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장3기] 하나의 몸짓에서 시작된 존재의 진화(한강-채식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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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몸짓에서 시작된 존재의 진화
악의 평범성
영혜의 아버지와 그 가족들이 영혜가 육식을 거부한다고 집단 폭력을 가했을 때 떠오른 생각이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것이었다. 수많은 유대인 학살을 위한 이주국 책임자 아이히만은 사람들 머릿속에 이상하고 무시무시한 사람이라고 상상했지만 막상 재판장에 끌려나온 아이히만은 아이에게는 바람직한 아버지였고, 아내에게는 바람직한 남편이었으며, 아우에게는 바람직한 형이었고, 친구에게는 바람직한 동료였다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은,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이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평범한 사람의 내면에 악이 내재해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아이히만의 사유'는 (나쁜 의미에서)단순했다. 그것은 1차원적이었고, 피상적이었고, 깊이가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단순한 생각에 그치는 곳에서 '타인의 현실적인 입장을 상상할 수 없는 무능력'이 발견된다. 즉, 자신의 행동이 타인의 현존에 어떤 고통을 주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하는, '인간으로서'는 참으로 우스꽝스럽고도 한심한 상황 속에서 저질러진 범죄였다.「악의 평범성- 위키백과 한국어」 |
과분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남자는 영혜가 브래지어를 안한다는 것만 빼고는 특별한 매력도 단점도 없는 영혜를 아내로 맞이한다. 결혼 후 그들은 매우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꿈으로부터 시작된 아내의 육식 거부는 평범한 이들 부부의 균형을 깨고 남자의 일상을 무너뜨렸다. 육식을 하지 않는 아내에 대해 남편은 아내의 가족들(처가)에게 불만을 토로하게 되고, 직장상사들과의 부부모임에서 저속한 모습을 드러낸다. 남편은 아내의 채식주의 선언이 마냥 부끄럽다. 채식주의를 조롱하는 그들(직장상사와 부인들)에게 동조할 수밖에 없다. 처가 식구들에게는 육식을 거부하는 (비정상의) 아내를 빌미로 경악과 사죄, 다짐을 받아 내며 배짱을 부린다. 치졸한 남편의 행동에서 그동안 애정 없는 영혜의 결혼생활을 엿볼 수 있다. 비열함의 극치는 장모의 생일날 재현된다. 남편은 오래된 사회적 관습과 보편성에 길들여진 처가식구들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교묘히 이용하여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장인을 중심으로 아내에 대한 폭력을 이끌어 낸다.
꿈이라는 사건, 육식의 거부, 과거 키우던 개를 잡아먹었던 기억, 영혜의 현실적인 입장을 상상할 수 없는 무능력의 남편과 아버지, 다시 시작된 아버지의 폭력과 이를 동조하는 가족들. 영혜는 도무지 숨을 쉴 수가 없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저항해 보지만 가족은 여전히 영혜를 받아들일 수 없다. 가족 모두 한목소리로 ‘그냥 남들 사는 것처럼만 살면 될 걸 왜 그리 유별을 떠는지’ 걱정을 가장한 비난만 할 뿐이다. 채식을 하게 된 영혜의 이유 따위엔 관심조차 없다.
당연하고 평범하다고 여기며 행동하는 일들중 무엇인가는 상대에게 악이 될 수 있다. 자기가 행하는 일이나 부당한 권위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 권위에 동조되어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악을 저지를 잠재성을 품고 있다. 이렇게 악의 평범성은 주체가 방심하는 사이 주체를 집어삼킨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남들이 하니까, 다 그런거지 뭐...... 등등.
영혜의 나무-되기
영혜의 채식은 수직의 권력체계에 대한 저항이었다. 수렵이나 사냥, 포획 등 폭력으로 얻어진 음식을 거부하고 비폭력적인 채취를 통해 생명을 유지하겠다는 결심, 권력관계, 힘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지는 채식을 선택함으로서 실현했다.
사춘기가 되면 완전히 사라진다는 몽고반점은 영혜에게는 성인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고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마치 영혜의 몽고반점은 어떠한 억압과 폭력에도 희석되지 않겠다는 영혜의 무의식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 희소한 증표(몽고반점)에 매료한 형부는 보편적이고 관습적인 기준에서 영혜를 판단하지 않는다. 영혜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더 돋보이게도 할 수 있다. 이제서야 영혜는 자신을 알아봐 준 상대를 찾았다. 형부를 통해 영혜는 드디어 꽃이 되었다. 형부와의 정사는 각자 고유성을 가지고 동등한 관계에서 접속되는 환희의 교감, 그것은 외설이 아닌 예술이 되었다. 형부와의 교감 이후 영혜는 더 이상 꿈속의 얼굴들(권력과 폭력에서 오는 자기상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꽃이 되어본 이후 영혜는 꽃을 피울 나무가 되기로 한다. 햇빛과 물만 있으면 자랄 수 있는 나무, 음식을 거부하고 비를 맞고 햇볕을 쬐어 본다.
자급자족으로 자유롭게 존재하여 꽃을 피울 나무가 되는 것, 그렇게 영혜의 나무-되기는 시작되었다.
인혜의 영혜-되기
어렸을 적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인 인혜와 동생들. 아버지는 맏이인 자신보다 동생들에게 더 심하게 폭력을 가했고 그중 영혜가 가장 큰 피해자였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폭력에 저항하지 않고 견디었던 자신을 착한 딸이자 그리고 맏이로서 성숙되고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해 왔지만 훗날 영혜의 정신병리적인 변화를 겪으며 그것은 현실을 도피하고 자신의 생존을 위한 비겁함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또한 억제하고 인내하며 성실하게 가족을 위한 사람으로 사는 것, 그것이 인혜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동생과 남편의 반인륜적인 일탈은 그동안 쌓아왔던 자신과 세상에 대한 믿음이 해체되며 새로운 방식으로 삶을 성찰하게 했으며 자신의 삶을 관통하여 주체로서의 삶을 되돌아 보게하였다. 자신으로 살아본적이 없다는 것과 삶을 견디어 왔을 뿐이라고 각성한 인혜, 자신의 삶에서 영혜를 발견하고 영혜의 삶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인혜는 영혜-되기를 통해서 서서히 변화한다. 남편과 영혜의 정사 장면을 떠올리며 그들의 모습을 ‘흡사 사람에서 벗어나오려는 몸부림이었다’라고 재해석하는 장면은 인혜가 깊숙이 영혜의 상황을 이해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꿈속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지......그러니까, 우리가 깨어나면, 그때는......” 죽어가는 영혜를 위한 독백은 절망 끝에서 삶에 대한 한줄기 희망을 찾으려는 인혜 자신을 향한 독백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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