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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문장3기]보통의 왕국(채식주의자-한강)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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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송선형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67회   작성일Date 25-04-15 23:18

    본문

                                                                                                                                                                          

      책을 읽고 나서 떠오르는 생각을 시시때때로 여기저기 적어 놓다가 결국 주제가 뭉치지 않아,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이야기 하나를 꺼내어 써 보았다. 제목에는 보통이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가장 흔하지만 가장 벗어나기도 힘든 세상이란 의미에서 붙여 보았다.

     


    보통의 왕국


    네 귀퉁이가 반듯하여 네모라 불리는 왕국이 있었다. 그곳은 자원이 풍족하고, 사람들은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으며,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평화로운 국정이 운영되었다. 나라의 임금은 먹성이 좋아 뱃살이 둥그스름하여 덕이 있었고, 서글서글한 인상이 입가의 인자한 미소로 퍼져있었다. 신하와 백성은 자신의 집 창고에 늘 넉넉한 물자를 채워주는 임금을 몹시 존경하고 사랑했다. 그는 또한 이웃 나라에도 평판이 좋아 가끔 국경을 들쑤시는 도적들 외엔 외교적인 문제도 거의 없어 최소한의 국방에만 신경 쓰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임금에게도 걱정거리는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얼마 전부터 집요하게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한 가장 편안한 구두였다. 사실 구두야 바꿔 신으면 그만이지만 어쩐지 임금은 그 구두를 쉽사리 벗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그 구두는 매우 고심 끝에 가장 돋보이지 않는 것으로 골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곧 나라에 대외적인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 그때까지 이만큼 좋은 조건의 구두를 구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생각 끝에 이 정도는 견딜 수 있는 불편이라 여겨 사람들 앞에 나설 때만 신는 것으로 결정했다. 사실 그는 다소 엉성하게 생긴 발이 콤플렉스였는데, 이 구두는 그것을 아주 잘 숨겨주었다. 하지만 그 견딤은 행사 날 불행으로 닥쳐왔다. 국빈이 모두 모인 광장에 이른 마차에서 인자한 표정으로 내리던 그가 구두 속 얄궂게 삐져나온 못에 뒤꿈치를 가감 없이 찔려버린 것이다. 한껏 꾸민 왕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벌러덩 뒤로 넘어지고, 순간 높이 솟은 구두가 사람들 앞에서 빛났다. 순간 다친 것보다 못생긴 발이 들통날까 노심초사하던 왕은 재빨리 다시 신을 신고 애써 미소로 침착함을 유지하며 겨우 행사를  마치고 무사히 궁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임금은 낮의 일을 떠올리며 구두를 집고 창가에 서더니, 냉정한 낯빛으로 멀리 던져 버렸다.

     

    성밖에 떨어진 구두는 자신을 짓누르던 무게와 습기 그리고 냄새에서 벗어나 한동안 쾌적한 상태에서 자신의 부피를 되찾고 있었다. 비로소 자신이 딛고 다니던 땅의 촉감과 향기로운 풀 향기를 만끽해 보았다. 구두는 처음으로 자신의 빛깔과 형태를 가늠해 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누군가 구두에게 점잖은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는 하트 왕국의 왕으로 눈이 깊은 자였다. 오늘 낮 모두가 네모 임금의 모습에 웃음을 견디던 순간, 공중으로 솟구치며 반짝이던 구두에 그는 시선을 뺐겼다. 뒤축에 자그맣게 수 놓인 앙증맞은 이파리가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것은 분명 그만의 시선으로만 가늠할 수 있는 미학의 세계였다. 그는 낯설게 다가와 형식적으로 함께 가겠느냐 물었고, 남이 볼까 재빨리 구두를 보드라운 자주색 꽃무늬 천에 싸 자신의 품속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천에 싸인 구두는 처음 접해보는 꽃의 생동적인 모습에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자기 속 어딘가에 있던 태고의 씨앗이 움트는 것을 느꼈다. 왕국으로 돌아온 왕은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슬며시 구두를 꺼내었다. 구두는 세련되거나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보면 볼수록 매혹적이었다. 그는 떨리는 마음을 누르며, 구두에 발을 집어넣으려다 문득 흉측해 보이는 자기 발을 보았다. 그는 곧 깊은 고민에 빠졌다. 왜냐하면 그 구두를 신은 자신의 모습이 그 어떤 때보다 완벽해 보이길 욕망했기 때문이었다. 긴 밤이 새벽에 하얗게 타들어 가고 붉게 동이 틀 무렵 그에게 묘책이 하나 떠올랐다. 그의 다정한 왕비가 왕자와 산책하러 나간 사이 그는 왕비의 방에서 몰래 향수 하나를 집어 들고나왔다. 방으로 돌아와 향수의 뚜껑을 열자 황홀한 꽃향기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향수를 잘 사용할 줄 몰랐던 왕은 그것을 기울여 몽땅 발 위에 쏟았고, 바닥에 흘러버린 액체가 구두 바닥 옆에 고여, 왕은 발을 딛고 서자마자 미끄러져 머리를 그만 바닥에 쿵 찧고 말았다. 큰 소리에 시종이 다급히 달려왔고, 서둘러 돌아온 왕비가 그 현장에 도착했다. 소문은 날개 돋친 듯 빠르게 퍼져나갔고, 왕은 쫓겨나듯 멀리 요양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굽 하나가 꺾인 구두 한 켤레가 조용히 사라졌다.


