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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문장1기/완결] 나의 언어 연대기(1) (말 - 장폴 사르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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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정재윤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768회   작성일Date 23-06-19 18:58

    본문

    나의 언어 연대기

     

    정재윤

      

    장폴 사르트르는 ''이라는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삶과 언어가 어떠한 상호작용으로 형성되어 왔는지 펼쳐낸다. 책을 읽고 환기해야 할 것은 사르트르의 말을 분석하는 것이 아닌, 나의 언어 나의 말이 어떻게 구성되어 왔는지를 되짚어 보는 것이다. 자신의 일생을 반추한다는 건,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나와 같이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삶을 무의미하게 탕진한 모습을 들추는 건, 참으로 부끄럽고 뼈아프다. 한 인간이 무()로부터 시작해 심오한 철학의 세계에 이르기 위한 몸부림! 이것은 언어를 주제로 펼치는 나의 자서전이다. 나의 언어는 어떠했는가. 어떠한 역사와 과정을 통해 지금에 이르렀는가. 끝없는 상승을 위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회고를 통해 현재를 직시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그린다.

     

     

    언어-1. 본능


    인간에게 형성되는 최초의 언어는 태어난 환경에 따라 결정된다. 수없는 이들이 그저 우연으로 떠 안겨진 출생의 악조건을 극복하지 못해 평생 미망을 헤매고 고통 속에 살아간다. 나 또한 출생이라는 인생의 로또에서 꽝에 가까웠다. 나는 무()였다. 언어의 무는 곧 본능이다. 타고난 성정이 주변 환경에 반응하여 언어로 정제된 필터링 없이 나오는 것. 나의 초년은 본능 그 자체였다. 에로스, 쾌락, 분노로 점철된 원초적 본능의 삶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아기 때 이혼했다. 그때 부모의 나이 스무 살이었고, 어머니는 이혼 후 감당할 수 없는 나를 외할머니에게 맡겼다. 갓난아기 때부터 국민학교 졸업까지 외조부모 품에서 성장했다. 그마저도 외할아버지는 어머니와 성이 다른, 나와는 전혀 연관 없는 분이었다. 어릴 적 나는 가족 내 어디서도 온당하게 속하지 못한 존재였다. 유년시절 아버지의 존재는 없었다. 부모가 곁에 없으니 가정교육은 전무했다. 할머니는 그저 나를 따뜻하게 보살펴주었다. 6학년이 되고 사회에서 기반을 잡은 아버지에게 차츰 연락이 왔다. 아버지는 재혼했다. 장남인 나를 데려오려 했고, 중학교에 입학하며 아버지 가정에서 새 출발 했다. 아버지는 강했다. 자신을 억압하는 존재를 처음 겪어본 나는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괴로움에 휩싸였다. 폭압적인 아버지에게 처음엔 순종했으나, 점점 분노했다. 자살 기도를 하고, 아버지를 죽이려는 마음까지 먹었다. 사춘기와 반항적인 기질에 아버지에 대한 분노까지 더해졌다. 술담배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해방구였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삶은 오래가지 않았다. 집안에 불화의 그늘이 드리웠다. 계모는 아버지와의 관계악화로 나를 키울 수 없다 했고, 그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본 나는 가출했다. 새로운 가정2년 반 만에 끝을 맺었다. 어머니 또한 재가한 상황에서 나를 데려와야 했고, 많은 것을 희생했다. 부모는 자신들의 인생도 감당할 수 없었다. 혼돈의 상황에서 공부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게임과 방황으로 고등학교를 보냈다. 어리숙한 존재가 무력한 현실을 도피할 방법은 오로지 쾌락뿐이었다.

      가정의 품에서 보듬어지지 못한 존재는 외부에서 위안을 찾는다. 첫사랑은 중학교 2학년에 시작됐다. 여자친구와의 깊은 관계만이 안식처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깊숙이 스며들어 에로스를 만끽했다. 그것은 서로의 배경과 일체의 사회적 관념, 통념이 들어서지 않는 그야말로 원초적 사랑이었다. 통제되지 않는 치기 어린 사랑은 그 시기에 허락되지 않는 결론을 만들어냈다. 누가 그랬던가, 자식은 결국 부모 삶을 따라간다고. 나 또한 요즘 말로 고딩엄빠가 될뻔했다. 사건은 어찌해서 잘 마무리되었다. 물론 모든 것을 혼자 수습하는 과정에서 죄책감으로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어머니 품을 떠났다. 해방감에 젖은 삶은 게으르고 방탕했다. 술에 찌들고, 몸무게는 100킬로에 육박했다. 그 상태로 입대했고, 군 생활을 제대로 할 리 없었다. 나의 반골 기질은 억압의 총체인 군대와 충돌했다. 이등병 시절 하극상을 일으키고, 선임이 돼서는 중대장을 영창 보내 부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부대를 두 번이나 옮기며 군 생활을 보냈다. 본능으로만 이뤄진 존재는 자신의 분노에 충실한다. 그 충실함은 결국 스스로에게 극한의 악몽을 선사했다. 누구도 나에게 절제를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내 삶과 언어에 절제란 없었다.

