 창조와 생산에 들어설 때, 존재는 드높은 자존감으로 세상에 오롯이 솟아난다. 그에게 인간 실격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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