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장 2기] 욕망을 욕망으로 길들이기 (구운몽_김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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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은 수행 중에 팔선녀와의 수작과 희롱으로 세속의 정욕을 불러일으켜 스승으로부터 벌을 받고 양소유로 인간계에 환생하게 된다.
수려한 외모, 뛰어난 두뇌, 호기로운 배짱을 가지고 양소유로 태어난 성진은 과거 자신이 욕망한 부귀영화와 출세를 통하여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여 절정에 이르자 양소유의 삶에 대해 회의와 무상감을 느끼며 불생불멸의 도를 구한 과거 성진의 삶을 욕망하게 된다.
성진과 양소유는 둘이지만 하나이고 하나이지만 둘로 각각의 인생은 서로의 욕망 끝에 닿아 있다.
마치 이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앞이면서 뒤이고 과거이면서 미래로 연결되어 집착과 욕망에 따라 돌고 돌 뿐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욕망에 지배당하며 좌우되는 것을 불가에서는 육도윤회라 하였다.
소설 속에서는 육관대사의 가르침이 성진을 육도윤회에서 벗어 날 수 있도록 이끌었지만, 현실 속의 중생들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고 죽어도 죽는 게 아니며 육도윤회라는 수레바퀴에 갇혀 한 생, 한 생, 서로가 서로를 욕망하며 견뎌낸다.
양소유처럼 욕망의 성취를 최고의 정점에서 누리게 되면 인생무상이나 일장춘몽과 같은 허무를 인정하며 불생불멸의 도를 구해야겠다는 추상화된 욕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일까?
거기까지 못 가본 나로서는 성진과 양소유의 욕망도, 성취도, 인생무상이나 허무를 느끼는 감정도 불생불멸의 도를 깨치겠다는 진화된 욕망도 모두 부러울 따름이다.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더욱 헷갈리는 요즘이지만 그 헷갈리는 욕망들 조차도-늙어가는 몸을 위해 부귀영화를 꿈꿔보기도 하고, 늦었지만 입신양명하여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며, 정의 구현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내 業을 더 열심히 하고도 싶다-나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욕망이 성취되면 성취로서 끝난 적도 없지만 실패해도 멈추지 않는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내 안에서 욕망은 계속 꿈틀댈 것이다.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 굴리는 것도 집착과 욕망이요, 깨달음에 대한 도를 구하고자 발원하는 것도 욕망이니 어쩌면 욕망은 길들이기 나름이 아닐까?
삶에 대한 허무와 덧없음을 깨닫게 하는 대부분 선각자의 메시지는 인간을 덜 욕망스럽게 하거나 근본적으로 ‘인간의 존재이유’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 구운몽을 읽으면서 그 유치한 소재와 전개로 인생무상, 존재이유에 대한 통찰을 넘어 그 이상의 무엇, 궁극의 깨달음 ‘空’에 대한 화두는 나에게 또 다른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육도윤회를 벗어나는 길.
몇 생이 걸릴지는 모르겠으나 구체적인 욕망이 추상적인 욕망으로 점점 승화되어 욕망의 진화를 꾀하다 보면 욕망이 욕망을 길들여 작가가 말하는 ‘空’라는 깨달음에 도달하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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