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장] 희망을 노래를 불러라_네루다의 우편배달부(안토니오 스카르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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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노래를 불러라
기본학교 2기 이 선영
“여명이 밝아 올 때까지 불타는 인내로 무장하고 찬란한 도시로 입성하라”
가련하지만 찬란한 시인 랭보의 말을 인용하며 네루다는 노벨상 수상소감을 전한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잃지 않고 시와 깃발을 가지고 여기에 도달했다며 시가 헛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시의 힘이라! 불타는 인내의 응축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시가 혁명의 동력이 될 수 있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으로 이어져 세상을 바꾸는 자양분으로 전환되는 것이 가능한가? 대답은 예스! 여기, 자기 삶으로 시의 힘을 증명한 이슬라 네그라의 우편배달부, 마리오가 있다.
하찮은 이유와 행운 하나 때문에 우체부가 된 마리오의 유일한 고객은 저명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이다. 이 만남은 마리오의 인생을 바꾸는 변곡점이 된다. 시인의 명성에 기대어 소녀들에게 인기를 끌어볼 참으로 시집을 사고 하필! 시를 읽는다. 시의 세계로 한 발짝 들어서며 세상이 메타포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발자국을 더 깊이 내디딜수록 보이지 않는 세계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상상하고 꿈꾸는 것을 실현 시키는 힘이 커진다. 있으니까 보는 감각적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감춰진 진실을 볼 수 있는 세계로 사유가 확장된다. 그저 일자리를 구하고 영화를 보는 정도를 원했던 마리오가 네루다와 견주는 시인이 되는 꿈을 품게 된 것이다.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인생의 색은 진해지고 올록볼록 입체감이 생긴다. 강렬한 자기 꿈을 꾸는 사람이 갖는 힘!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마리오의 강한 에너지와 메타포로 확장된 생각의 능력치는 사랑을 쟁취하는 밑거름이 된다. 처음엔 그녀 앞에서 몇 마디말도 하지 못했던 마리오가 네루다의 시, 메타포의 힘으로 입이 열리고 생각의 주름이 쫙 펴진다. 그리고는 첫눈에 반한 아름다운 여신 베아트리스와의 사랑 앞에 놓인 거대한 장애물, 계산이 빠르고 현실적인 조건을 중요시하는 그녀의 어머니를 넘어서 ‘사랑의 골’을 넣고야 만다.
메타포, 즉 은유는 있는 어떤 것을 유사한 특성을 지닌 것과 연결하여 표현하는 방식이다. 기존에 있던 전혀 다른 것으로 표현되나 기존의 것보다 더 이해하기 쉽게 전달된다. 또한, 서로 다른 것을 연결 지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창조의 과정을 경험하며 사고는 확장되고 깊어진다. 있는 것을 쪼개고 연결하여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것을 생산하는 훈련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창의적인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다. 자신이 상상했던 바로 그것을 현실 속에서 실현 시키는 힘을 갖게 되는 거다. 마리오가 꿈에 그리던 베아트리스를 만나 사랑의 결실을 맛본 것처럼 말이다. 시는 세상을 관찰하고 쪼개고 상상하여 연결한 창조의 결정체다. 마리오는 메타포로 이루어진 상상력의 순수 결정인 네루다의 시를 읽고 외우며 자기만의 시를 쓰면서 자기 세계의 창조력을 키웠다. 높은 수준의 인간으로 성장해 위기의 상황에서 용기 있는 선택을 한다. 벼랑 끝에 선 네루다에게 온 우편물을 그만의 방식으로 배달하고 아름다움과 무(無)가 교차된 검은 물의 마지막 시를 듣는다.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
시를 만나며 진정한 자기 세계를 만들어간 마리오의 삶은 한평생 시를 쓰며 살아온 시인 네루다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시가 헛되지 않았음을, 세상을 바꿀 희망의 노래라는 것을 우편배달부 마리오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소용돌이치는 정치 상황 속에서 몰려오는 불안과 걱정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었을 것이다. 생기 있고 순수한 마리오가 전해주는 눅진한 욕망이 만들어 내는 소소한 사건들 속에서 생의 활기를 전해 받았을 것이다. 스스로 고통스럽고 비를 버금고 있는 시라고 표현한 자신이 쓴 시 속에 담긴 인간에 대한 신뢰와 희망이 ‘우편배달부 마리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통찰이 진한 향기로 베인 네루다의 시는 마리오를 통해 살아 숨을 쉰다.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기에 시는 희망의 노래가 된다.
“번지르르한 말처럼 사악한 마약은 없어. 촌구석 술집 년을 베네치아 공주처럼 느끼게 만들지. 그리고 나중에 진실의 순간이 오면, 즉 현실로 돌아오면 말야, 부도수표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되지. ……… (중략) 말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야. 허공에서 사라지는 불꽃놀이일 뿐이라고!”
요즘 사람들은 시의 힘을 믿지 않는 듯하다. 마리오의 장모처럼 그저 사라지고 마는 아무런 힘도 없고 쓸모도 없는 거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렇기에 시낭송회도 별로 열지 않고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시집도 드문 게 아니겠는가? 시가 어려워서 그럴 수도 있겠다. 빠르고 자극적인 영상에 익숙해지면 함축적이고 생경한 말들로 지어진 시를 즐기기는 힘들다. 시를 읽지 않으니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들도 줄어든다. 시가 쓰이지 않고 나오는 시가 많지 않으니 읽는 사람도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진다. 국어시간에 교과서 속의 시를 배우는 방식이 시험 풀이용 주입식으로 이루어져서 시를 그저 지겹고 따분한 것이라 여기고 손절하는 경우도 있겠다. 시가 희망의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더 이상 믿지 않는 이들에게 시의 힘을 어떻게 전해줄 수 있을까? 말의 힘이 실종된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다시 희망을 노래를 부르려면 시의 맛을, 그 울렁임을 느낄 수 있는 떨림의 경험이 필요하다. 밋밋했던 세상이 쫄깃해지고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울림의 진동을 느껴봐야 한다. 시속의 말이 그저 사라지고 말 것이 아닌 나의 멋진 신세계를 창조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한번 믿어보자.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 실린 시를 읽고 떨림과 울림을 느껴보라. 그러면 자기 창조라는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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