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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문장] 평균치 인간, 초월적 인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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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정재윤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4,041회   작성일Date 22-07-21 10:51

    본문


    평균치 인간, 초월적 인간



    정재윤



    토니 웹스터, 그는 자신의 행위를 까마득하게 잊었고, 심지어 기억을 날조했다. 파편화된 30~40년 전의 기억은 온전할 수 없다. 하지만 온전하지 못함은 세부적 기억의 오류일 뿐. 사건의 실상을 전혀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토니는 어떻게 자신의 기억을 날조했을까?


    평균치. 학교를 떠난 후 나란 인간은 줄곧 그랬다. 대학에서, 직장에서 평균치. 우정과 성실과 사랑에서 평균치. 섹스에서도 의심할 여지없이 평균치였다... 그러나 평균치의 법칙에 따르면, 우리는 불가항력적으로 평균치가 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렇게 생각해봐도 마음은 결코 편해지지 않았다. 평균치란 말이 메이라 쳐 울려 퍼졌다. 평균치 인생. 평균치 진실. 평균치 윤리관.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다산책방, 173~174쪽)


    평균치의 달성이 존재 목적이 된 평균치 인간 토니. 평균치 삶이란 불균형에서 균형으로. 무질서에서 질서로. 개별에서 보편으로 향하는 구심력의 작용이다. 우연과 필연의 파노라마, 카오스적 삶을 긍정하지 못한 채. 평균치라는 기준을 향해 차이, 다양성, 개별성을 모두 소거하는 구심의 운동이다. 평균은 안정이라는 편안함을 제공한다. 잔잔한 호수에 결코 돌을 던지고 싶지 않은 인간. 무난함이 존재 형식이 된 인간. 일생을 평균치라는 균질을 향해 걸어온 인간. 결국 그의 의식도 균질화되었다. 사건의 실상은 무시한 채, 균질화를 위배하는 분란의 기억을 변질시킨 것. 시기와 질투로 저주를 퍼부었던 사건이, 기억의 망각과 무난함이라는 자기기만을 통해 긍정의 기억으로 뒤바뀐 것이다.


    토니는 젊은 시절 치기 어린 실수에 대한 과보(報)를 목도하고 존재가 흔들린다. 잔잔했던 호수에 격렬한 파도가 일렁이며 자기 삶을 반추한다. 더하기만 있고 늘어남은 없었던 삶. 사건과 경험으로 촉발되는 희열과 심연, 감동과 원망, 성공과 실패의 깊은 희로애락 없는 삶. 생동하지 않는 삶. 그의 삶에 늘어남이 없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왜 인생을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을까?


    인생에 대해 내가 알았던 것은 무엇인가, 신중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내가. 이긴 적도, 패배한 적도 없이,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았던가. 흔한 야심을 품었지만, 야심의 실체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것을 위해 섣불리 정착해버리지 않았던가. 상처받는 게 두려웠으면서도 생존력이라는 말로 둘러대지 않았던가. 고지서 납부를 하고,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뿐, 환희와 절망이라는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설에서나 구경한 게 전부인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자책을 해도 마음속 깊이 아파한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던가.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다산책방, 242~243쪽)


    열망의 실현을 위해 진흙에 빠지고 흙탕물을 뒤집어쓴 적 없는 평온한 존재. 토니에게는 자기 초월의 의지가 없었다. 평균치를 벗어나 자신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이 없었다. 오직 적정한 평균치에 이르기 위한 적당한 구심력만 있었을 뿐. 자기 초월이란 균형을 불균형으로 파괴하고. 질서를 무질서로 해체하며. 보편을 거부 개별로 뻗어나가는 원심력의 작용이다. 토니가 구심력을 향한다면 에이드리언은 원심력을 향한다. 에이드리언은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사유한다. 그는 "삶이 바란 적이 없음에도 받게 된 선물이며, 사유하는 자는 삶의 본질과 그 삶에 딸린 조건 모두를 시험할 철학적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철학적 의무는 보편, 상식, 통념, 권위를 향해 의문을 제기한다. 철학적 시험의 궁극적인 목적은 불변의 진리를 소유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성적으로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한 자기 초월의 과정이다. 에이드리언은 평균치가 아닌 존재로서의 최상을 원했다. 그 결과 자신의 세계관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인 죽음을 택했다. "에이드리언은 1등급을 원했을 거야... 1등급 성적, 1등급 자살"


