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장 2기] 반복되는 역사에서 벗어나려면 '내 삶의 주인공이 되라!' (징비록_배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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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역사에서 벗어나려면
‘내 삶의 주인공이 되라!’
이번 22대 총선은 정권 심판론과 안정론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했다. 조선시대부터 우리나라는 당쟁으로 정치적 소모가 많았다. 지금도 여전히 양당 주도 아래 당쟁은 진행형이다. 민생이 파탄 났다고 아우성인데 양당은 서로가 상대의 약점만 골라 파고든다. 코로나 이후 세계정세의 흐름이 전과 같지 않고 서방과 중동에서의 전쟁과 분쟁상태는 우리나라의 경제까지 영향을 미쳐 무역수지는 최악이고 내수경기는 고물가로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기 그지없다. 시대 상황이 다를 뿐이지 우리는 여전히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강대국들 사이에서 무력 충돌과는 다른 형태로 국가 간 전쟁과 연대를 반복하고 있다. 징비록을 읽으며 나라를 이끄는 리더와 위정자의 모습에서 올바른 판단과 결정, 그리고 주권국으로서의 독자적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1:29:300, 반복된 역사
하인리히 법칙은 한 번의 큰 재해가 있기 전에, 그와 관련된 작은 사고나 징후들이 먼저 일어난다는 법칙이다. 큰 재해와 작은 재해,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이라는 점에서 ‘1:29:300법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임진왜란과 경술국치가 일어나기까지 이 법칙의 징후는 분명 있었다.
임진왜란 발발 150년 전 신숙주는 통신사로 왜국(倭國)을 다녀와서 해동제국기를 집필하고 임종 직전까지 성종에게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또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남해의 여러 곳에서 크고 작게 왜구가 쳐들어와 토벌하기를 반복하였다. 왜국(倭國)과의 통신사 파견 문제가 대두되자 조선은 1590년 황윤길과 김성일 등을은 통신사로 보내며 왜(倭)를 살피게 하였다. 사행을 다녀온 황윤길과 김성일은 전쟁 발발가능성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임금에게 보고하였고 위정자들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김성일의 의견에 더 무게를 실으며 아무런 대비 없이 1년 후 임진왜란을 맞이하였다. 왜국(倭國)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수없이 간첩을 보내 정탐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철저하게 계획하였다. 당시 황윤길과 김성일에 의하면 일본은 꽤 실용적이고 국가 기강이 잘 잡혀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자리에 연회를 위한 도구는 차려놓지 않았고, 앞쪽에 탁자 하나를 놓았는데
그 위에는 구운 떡 한 접시만 있었다. 또 질그릇에 탁주를 돌려 마셨는데 그 예법이 매우 간략하였다’,
‘나고야성이 세워지고 병참기지로서 기능하기 위한 도시발전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
‘불과 다섯 달 만에 성의 축조가 완료된 것으로 보아 당시 일본의 발달 된 성곽축조 기술과
히데요시의 명령이 얼마나 엄격하게 지켜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더 이상 왜(倭)는 조선에 조공을 바치던 속국이 아니었으며 대국 명나라를 넘보는 강국이 되었다. 급기야 노골적으로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지나갈 것이라 선전포고하지만 자신의 안위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위정자들은 왜(倭)의 의도를 숨기는 데만 급급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조선은 오랫동안 전쟁이 없다는 핑계로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군주는 한없이 무능해졌고 위정자들은 파(派)을 나누어 당쟁을 일삼았으며, 국가체계는 점점 해이해져 기강이 흔들렸다. 전쟁 발발 6년 전 조선을 순시하러 왔던 야스히로는 조선을 순시하며 기강이 무너지고 해이해진 조선을 조롱한다.
‘이 늙은이는 수년 동안 전쟁을 치르느라 수염과 머리카락이 하얗게 샜습니다.
하지만 목사께서는 음악 소리와 기생이 있는 곳에서 지내니,
근심할 것이 전혀 없을 텐데도 백발이 되었으니 어찌 된 일입니까?’
‘너희 나라는 망할 것이다. 이미 기강이 무너졌으니 어찌 망하지 않겠는가?’
1592년 4월 13일 왜군이 부산포를 침범하여 파죽지세로 휘몰아치자 조선의 군사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하거나 달아났다. 왜군은 이 여세를 몰아 5월 3일에 조선의 수도 한양을 함락하였다. 조선에 조공을 바쳐 벼슬이나 해 먹던 왜국(倭國)의 일개 관료의 예언은 적중하였다. 전쟁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을 뒤로 하고 임금은 수도 한양을 탈출하여 본인의 살길에만 매달린다. 망할 위기에 조선의 유일한 희망은 명나라가 원군을 보내주는 일. 명(明)은 굴욕적이고 집요한 조선의 원군 요청에 마지못해 파병하지만 이이제이(以夷制夷)전략으로 조선의 구원에 진심이 없다. 공명심에 눈이 먼 명(明)군의 장수들은 조선의 백성에 잔혹한 만행과 학살로 많은 피해를 입힌다. 오죽하면 침략자인 왜(倭)군이 아군인지 조선을 구하러 온 명(明)군이 적군인지 구별할 수 없어 이를 ‘얼레빗과 참빗’으로 빗대 부르며 이들의 만행을 원망하였다. 무능한 약소국의 백성은 그래서 더더욱 비참할 뿐이다.
