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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문장] 불편한 진실을 쫓아간 노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줄리언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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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권경린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467회   작성일Date 22-07-21 17:54

    본문

     

    불편한 진실을 쫓아간 노인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반스 >

     

     

    새 문 장 1시즌 2회차

     

    권 경 린

     

     

     


    지긋하게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어떤 이벤트가 일어날 가능성이 없어서였을까.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토니 웹스터는 자꾸만 과거의 기억 속을 유영한다. 따뜻한 볕이 드는 교실, 교복을 차려입은 친구들, 그들과 나누던 이야기, 따분하기만 한 수업 시간 그리고 에이드리언 핀에 대한, 그에 대한 동경 같은 기억을 말이다. 토니는 소설 속 주인공 같은 삶을 꿈꿨던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부끄럽지는 않았을까 싶은 정도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생을 살았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도달한 서신 하나. 그것은 옛 여자친구였던 베로니카의 어머니인 사라 포드 부인의 유언장이었다. 토니는 마치 탐험하는 아이처럼 유언장에 첨부되어있다가 뜯겨나가 버린 정체 모를 것을 찾아 나선다. 그것은 그가 잊고 있었던 어떤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 그를 치욕스럽도록 불편한 진실을 향해 달려가도록 만들었을까? 인간은 왜 진실을 향해 가는가? 진실을 향해 간다는 것은 인간의 삶에 과연 유의미한가?

     


    토니는 유언장 속의 내용을 보며 이 목적 불명한 유언장이 기억에만 의존하던 과거의 삶을 더욱 분명하고 특별한 역사로 만들어 줄 매개체가 되리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학창 시절 꿈꾸던 삶과는 정반대로 평범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을지도.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하게 번져가는 기억들로만 이루어진 과거에는 다른 증거 같은 것이 필요했다. 자신의 기억이 왜곡되었을지 모른다는 전제는 없다. 파편 같은 기억의 자만(自慢)으로 토니는 자신의 해석을 보강해줄 증거 혹은 산증인들의 증언을 구하고자 집요하게 군다. 그 집요함 끝에 베로니카와 재회한 토니는 그녀에게서 또 하나의 편지를 건네받는다. 기억조차 하지 못했던, 하지만 분명히 자신의 필체로 써 내려간 저주 가득한 편지를. 그리고 에이드리언의 일기도 몇 장 받게 된다. 자신의 기억만큼이나 단편적인 문서들을 통해 드러나는 진실을 마주하게 될 때마다 토니는 매번 당황스럽다. 자신의 기억과 해석을 보강해주리라 믿었던 증거들은 오히려 그것을 다 깨부수어 버리고 시공간이 뒤틀리듯 기억은 재편된다. 예나 지금이나 종잡을 수 없는 말들로 토니를 실의에 빠지게 만드는 베로니카는 꼭 가해자처럼 묘사해왔지만 정작 가해자는 토니 자기 자신이었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그리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에 빠진다. 마침내 그가 에이드리언의 아들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에이드리언이 생전에 남기고 간 일기 몇 줄에서 마저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야 만다.

     

     

    에이드리언은 이런 말을 한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여기서 역사는 과거이다. 단순히 수식적으로 해석하면 에이드리언의 말은 명백한 오답이다. 부정확하고 불충분한 것이 합쳐졌는데 어째서 확신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걸까. 문장 속에 숨은 맥락을 찾아내야 했다. ‘확신이라는 단어를 뜯어보면 믿음이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문장의 수식어를 덜어내면 역사는 확신이다.’인데 역사는 인간과 같은 유기체가 아니므로 믿음을 가질 수 없다. 결국 문장 속에 숨은 진짜 수식어는 유기체인 인간임을 알 수 있다. 다시 풀어서 쓰자면 에이드리언의 말은 이렇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인간의 확신이다. 과거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가장 큰 작용을 하는 것은 기억이나 문서를 종합해 서술하는 한 인간의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다. 토니는 부정확한 기억의 파편들만 가지고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재해석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부정확하긴 했어도 기억이라는 근거가 있었고 그것을 토대로 자신만의 해석을 했을 뿐이었다.

     


    같은 광경을 보고도 사람은 모두 다르게 생각한다. 같은 음악을 듣고도 사람은 모두 다르게 생각한다. 심지어 같은 생각을 할지라도 사람은 각자 다르게 표현한다. 그 표현은 사람에게 또 건너 사람에게 모두 다른 경험으로 축적된다. 이로써 인간에게 구체적 사실은 객체에 불과하다. 주체는 오로지 그것을 해석하는 인간뿐이다. 진실에 매몰되어 주체성을 잃어버리는 사람을 현실에서도 종종 볼 수 있지 않은가? 자신이 무엇을 찾으려고 했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진실이라는 표면적 세계를 떠도는 가엾은 사람을 말이다. 진실만을 위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위험한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진실을 쫓는 인간에게는 적어도 전제조건이 붙어야만 그 행위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 전제조건이란 진실이 그것을 쫓는 사람 자신 혹은 자신의 삶과 긴밀한 관계에 있을 것을 말한다. , 진실로 향하는 목적이 분명한 사람만이 진실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토니가 멋도 모르고 뛰어든 불편한 진실 속에 그의 삶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그 속에는 베로니카와 그녀의 어머니인 포드 부인 그리고 에이드리언의 삶뿐이었다. 토니가 자신의 삶을 탐험하고 자신의 진실로 걸어나갔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철 지난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받아줄 사람 하나 없는 사죄를 하는 굴욕을 겪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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