    그것은 단순히 순수하기만 한 게 아니라 응용력을 갖춘 지성이었다. 어느새 나는 내 인생과 에이드리언의 인생을 비교하고 있었다. 윤리적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에 대해, 자살을 감행한 정신적, 육체적 용기에 대해. 한 구절로 표현하자면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에이드리언은 자신의 삶을 책임졌고, 그것을 지휘했으며, 온전히 포착했다. 그리고 놓아주었다. 우리 중에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다산책방, 153쪽)


    에이드리언은 "자신의 삶을 책임졌고, 그것을 지휘했으며, 온전히 포착했다. 그리고 놓아주었다." 이 모든 완성됨이 에이드리언의 타고난 능력으로 이뤄진 것일까? 토니는 말한다. "에이드리언이 죽은 건 부럽지 않지만, 그 삶의 명징성은 부럽다. 그가 비단 우리보다 명징하게 보았고, 생각하고, 느꼈고, 행동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죽는 순간에도 그럴 수 있었기 때문에 부럽다." 에이드리언은 명징했다. 명징하다는 건 무엇인가? 사실이나 증거로 분명히 하는 것. 사건과 현상을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논리적 사고로 도출한 결론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그는 명징함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자신을 추동다. 삶의 요소를 방정식화 하여 정(正)ㆍ반(反)ㆍ 합(合)의 변증법을 실행다. 자기 초월의 상승 통해 죽음이라는 최상의 단계에 이다. 파멸에 이르더라도 자신에 이르는 길을 멈추지 않다.


    변증법의 자기 초월이란 무엇인가? 변증법은 자신에 이르기 위한 절망의 길, 고통의 길, 해방의 길이다. 한계치에 이른 존재가 힘을 잃어갈 때. 지금의 자신을 부정할 수밖에 없을 때. 변화의 열망이 자신을 일으킬 때. 비로소 존재의 향상을 위한 몸부림이 싹튼다. 변증법의 시작은 자기의식의 분열이다. 존재를 대상화하여 자신을 반추한다. 대립을 위한 모순과 한계의 직시. 상승을 위한 뼈를 깎아내는 고난. 발전과정 속에 한층 더 높은 존재의 생성. 이것이 정(正)ㆍ반(反)ㆍ 합(合)의 운동이다. 변증법은 필연적으로 고통과 불안정을 수반한다. 고통을 감내할 배짱, 자신에 대한 믿음, 지적 모험을 감행해야만 존재의 도약을 이룰 수 있다. 하여, 변증법의 운동은 자신과의 첨예한 투쟁이다. 상승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만이, 자신을 평균치가 아닌 어떠한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의 경지로 상승시킨다.


    사실 토니의 편지와 베로니카 집안의 비극, 에이드리언의 자살은 별개의 일이다. 사랑했던 여자와 가장 아끼는 친구가 사귄다는 소식을 두 팔 벌려 환영할 인간이 어디 있는가. 누구나 저주를 퍼붓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들은 토니와 상관없이 자신의 욕망을 향했고, 그에 따른 업보를 짊어진 것이다. 친구의 애인과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어머니와 관계 맺는 기괴한 욕망의 분출이 편지 한 통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한 통의 유서가 아니었다면 토니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 토니와 그들의 삶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 토니는 노년의 어느 날, 잠시 스쳤던 인연으로부터의 유서에 휩쓸렸다. 그리고 수십 년 전에 죽은 에이드리언의 흔적, 친구가 남긴 찌꺼기를 손에 넣고자 집착한다. 과거를 소급하여 평균치의 균형이 깨져버린 삶을 수습하려는 몸부림. 이 모든 과거로의 집착은 구심을 향하는 삶에서 연출된다. 변증법의 인간은 치기 어린 시기심을 반추하여 기억의 날조가 아닌, 성숙의 자양분으로 삼는다. 노년에 이르러 수십 년 전의 행적을 끄집어내어 고통을 헤매지 않는다. 과거의 그물에 사로잡혀 구심력의 현재를 사는 인간. 자기 초월의 투쟁으로 원심력의 현재를 사는 인간. 변증법의 끊임없는 생성을 통해 더 높은 차원으로 자신을 상승시키는 것. 그 공간엔 미움과 원망, 후회와 집착 따위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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