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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맹목적 인간인가?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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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정재윤
    댓글 댓글 3건   조회Hit 6,942회   작성일Date 20-12-20 20:25

    본문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인간에게 핍박받던 동물들이 혁명을 일으켜 자유를 얻었지만, 지배층이 된 소수의 돼지들이 권력의 영속을 위해 다른 동물들을 노예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동물들을 향한 인간의 만행에 분노하여 혁명을 일으켰지만, 그토록 혐오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돼지들의 행태는 온갖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다. 돼지들의 선동과 거짓에 번번이 속으며 점점 노예화되는 피지배 동물들 또한 그 어리석음에 실소를 금치 못한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쓰인 동물농장은 당시 스탈린이 집권하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를 신랄히 비판하는 우화소설이다. 하지만 소설에서 그린 권력층의 탐욕과 교묘한 협잡, 대중의 우매함은 오늘날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국가와 기업, 사적 공적으로 이루어진 조직, 개인과 개인에 이르기까지 지배와 피지배는 문명에서의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에서 다양한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은, 강렬한 쾌락을 내포한 권력의 달콤함에 심취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따라서 모든 권력층은 권력의 쟁취, 강화, 지속을 위해 피지배자를 다양한 방법으로 길들이며 노예화한다. 우리는 이 소설에서 권력을 가진 인간이 스스로를 신격화하며 다른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과정을 낱낱이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무지한 대중이 권력욕으로 들끓는 지배층에게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먹잇감으로 내주고 있는지를 똑똑히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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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물농장은 현재 진행형 >

      메이너 농장의 동물들은 그들 중 가장 똑똑한 돼지들을 위시하여 농장주 존즈를 쫓아내고 혁명에 성공했다. 돼지들은 자연스레 우두머리에 올랐고, 그중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의 돼지가 권력투쟁에 승리하여 동물들을 지배하게 되었다. 애당초 혁명은 모든 동물들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념으로 싹 틔워졌다. 하지만, 권력을 잡은 소수의 돼지들은 다른 동물들의 노동으로 생산되는 부의 달콤함에 심취했다. 나폴레옹 무리들은 좀 더 효율적인 착취를 위해 인간들의 운영 시스템을 다시 하나씩 꺼내 들었다. 그렇게 너무나도 자명한 혁명의 배반을 감추기 위해, 갖가지 술수를 동원하여 동물들을 현혹했다. 지배된 동물들은 너무도 무지했다. 그들은 혁명의 이념으로 덧칠된 나폴레옹의 선동에 놀아났다. 자신의 일생과 피와 살을 일부 돼지들의 배를 불리는데 바친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런 기형적, 비상식적 권력관계는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우리 사회의 경우 복잡 미묘한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특정 콤플렉스와 트라우마, 관념에 갇힌 대중의 심리를 이용하여 권력을 쟁취, 유지하려는 세력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오늘날에도 나폴레옹과 같은 수법을 통해 대중을 기만하고, 그 맹목과 무지를 자양분 삼아 지위와 세력을 유지한다. 나폴레옹 무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대중을 선동하고 기만했을까? 대중은 어떠한 이유로 독재자인 나폴레옹을 맹목적으로 지지했을까? 이 질문을 통해 인간의 탐욕과 무지 그리고 우리 사회의 모순된 권력관계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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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재의 통치술 '분노와 공포' >

      공포는 강력하다. 공포에 질린 사람은 판단력이 저하되고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다. 공포는 인간의 육체와 이성을 무력화한다. 하여, 공포에 지배될 경우 공포의 주체에 종속되거나 혹은 공포로부터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존재에게 의존하게 된다. 공포에 지배된 인간은 스스로를 지킬 수 없기에, 더 큰 힘에 의존하여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포의 속성이 내재된 인간의 약한 고리를 이용하여 부와 권력, 쾌락을 얻는 계층, 집단, 개인이 존재한다. 이들은 어떠한 절대적 공포로부터 지배된 자들을 수단 삼아 사리사욕을 채운다. 그 전제조건은, 절대 악과 절대 선의 이분법적인 구도를 만드는 것이다. 역사적, 종교적, 신화적 사건들에서 생겨난 콤플렉스, 트라우마, 두려움을 통해 빨갱이, 사탄, 지옥, 귀신과 같은 절대 악을 상정한다. 그리고 절대 악을 끊임없이 상기하여 공포를 일으키고 그에 맞서는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오직 자신들만이 공포의 대상으로부터 구원하거나, 지켜줄 수 있다는 세뇌를 통해 절대 선으로 자리매김한다. 절대 선을 가장한 위선자들이 공포에 지배된 자를 먹이 삼아 자신의 배를 불려 가는 방식이다. 악마적 이분법은 인간을 공포의 늪에 빠지게 하는 아주 효율적인 수단이 된다.