    무엇보다 왕비는 그가 자신에게 수치스러움을 감추고 사과하지 않는다는 것에 큰 실망스러움을 느꼈다. 왕비는 그날 왕의 방에서 발견한 구두를 사람이 잘 오가지 않는 높은 탑 위에 숨겨두었다. 나라는 왕의 일로 수군댔지만, 왕비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예전처럼 허수아비 왕 대신 차분히 국정을 살피고 하나뿐인 왕자를 살뜰히 돌봤다. 하지만 왕비는 이따금 탑에 있는 구두에 신경이 쏠렸다. 그럼에도 도통 그것이 무슨 색이었는지 어떤 모양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가장 아끼던 향수가 그 구두 속에 잔뜩 고여 있었고, 한 축 굽이 꺾여있었다는 것만은 선명히 떠올랐다. 왕비는 진즉 그것을 아궁이 속에 던져 넣어 불태우려 했지만, 알 수 없는 연민에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그녀도 그 구두로부터 무엇인가를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왕비는 얼마 전부터 어떤 질환과 불면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왕자를 위해 굳건히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 중이었다. 자신을 눌러 타인을 살피는 일. 그것은 그녀가 살아온 유일한 방식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꿈속에서 희미한 소리를 듣는다. 자리에서 일어난 왕비는 홀린 듯 탑 위를 향했다. 어쩐지 소리의 주인이 그 구두인 것 같았다. 힘겹게 계단을 올라 탑에 이르자, 퍼런 달빛에 물들어 여윈듯해 보이는 구두의 가죽이 왕비의 가슴에 뜻 모를 서글픔으로 번졌다. 은은히 빛나는 구두를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주변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시야 안으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자, 아득한 경계에 걸린 왕국이 얼음장 같은 침묵에 차갑게 불타고 있었다.

    어느새 그녀는 구두를 신고 있었고, 마치 유리 구두가 제 주인을 찾은 듯 꼭 맞았다.

     

    세월이 지나고 모든 왕국이 허물어졌다. 구두가 있던 탑도 비록 여기저기 훼손이 되어 겨우 높이만 유지하고 있다. 한쪽에는 왕비가 떠나며 받쳐주었던 짙은 녹색의 쿠션 위로 구두 한 켤레가 놓여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것이 구두인지는 짐작할 수 없다. 여기저기서 날아온 씨앗들과 먼지, 또는 온갖 것으로 인하여 구두가 있던 탑은 자연으로 울창해져 있었다. 날들과 달들이 들고나는 이곳에서 구두는 영원한 원시의 꿈에 빠져있다. 더 이상 구두는 구두이지 않아도 되었다. (fin)


     

      나는 얼마 전에 새로 구입해 볼이 비좁은 구두에 두 발을 구겨넣었다.’ p.18

      이 이야기는 이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짧은 문장이지만 소설 속 모든 현상이 이곳에 담겨 있었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규격화이다. 규격화가 가져다준 혜택에는 수없이 많은 희생이 요구된다. 누군가는 비좁은 구두에 발을 구겨 넣어야 하고, 구두는 쑤셔 넣어지는 발에 의해 빠듯함을 견뎌야 한다. 이것엔 일방적 수용이 작용한다. 그리고 투명한 억압도 존재한다. 견디는 자는 압력에 비집고 나오는 자에게 참고 버티라 종용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순수한 자발적 의지에 의하지 않는다. 잠시의 생존을 위해 자유를 포기한 복종에 의한다. 꿈에서 배어났던 폭력의 상흔 · 합리적 탐욕이 허용하는 암묵적 착취 · 관계망에서 거절된 사회적 격리, 영혜는 결국 식이 食餌에 대한 자유마저 억압받는다.

      외부 세계의 틀이 헐거워질 때, 그 원인이 무엇이듯, 내적으로 향하던 압력은 밖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물리적일 수도 있고 정신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어느 날 영혜는 어떤 꿈을 꾸기 시작하며 변신을 시작한다. 처음엔 채식을 고집하였고 나중엔 자연 상태로 회귀하려 한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그녀는 현상적 가치로서 인간 사회에서 강요받고, 재단 당하며, 소비되고, 거절 받게 된다. 언니 인혜 만이 그 투명한 구조를 침묵 속에서 바라보지만, 그녀에겐 자신이 속할 수밖에 없는 보통의 세상이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이 세 명의 관점을 통해 바라본 영혜를 나의 시점을 얹어 매우 서툴고 부족하지만, 이야기로 풀어 보았다. 이 안에는 분명 나의 편견과 선입견이 개입되어 있을 테지만, 최대한 각 인물의 입장에서 사건을 전개해 나가려 노력했다. 이 소설이 주는 영감은 계속해서 얼굴을 바꾸며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마치 살아있다는 듯이 소리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의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은 어렵겠다고 느꼈기에 또 다른 이야기로서 이 순환을 이어보았다. 이만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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