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로 변한 '동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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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을 차지한 '동물농장'의 동물에게는 농장의
밖은 야만인이 존재하는 정글일 것이며,
농장 안은 자신들의 생존과 자유가 보장된
이데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비교적 지능이
발달한 주도권을 가진 돼지들에게 권력이 집중
되고, 특권층이된 돼지들로 인해 독재사회로
변질되어 정글로 바뀌운다.
정글은 야만(野蠻)이 존재하는 곳이다.
야만(野蠻)이란 약육강식의 들(野)에서 알아
들을 수 없는 말(言)을 지꺼리며, 뱀(虫)이
또아리를 틀어 숨어 공격하는 야비함이다.
정글은 인식이 아닌 감각의 공간일 것이나
이들의 이상적 농장은 개개인의 인식을 통해
개간되어(化) 관리된 문화(文化)이며,
공통의 인식을 통해 해(日)와 달(月)의
이중성까지 밝게 수용하는 문명(文明)의
공간일 것이다.
무엇이 동물농장을 야만(野蠻)이 존재하는
정글로 만들었는가?
과거 그리스 철학자들은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였다.
거대한 조직이 한 사람에게 과중하게 집중되면,
그는 오만할 수밖에 없고, 자기-자신을 객관적
으로 볼 수 없는 아둔의 상태로 진입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자리하는 공동체에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폴레옹으로 인한 동물농장 처럼 말이다.
그리스 철학자 소포클레스는 민주주의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리더들의 탁월한 통치력
만큼이나 성찰하는 시민들의 의식수준이 중요
하다고 말한다. 또한 그 의식수준의 향상은
문학(文學)을 통해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희극을 통하여 의식수준을 향상 했던것 처럼.
문학(文學)은 인식의 단계, 즉 사유의 단계를
배움을 통해 항상 시키는 것이다.
'생각을 통해 감동을 느끼는 예술과
생각하지 않고 쾌락에 빠지는 예능 처럼'...
무엇을 수용하고 살아갈 것인가?
어떤 방법으로 심연 속 강하고 순수한 추상의
대어를 낚아 올릴 것인가?
제3자의 입장에서 관망하고 관찰하는 자가 있다.
바로 벤자민이며, 이는 관찰을 통해 알아차리고
인식하는 지식인이긴 하지만 용기가 부족하다.
"개인은 권력에 압도 당하지 않도록 항상 투쟁
해야만 했다. 해보면 자주 외로워지고 가끔은
겁이 난다. 하지만 자신이 소유한 특권을 지불
하는것 보다 더 높은 가격은 없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처럼 마음에 횟불을 켜고 뜨거운 가슴
으로 봉기하고 투쟁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용기가 나에게 남아 있는가?
인간은 문화를 통해 문명을 건설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매순간 명경(明鏡)을 들고 자기-자신을
밝고 선명하게 대면(對面)해 인식의 단계를
높이고 시대를 직시해 바라보며, 행동이 필요할
때 용기를 발휘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문명의 발전,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가는
길이라 생각한다.
밖은 야만인이 존재하는 정글일 것이며,
농장 안은 자신들의 생존과 자유가 보장된
이데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비교적 지능이
발달한 주도권을 가진 돼지들에게 권력이 집중
되고, 특권층이된 돼지들로 인해 독재사회로
변질되어 정글로 바뀌운다.
정글은 야만(野蠻)이 존재하는 곳이다.
야만(野蠻)이란 약육강식의 들(野)에서 알아
들을 수 없는 말(言)을 지꺼리며, 뱀(虫)이
또아리를 틀어 숨어 공격하는 야비함이다.
정글은 인식이 아닌 감각의 공간일 것이나
이들의 이상적 농장은 개개인의 인식을 통해
개간되어(化) 관리된 문화(文化)이며,
공통의 인식을 통해 해(日)와 달(月)의
이중성까지 밝게 수용하는 문명(文明)의
공간일 것이다.
무엇이 동물농장을 야만(野蠻)이 존재하는
정글로 만들었는가?
과거 그리스 철학자들은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였다.
거대한 조직이 한 사람에게 과중하게 집중되면,
그는 오만할 수밖에 없고, 자기-자신을 객관적
으로 볼 수 없는 아둔의 상태로 진입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자리하는 공동체에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폴레옹으로 인한 동물농장 처럼 말이다.
그리스 철학자 소포클레스는 민주주의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리더들의 탁월한 통치력
만큼이나 성찰하는 시민들의 의식수준이 중요
하다고 말한다. 또한 그 의식수준의 향상은
문학(文學)을 통해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희극을 통하여 의식수준을 향상 했던것 처럼.
문학(文學)은 인식의 단계, 즉 사유의 단계를
배움을 통해 항상 시키는 것이다.
'생각을 통해 감동을 느끼는 예술과
생각하지 않고 쾌락에 빠지는 예능 처럼'...
무엇을 수용하고 살아갈 것인가?
어떤 방법으로 심연 속 강하고 순수한 추상의
대어를 낚아 올릴 것인가?
제3자의 입장에서 관망하고 관찰하는 자가 있다.
바로 벤자민이며, 이는 관찰을 통해 알아차리고
인식하는 지식인이긴 하지만 용기가 부족하다.
"개인은 권력에 압도 당하지 않도록 항상 투쟁
해야만 했다. 해보면 자주 외로워지고 가끔은
겁이 난다. 하지만 자신이 소유한 특권을 지불
하는것 보다 더 높은 가격은 없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처럼 마음에 횟불을 켜고 뜨거운 가슴
으로 봉기하고 투쟁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용기가 나에게 남아 있는가?
인간은 문화를 통해 문명을 건설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매순간 명경(明鏡)을 들고 자기-자신을
밝고 선명하게 대면(對面)해 인식의 단계를
높이고 시대를 직시해 바라보며, 행동이 필요할
때 용기를 발휘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문명의 발전,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가는
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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