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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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청새치라는 자연과 싸웠다면,
청새치 역시 노인이라는 자연과 싸웠을 것이다.
소설 속 노인 산티아고는 바다 위의 또 다른 포식자로서 85번째 항해에서 자신의 세월만큼 큰 고기를 낚는다.
어쩌면 그 이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신의 배보다 더 큰 청새치를 기어이 이물에 묶어서라도 집으로 향한다.
그의 말투에서도 느껴지듯 누구보다 자신의 사냥감에게 예우를 지켰으며, 마치 하이에나 같던 상어 떼와 싸울지언정
결코 이미 죽었지만 자신의 형제 같던 청새치를 버리지 않는다. 그 죽음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매 순간순간 그에게는 버릴 것이 없었다. 침대 위 신문지마저 그에겐 친구나 형제 같은 것이었다.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노인의 몸에 흔적으로 고스란히 남는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왼손의 쥐도 그에게는 감당해야 할
존경하던 야구 선수 디마지오의 발뒤꿈치 뼈돌기 같은 것이었다. 혹은 모든 그 상황들이 예견된,
피해서도 안 되고 피하지도 못할 극복해야 할 약점이자 운명이지 않았을지...
오직 그 상황의 승리를 이루기 위해서 버티기를 하며 노련한 판단을 하는 노인에게서 존경심이 일어났다.
산티아고는 비록 운은 없었지만 끝까지 위엄은 잃지 않는다.
청새치를 잡은 후 노인은 뭍에 있는 사람들이 그 고기를 먹을 자격이 있을까? 라며 생각해 본다.
과연 그랬다. 오랜 시간 낚시 줄로 이어져 있던 그 둘은 서로의 심장 소리를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노인은 청새치에게 형제애를 느끼지만 자신의 피와 땀을 내며 혼신을 다하여 잡는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것은 그저 분해되어 돈을 주고 교환될 고깃덩어리일 뿐일 테다.
그러나 그 대가리와 앙상한 잔해만이 묶인 채 돌아온 노인의 배는 사람들에게 궁금증과 어떤 숙연함을 주었을 것 같다.
‘운이 없었다’라는 말도 함께...
소년만이 그의 고독한 싸움을 아파했다. 노인을 노인 자체로 보아주는 사람은 소년 마놀린뿐이었다.
노인은 바다 위에 노련한 사자 한 마리였다.
사자들은 늘 무리를 지어 다니지만 , 산티아고는 노인이 되어서 배 위에서 혼자였다.
만약에 노인이 잠에서 깨어난다면 86번째 항해를 준비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노인은 이미 운 같은 것은 초월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노인 산티아고였기에,
그 힘든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의 배에 잠시 쉬어가던 물새에게도 마음을 줄 수 있었다.
바다를 자신의 전쟁터가 아닌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타인도 올곧이 바라볼 수 있었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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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에서 데미안 그리고 페스트, 노인과 바다
이 소설들 속에는 항상 '소년'들이 들어있네요. 아직 동키호테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소년'의 심장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1,2권 책 두께 합이 11cm정도 되더라구요 ^^;)
하지만 요즘의 '소년'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저 '미래의 꿈나무'라는 냉혹한 뜻이 되어 있지는 않은지...
이런 생각의 기회들이 있어서 좋습니다. 다음 달 책도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신정애님의 댓글
신정애 작성일 Date송선형님의 독후감에 많이 공감합니다.
송선형님의 댓글의 댓글
송선형 작성일 Date신정애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