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장] 밑바닥의 인간_인간실격(다자이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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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의 인간
“인간의 삶에서 유리되어 갈피를 못 잡는 인간, 안과 밖의 구별 없이 인간의 삶에서 끝없이 도망치는 바보 멍청이, ‘익살’이라는 가는 실로 간신히 인간과 연결된 사나이.”
주인공 요조는 스스로를 이렇게 설명한다. 아니 설정한다. 단단한 자의식의 껍데기를 갑옷처럼 입고 외부 세계와 단절한 채 흐르는 대로 살다가 종국에는 텅 빈 존재가 된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유의 종착점인 무(無)가 아니다. 이것은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고 그대로 죽어간 것 같은, 안개가 스러지듯 사라진 ‘없는 존재’다. 보는 사람을 섬뜩하고 역겹게 하는 미묘한 얼굴. 인간의 부조리와 모순을 마주하고 스스로 선택해 만들어낸 자화상이다. 살면서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고 엮이고 싶지 않은 실격의 인간. 꼬여버린 자의식의 틈새에 자멸의 음습한 무게추를 매달고 바닥으로, 더 낮은 바닥으로 계속해서 가라앉는 인간. 미치광이, 진정한 폐인, 인간 실격! 살기 위한 요조의 몸부림은 어쩌다 가장 밑바닥의 인간, 인간일 수 없는 인간이 되게했나?
삶은 개인이 세계를 구축하고 형성하는 과정이자 결과이다.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변하는 소위 ‘변화무쌍한 무엇’이다. 더 이상 달라질 것이 없는 상태는 바로 생의 마지막 단계. 변화가 멈추면 죽음에 이른다.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는 순간, 요조가 ‘죽을상’이 된 것처럼 말이다. 변화가 긍정의 상승 곡선을 그리느냐, 부정의 하강 곡선을 그리느냐를 결정하는 건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변화를 상승의 방향으로 선택하면 스스로 껍데기를 벗는 변신의 단계를 거치며 존재는 상승한다. 의식적 탈피를 통해 인간은 내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한 인간이 된다. 자의식의 껍데기를 알아차리고 허물을 벗어 새로운 자신으로, 더 높은 수준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하지만 요조는 어린 시절 목도한 어른들의 위선과 가식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연기의 껍데기를 두른다. 태생적으로 남과 다른 정체를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며 ‘익살’의 위장술로 타인을 속인다. 그리고는 성장이 멈춘 ‘어른아이’가 된다. 퇴행을 택했기에 몸은 자랐지만 독립적으로 살아갈 힘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술, 담배, 창녀, 마약에 기대어 살아가는 기생 인간이 된 것이다. 위험인물이 아닌 호감의 인물로 꾸미고 싶은 욕망을 지녔을 때만 해도 약간의 희망은 있었다. 익살 연기를 눈치 챈 ‘다케이치’에게 상처받기 쉬운 내면을 보여주고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조금도 상관하지 않는다’ 식의 주관적 창조기법을 익혔다. 이때 요조는 친구와의 교류를 변신의 기회로 삼아 성장의 상승 곡선을 탈 수 있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남들 눈치만 보느라, 외부에서 정한 기준을 따르는 척하느라 과감하게 진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음습한 내면일지라도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밖으로 그것을 드러내 쨍쨍한 햇볕을 쬐든 차가운 비바람을 맞든 부딪쳐야 한다. 깨지고 충돌하는 자극의 경험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껍질의 정체를 인지할 수 있다. 그래야 상승의 방향으로 변화를 이끌고 싶은 욕구가 생성된다. 자기표현으로 자기 파괴 욕구를 치환하여 밑바닥으로 추락하려는 속도 정도는 늦출 수도 있다. 어쩌면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충만한 존재이자 난해한 존재들과 소통하며 살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른 자신만의 개념에 확신을 갖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세상의 힘이 개인의 힘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들과 다르다는 것에 불안을 느끼고 겹겹이 껍데기를 두르고 자신을 가두고 감춘다. 자신을 들킬 것 같은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고 인간으로서 닿을 수 있는 가장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이럴 때 반대로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불안의 실체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스스로 이 껍질을 깨뜨릴 수 있는 용기를 내 한 번쯤 내어보는 거다. 공포의 대상을 만만하게 여겨 보는 거다. 공포에서 도망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내던지지 말고 공포. 두려움, 불안. 이것의 시작을 제대로 보려고 시도해보는 거다. ‘모든 것은 그냥 지나갈 뿐이다.’ 허무의 늪에서 헤어 나오려면 용기 내어 너덜거리는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배짱을 지니고 직면해 보자. 낡은 껍질을 벗고 성장의 상승 곡선을 탄 자신을 바라보며 껄껄 소리 내어 웃는 모습을 상상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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