      동물농장의 나폴레옹 정권 또한 이와 같다. 인간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동물들은 혁명의 이념을 만든다.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 하지만 내부의 단합과 결속을 위해 만든 단순한 이분법의 이념은 점차 나폴레옹의 교묘한 통치수단으로 이용됐다. 농장의 동물들은 표면적으로는 인간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실상은 농장주 존즈가 지배하던 시절보다 고된 노동과 착취에 시달렸다. 나폴레옹은 좀 더 효율적인 생산을 위해 인간보다 더 지독하게 동물들을 이용했다. 그렇지만 누구도 나폴레옹 정권에 반기를 들지 않았다. 나폴레옹의 선동가는 자신들이 아니면, 인간이라는 더 끔찍한 공포가 재림하게 될 것이라는 공포를 끊임없이 상기하고 주입했다. 동물들은 절대 악인 존즈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폴레옹을 절대 선으로 내재하였다. 공포는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나폴레옹은 체제의 결속을 유지하기 위해 또 하나의 절대 악을 심어놓는다. 권력투쟁에서 자신의 정적이었던 스노볼을 이용한 것이다. 스노볼을 통해서는 공포와 더불어 분노를 조장한다. 분노 또한 극도의 흥분상태로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강력한 감정이다. 나폴레옹은 자신들의 부정함이 발각되거나, 체제를 뒤흔드는 사건들이 발생했을 때 그 원흉이 스노볼이라는 거짓을 퍼뜨린다. 일찍이 권력투쟁에 패하여 쫓겨나 생사도 알 수 없는 스노볼은, 어느새 동물농장을 위협하는 절대 악의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 나폴레옹은 체제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스노볼과 내통한 자들을 처단하는 공포정치를 강화한다. 한편으로는 동물들의 분노를 스노볼로 향하게 하여, 혁명을 배반해 가는 자신들의 부정함을 뒤덮는 연막으로 사용하였다. 나폴레옹 정권의 파렴치한 실상을 드러내는 사건들이 교묘한 협잡을 통해 오히려 체제를 더욱 결속하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동물들의 공포와 분노가 심화될수록 체제는 굳건해지고 나폴레옹의 위상 또한 동지에서 지도자로 그리고 신과 같은 절대자로 격상되었다. 지도층 돼지 무리들은 자신들이 절대 악으로 규정했던 인간의 형상으로 어느새 탈바꿈해 있었다. 인간과 똑같은 행동과 생활방식을 가졌으며, 그들과 동등한 거래의 파트너가 됐다. 그 배경에는 수많은 동물들의 피와 살을 바쳐 쌓아 올린 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대중의 이성을 무력화한 나폴레옹의 분노와 공포의 통치술은 그들의 모든 배반과 부정, 모순을 가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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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지와 무기력'의 맹목적 인간 >

      분노와 공포의 통치는 나폴레옹의 선동가 스퀼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스퀼러는 가짜 뉴스, 마타도어, 거짓 통계를 이용하여 대중을 정권의 의도대로 철저히 속였다. 시끄러운 양 떼를 훈련시켜 어용언론과 같은 스피커로 활용했고 동물들의 반발 조짐이 보이면 즉시 양 떼를 투입했다. 양 떼는 정권의 부정을 뒤덮는 혁명의 구호를 어안이 벙벙하도록 외쳐댔다. 어리둥절해진 여론은 언제나 금세 잦아들었다. 혁명을 배반하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동물들은 자신의 피로 일궈낸 동물농장이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무지한 동물들은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나폴레옹 정권의 부정을 바라보기만 할 뿐. 분개해야 할 사안에 대한 생각을 멈춰버린다. 또한 격한 노동에 시달리는 동물들은 자신들의 노동에 함몰되어 있었다. 생각하는 일은 지도층 돼지들의 몫이라며 자신들은 오로지 돼지들의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맹목과 무기력에 빠져버렸다. 대중의 무지와 무기력이 맹목을 만들어 나폴레옹 정권의 타락을 방조하게 한 것이다.