나라가 이 지경인데도 못난 임금은 살겠다고 요동으로 망명을 꿈꾸다가 유성룡의 만류로 겨우 조선에 남게 된다. 신하들은 나라의 풍전등화를 뒤로하고 여전히 당쟁에 몰두하며 간신과 충신을 가려내지 못해 나라 안팍을 더욱 어지럽게 하였으며 백성들은 수없이 도륙되었고 국토의 대부분이 황폐되어 굶주림에 지친 아비가 자식을, 아내를 잡아먹는 아비규환의 세상이 되었다. 이처럼 처참한 7년간의 전쟁은 두고두고 조선역사의 후유증으로 남아 두고 두고 악재로 작용한다.
조선 후기 또한 이와 같았다. 세도정치와 매관매직, 당파싸움, 무능한 위정자들에 의한 국가 기강의 해이와 문란, 수탈과 착취로 살기 어려워진 농민들이 여기저기에서 봉기를 일으켰으며 무능한 군주는 또다시 외세의 힘으로 민중봉기를 평정하려다가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다.
이에 반해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와 산업화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고 서구의 기술과 사상을 도입하며 군사, 교육, 산업 분야에서 광범위한 개혁을 실시하여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대륙에 대한 야욕을 펼친다. 유성룡은 후대에게 다시는 임진왜란과 같은 일을 겪지 말라고 징비록을 남겼지만 이를 명심하지 않은 조선의 군주와 위정자들은 결국 300년 만에 같은 수법으로 나라를 잃고 말았다.
하늘이 내린 사람-이순신
명량에서 대승을 거두고도 원균과 간신들의 모함으로 죽임을 당할 뻔한 이순신은 정탁의 옹호로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모함으로 아들(이순신)이 체포되자 병을 얻은 노모는 이순신이 백의종군 중에 세상을 떠났으니 이 보다 더 원통한 일이 어디 있으랴! 또한 이순신과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충성스러운 부하들도 원균의 칠전량 해전에서 모두 죽었으며 셋째 아들 면도 전쟁터에서 전사한다. 이 모두 인간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었을 것이다. 다시 수군통제사가 되어 배설이 지킨 12척의 함선으로 명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두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조선을 구해내었으며 이후 전력을 가다듬어 조선 수군을 복원하고 명나라 장수 진린과 병력을 합쳐 남해를 지켜낸다. 성품이 사납고 무례한 명나라 장수 진린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보면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와 넓은 도량을 느낄 수 있다.
‘왜군의 배가 섬 근처까지 침범해오자 이순신이 군대를 보내 무찌르고 왜군의 머리 40개를 베어
모두 진린에게 주며 그의 공으로 돌렸다. 진린은 기대 이상의 대우에 기뻐하였다.
이후 진린은 모두 일을 하나하나 이순신에게 물었고 외출할 때에도 이순신과 가마를 나란히 하며 결코 앞서 나가지 않았다’
훗날 진린이 노량해전에서 왜(倭)군에 포위되었을 때 이순신은 위험을 무릅쓰고 진린을 구해냈지만 끝내 자신은 지키지 못했다. 노량해전을 끝으로 일본은 조선에서 철수하였고 참혹하고 지리한 7년간의 전쟁은 끝났으며 조선은 다시 국맥을 이어 갈 수 있었다.
<맹자 고자하 15편> 에는 이런 글이 있다.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하면
반드시 먼저 그가 마음의 뜻을 세우기까지 괴로움을 주고
그 육신을 피곤케 하며 그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 몸을 궁핍하게 한다.
그가 하려는 바를 힘들게 하고
어지럽게 하는 것은 마음을 쓰는 중에도 흔들리지 않을 참된 성품을 기르고,
불가능한 일도 능히 해낼 수 있도록 키우기 위함이다."
온갖 시련과 아픔을 이겨내고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해내니 맹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순신은 분명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 유성룡은 이순신에 대해 여러 기록을 하였는데 그중 이순신을 잘 표현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순신은 말과 웃음이 적었으며 용모가 단정하고 성품이 조심스러워서 마치 몸을 닦고
언행을 삼가는 선비와 같았다. 그러나 내면에 담력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 자신을 잊고 나라를 위해 죽었으니,
이는 바로 평소에 그가 자신을 함양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순신은 자신을 끊임없이 함양하였기에 주인공이 될 수 있었으며 반복되는 역사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자신을 함양한다는 것’은 자기를 향해 걷는 것이다. 자기를 향해 걸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다. 자신을 향해 걷기 위해 홀로서기가 필요하다. 스스로 홀로 설 수 있어야 비로소 독립적인 기능을 할 수 있다. 독립은 주체가 될 수 있게 한다. 주체는 곧 주인이다. 자신을 함양하는 것은 내 삶에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주인공이었기에 이순신은 나라를 구할 수 있었고 영원히 죽지 않았다.
각자 ‘자신을 함양’하여 주인의식을 갖고 비판적인 사고로 삶을 개척해 나간다면 누구라도 그 세상의 이순신이 될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내가 내 삶에서 주인공이 될 때 반복되는 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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