      군생활동안 몇몇 선임에게서 내 주변에는 볼 수 없었던 생활 태도와 전혀 다른 언어세계를 목격했다. 그에 반해 무지몽매한 나를 반추하며, 그제야 조금씩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결국 삶의 방향이 어긋남을 깨닫고 제대 전후 각성에 돌입했다. 한편, 나는 어릴 적 으레 읽는 문학, 위인전 보다 백과사전 전집을 읽고 또 읽었다. 학교 공부에는 관심 없었고, 관심 없는 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도 없었다. 공부는 오직 한 가지, 사회 과목에만 흥미가 있었다. 사회 과목만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공부하여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항상 만점을 받았다. 어릴 적부터 왜 유독 인문분야에만 흥미를 가졌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그저 타고난 것이라고 할 수밖에. 나의 이러한 성정을 '철학적 가능성'으로 명명한다.

     


    언어-2. 음표

     

    각성에 돌입한 나는 잘하는 걸 해보자는 생각으로 타고난 재능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결론은 음악이었다. 그에 앞서, 새로운 삶을 위해선 전혀 다른 삶의 자세가 필요했다. 방탕과 무절제함에서 규율과 절제로 삶의 자세를 180도 바꿨다. 금연금주와 뼈를 깎는 다이어트에 몸무게를 정상치로 만들었다. 새로운 세계는 새로운 언어로부터 시작된다. 전문적인 영역일수록 생전 접하지 못한 생경한 언어부터 돌파해야 한다. 음악의 언어와 음표는 내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기에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단 몇 개월의 준비 끝에 운 좋게 음대 작곡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입학해 보니 동기들은 수년간 음악을 해왔기에 음악적 역량에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간극을 메우기 위해 밤낮없이 학교생활에 충실했다. 그 결과 전학기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생전 처음으로 맛본 목표와 도전, 노력과 성취의 과정. 이 모든 것은 스스로가 원했고 즐겼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졸업 후 유학을 준비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점점 안 좋아졌고 얼마 후 결국 유학을 포기했다. 현실의 벽 앞에 쓴잔을 마셨지만 다른 길을 찾아 매진했다. 4년제 음대로의 편입을 준비했고, 이번에도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단기간에 목표를 달성한다. 그곳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어느덧 서른, 졸업을 앞뒀다. 중학교 2학년에 시작한 첫사랑은 그때까지도 계속되었다. 여자친구의 마음은 조급했다. 나는 아직 학생이었다. 결혼할 수 있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졸업 후 작곡으로 마땅한 일자리도 없었기에 당장 앞날을 약속할 수 없었다. 그녀는 결혼이 필요했고 결국 이별을 고했다. 13년간의 사랑은 허무하게 끝을 맺었다. 나는 그녀를 잡을 수 없었고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으로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별과 함께 음악에 대한 열정도 순식간에 꺼져버렸다.

      음악은 나답게 살게 했던, 충만한 삶을 알게 했던 소중한 경험을 선사한 매개체였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미래로 사랑마저 떠나간 현실에 음악은 더 이상 의미 없었다. 꿈이고 뭐고 당장 생계를 위해 돈벌이를 찾아야 했다. 6년간 내 삶의 전부였던 음표를 하루아침에 지워버렸다. 나는 새로운 욕망을 쫓아 새로운 언어를 내재하려 했다. 이 시기 '철학적 가능성'의 궤적은 사회, 정치, 역사, 성공학으로 폭을 넓혀갔다. 역시나 인문사회 서적만을 탐독했다. 이때까지도 철학은 안중에 없었다. 그저 세상을 좀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욕망으로 책을 읽었다.

     


    - 2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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