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장2기] 너가 가고자 하는 곳이 네가 갈 곳(구운몽-김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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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가고자 하는 곳이 네가 갈 곳
조선시대 내내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는 여러 가지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교는 산 속에서 백성 속에서 신앙으로 꾸준히 명맥을 유지해 왔습니다. 백성들은 머리로는 유교의 가르침을 따랐지만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세종대왕도 백성들이 쉽게 훈민정음을 쓰고 사용할 수 있도록 《月印千江之曲(월인천강지곡)》 등의 불교적 가르침을 활용했습니다. 백성들은 유교의 정치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불교의 가르침을 잘 알고 있었고 삶 속에서 실천하려고 했습니다. 九雲夢(구운몽)은 김만중이 유배시절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소설이었습니다. 아마도 김만중의 어머니는 여덟 선녀들처럼 자기 주장이 강하고 불교신자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당차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양소유와 여덟 선녀들을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 마음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후로 많은 백성들이 한글로 때로는 한문으로 구운몽을 즐겨 읽었습니다. 보통의 백성들은 九雲夢(구운몽)에 나오는 성진이 용맹정진의 과정과 양소유가 욕망과 부귀영화를 이뤄가는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고 자신의 욕망을 대리 충족해 주었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윤회의 영원한 고통에서 벗어나 극락왕생의 바램을 이루려는 성진과 입신하여 여러 부인을 거느리며 치국평천하를 이루는 성진의 욕망 말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정신 뿐만아니라 힘겨운 삶에 믿음과 위안을 주었기에 수 많은 탄압에도 생명을 이어왔습니다. 부처님의 지혜와 가르침이 담긴 般若心經(반야심경)에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구절인 ‘色卽是空(색즉시공)’이 나옵니다. 때때로 청춘남녀의 몸 끓는 사랑이야기를 다룬 임창정 배우와 하지원 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 <색즉시공>처럼 사람들은 色(색)을 육체적 쾌락으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있지만, 불교에서 色(색)은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행복을 위해 살아갑니다. 우리의 몸을 안락하고 즐겁게 만드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믿습니다. 다시말하면 色(색)을 충족시키는 삶이 행복이라고 여깁니다. 몸을 안락하고 즐겁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욕망을 충족하려고 노력합니다. 언 발에 오줌을 누듯 순간순간 떠오르는 욕망을 충족하며 하루살이처럼 살아갑니다. 이는 오감을 통해 느끼는 것만이 실제이며,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고정되어 있고 이에 적응해 살아가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다람쥐 쳇바퀴처럼 자신의 色(색)에 갇혀 그 자리에 머물며 끊임없은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그래서 인생은 苦海(고해)라고 하는가 봅니다. 욕망의 결정체인 色(색)의 감옥에 갇혀 올려놓을 수 없는 바위를 계속해서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저주 받은 운명에서 빠져나올 수 가 없습니다.
구운몽 속 성진은 여덟 선녀 본 후 홀로 방에서 ‘남자가 세상에 나서 어려서는 孔孟(공맹)의 글을 읽고 자라서는 堯舜(요순) 같은 임금을 만나, 나면 장수가 되고 들면 정승이 되어 (중략) 恩澤(은택)이 백성에 미치고 功名(공명)을 후세에 전함이 또한 대장부의 일이라’ 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성진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이는 고통의 바다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고통의 바다에서 헤어나올 수 있을까요? 바로 ‘色은 곧 空이다’라는 말씀에 해답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色(색)의 안락과 즐거움을 위해 전력을 다 할 때 추상같은 ‘色은 곧 空이다’라는 말씀을 떠올려야 합니다. 여기서 空(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닐 것입니다. 세상은 이런 모습이기도 하고 저런 모습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고정되어 변하지 않은 것은 없고 끊임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결국 色卽是空(색즉시공)은 눈에 보이는 色(색)에 빠져 잘못된 길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성진의 스승님 말씀 “너의 가고자 하는 곳이 네가 갈 곳이라.”처럼 色卽是空(색즉시공)의 지혜를 스스로 찾아야 겠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존재의 전부라고 착각합니다. 우리가 보는 것을 다 믿을 수 있을까요?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으며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치다가 재가되고 마는 경우를 수 없이 보아왔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보이지 않는 것이 무한합니다. 우리는 아주 작은 일부를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무한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色卽是空(색즉시공)이란 눈에 보이는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모습을 달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힘들이 끝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 때 비로소 苦海(고해)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양소유가 된 성진은 ‘인간 세상에 환생하여 양 씨 집의 아들이 되어 장원 급제 한림학사를 하고 줄장 입상하여 공을 이루고 벼슬에서 물러나 두 공주와 여섯 낭자와 같이 즐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던중 문득 깨달게 되며 이렇게 되뇌입니다. “세상의 부귀 풍류와 여러 낭자의 옥 같은 용모, 꽃다운 태도는 이제 어디 갔나뇨? 어찌 인생이 덧없지 않으리오?” “내 벼슬을 버리고 물라난 후부터 밤에 잠이 들면 항상 포단 위에서 참선하는 것이 보이니” 성진이 자신의 절에서의 삶이 지겨워 세상의 부귀영화를 원했고 꿈 속에서 모든 것을 이루었지만, 다시 수행하는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꿈을 깬 성진은 ‘인간 세상 부귀와 남녀 간 정욕이 다 허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너머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되는 慧眼(혜안)을 갖게 됩니다. 파랑새를 찾아 헤맨 틸틸과 미틸이 자신의 집 새장에서 파랑새를 찾았던 것처럼, 성진은 한 바리 밥과 한 병 물과 두어권 경문과 일백여덟 개 염주 속에서 解脫(해탈)의 길을 찾게 됩니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비록 산중에 있어도 도를 이루기 어렵고, 근본을 잊지 아니하면 속세에 있어도 돌아올 길이 있는지라” 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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