      우리 사회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문명은 계속 진보하고 사회는 점점 고도화, 복잡다단화 되어가고 있다. 사회 지배층과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권력을 수성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가짜 뉴스를 만들고 복잡한 제도 뒤에 숨고 그들끼리 견고한 유착관계를 형성해 서민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치밀함으로 자신들의 이권을 설계한다. 표면적으로는 누구나 선에 서있고 정의를 말하며, 정당성을 내세운다. 또한 내가 아닌 당신을 위하는 것임을 속삭인다. 그들이 이런 부지런함으로 세상을 독식할 때, 우리 또한 동물농장과 같이 무지와 무기력, 맹목적 믿음으로 그들의 독주를 방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인지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에 어떤 생각을 깊게 하는 것을 싫어하는 '인지적 구두쇠'이다. 인간이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모든 정보를 탐색하고 수집하고 추론하고 결정하는 과정들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생각하고 판단하는 데 있어 과도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 대다수 서민 계급은 과도한 경쟁의 스트레스와 노동의 피로에 갇혀버렸다. 노동 이외의 삶은 오직 즐거움만을 추구하며 쾌락을 쫓거나 모든 것을 귀찮게 여기는 무기력으로 빠져든다. 피할 수 없는 인지적 구두쇠로의 조건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최소한 자신이 가진 권리를 올바르게 쓸 수 있도록 정확한 판단을 해야 한다. 모든 맹목적인 것을 환기해야 한다. 이념의 맹목. 진영의 맹목. 신앙의 맹목. 진리의 맹목. 인간에 대한 맹목까지. 모든 맹목은 결국 스스로를 노예로 만드는 것이며, 맹목의 대상에게 자신의 삶을 마음껏 유린할 수 있도록 내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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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있는 자 >

      동물농장이 그랬듯이 역사적으로 거의 모든 혁명은 실패로 돌아갔다. 혁명정권은 지속되어도 혁명의 이념까지 지속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혁명의 실패 속에서도 피지배자들은 지배자들의 억압과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전진해왔다. 우리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촛불 혁명에 이르기까지 한 서린 피와 뼈아픈 실패 속에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혁명의 급진적인 원리상 모든 혁명은 민중의 희생과 피를 부른다. 소수의 깨어있는 자들이 다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 혁명의 밑거름으로 희생되는 것이다. 하여, 집단지성의 최정점인 촛불 혁명을 평화적으로 치러냈듯이 이제 더 이상 민중의 희생과 피를 부르는 혁명은 멈추어야 한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깨어있어 철저히 자신만의 이익에 복무하여 사회를 어지럽히는 기만자들을 감시, 비판하고 자신의 권리를 이용해 엄중히 판결하는 것. 이것이 혁명의 굴레를 벗어나 누구의 희생도 없이 평화적인 권력관계를 유지해 나아가는 길이다. 베일에 가려진 실상을 명료하게 응시하기 위해선 깨어있어야 한다. 인지적 구두쇠의 속성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깨어있는 자만이 스스로를 지키고 정의와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당신은 오늘도 깨어있기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 무언가를 절대 선이나 절대 악으로 내재하여 맹목에 빠져있는가? 모든 익숙한 것에 매몰되어 인지적 구두쇠의 무력한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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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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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희님의 댓글

    김윤희 작성일 Date

    깨어 있기 위해 ,나는 무엇을 했던가?
    이 질문을 잊지 않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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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윤님의 댓글의 댓글

    정재윤 작성일 Date

    깊은 공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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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차남님의 댓글

    오차남 작성일 Date

    과거의 풍자소설이지만 어쩌면 이렇게 현재의 인간세계를 대변하는 것인지.. 결국 과거나 지금이나 인간세계의 실상은 겉옷만 바뀌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맹목적인 삶과 걸리버여행기의 종속적 삶은 어쩌면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맹목적이고 종속적인 삶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인간의 속성.
    재윤님의 동물농장 서평도 역시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평소 독서량이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