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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문장 3기] 인생하기지리호/人生何其支離乎 (공터에서 - 김훈)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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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정재윤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721회   작성일Date 25-02-09 19:11

    본문

    인생하기지리호(人生何其支離乎)

    <인생은 왜 이리도 지리한가>

     

    정재윤

     

    * 지리하다 : 서로 갈라지고 흩어져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 시절, 인생은 왜 이리도 지리했는가>

    경술국치 일제 강점 6.25 전쟁 이승만 독재, 4.19 혁명 5.16 군사쿠데타와 박정희, 전두환에 이르는 엄혹한 군부독재까지. 우리 근현대사는 그것을 살아내는 민중에겐 하염없는 인고의 세월이었다. 우리는 황량한 공터에 내던져져 '아무 데도 기댈 곳 없이 제 구멍을 제가 파고 스스로를 핥아야 하는 야생동물'과 같았다. 전쟁, 파시즘, 독재, 권위주의, 폭력, 가난, 무지, 질병으로부터 인간 존엄이 상실된 시대.

      '소유와 결핍,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시간 속에 축적되고 공간 속으로 확산'되며 이 시절을 지배했다. 식민 통치에 유린당하고, 전쟁에서 죽거나 죽여야 했으며, 피란길에 오른 가족과 생이별하고, 가축우리에서 낳은 피란민 아이는 저절로 구두닦이가 되었다. 민중의 삶은 무겁고 고단했다. 우리는 막막한 세상에서 몸 비빌 수 있는 작은 거점 하나 만들고자 몸부림쳤다. 생활을 물적토대 위에 세우기 위해 밤낮없이 노동에 헌신했다. 경제 발전이 모든 가치에 우선했고 인권은 경시되었다. 세상은 삭막했고 옴짝달싹할 수 없는 삶은 지리했다.

      그렇게 먹고살기가 조금씩 나아지면서 민중은 차츰 인간 존엄과 자유, 평등을 위해 민주주의를 외치기 시작했다. 하여, 5.18 민주화 운동, 6월 항쟁을 통해 군부독재로부터 권력을 빼앗고 민주주의를 실현했다. 그 결과 전쟁에서 평화로, 폭력에서 비폭력으로, 독재에서 민중으로, 권위에서 민주로, 가난에서 풍요로, 질병에서 위생으로, 무지에서 지성으로 해방 후 불과 50~60년 만에 우리는 한강의 기적이라 일컫는 천지개벽을 이뤘다. 아울러 시대에 억눌려 공터를 배회하던 지리함도 점점 자취를 감췄다.


    <오늘날, 인생은 왜 이리도 지리한가>

    우리는 피땀 어린 노력으로 황량한 공터에 터를 닦고, 신산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견고한 물적 토대를 쌓았다. 그곳에서 민주주의가 꽃피고, 산업이 활황하고, 문화가 창발하여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부와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 우리는 과연 지리함에서 벗어났는가.

    내 삶을 지리하게 하는 건 무엇인가.


    불안과 허무에 짓눌린 마음.

    지금 우리 삶을 지리하게 하는 문제적 요소다.


      오늘날, 평화롭고 안정적인 사회를 토대로 부가 쌓이고 지적 능력이 향상되며 개개인은 힘을 갖게 됐다. 기회가 창출되고 움직임의 가능성이 많아지며 덩달아 우리의 의도도 확장되었다. 그 의도는 현재와 미래를 온전히 통제하려는 것이다. 내 삶을 내가 통제할 수 있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의도와 결과 사이의 괴리를 용납지 않는 강박. 이것이 현대인의 가장 큰 마음의 병, 불안이다. 불안은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가 만들어낸 망상이다. 그 학교를 가면 행복해질 거야, 그 직장을 다니면 행복해질 거야, 그 연봉을 받으면 행복해질 거야, 그런 이성을 만나면 행복해질 거야, 그런 집에 살면 행복해질 거야. 지금을 살지 못하게 하는 주입된 허상들. 이러한 사회에서는 누구나 부와 성공을 욕망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생을 바친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생존 불안과 존중 불안을 떠안은 채.

      불안의 끝은 소수의 해피엔딩과 다수의 허무함으로 귀결한다.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떠한 삶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사회가 주입한 대로 부모가 원하는 대로 일생을 바치는 사람들. 학업, 취업, 결혼, 육아, 의식주의 표상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모두가 맹목적인 경쟁에 뛰어든다. 상대적 우위에 서고자 삶을 끝없이 주변과 비교하고,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열등감과 우월감을 오간다. 그리던 삶에 도달하지 못하면 우울과 원망을, 그리던 삶을 연출해도 기쁨은 잠시뿐. 어느 순간 텅 빈 자신을 발견할 때, 존재는 결국 허무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희망에 가득 찼던 마음은 어느새 황량한 공터로 변해 불안과 허무라는 지리함으로 우리를 끌어내린다.


    <균열>

    피란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필연적인 지리함을 벗어나기 위해 그릇된 욕망으로 살아가는 마장세. 벗어날 의욕도 꺾인 채 평생을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지리한 인생을 살아가는 마차세.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 , 소시민의 이야기다. 과거가 저항할 수 없는 시대 상황으로 인한 인생의 지리함이었다면, 오늘날의 지리함은 내 안에서 만들어내는 마음의 병이다. 물론 교육시스템과 미디어 등 온갖 이데올로기에 세뇌되는 환경적 영향이 작용하지만, 과거와 다른 것은 지금의 우리는 다른 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근현대사의 지리함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중력장이라면, 현재의 지리함은 각성, 결단, 실행이 있다면 결코 벗어나지 못할 늪은 아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을 따라갈 수 없어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는 존재, 흙수저로 태어나 필연적인 삶의 지리함에 괴로워하는 존재는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세습·능력주의의 길을 순순히 따라가다 불안과 허무의 늪에 빠질 것인가. 그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며 미세한 균열이라도 일으킬 것인가. 다른 길을 원한다면 이제 비교 대상은 타인이 아닌 어제의 나, 지난날의 내가 되어야 한다. 남을 이기는 경쟁이 아닌 자신을 넘어서는 성장을 하는 것. 성장은 위를 향하는 수직 운동이다. 나를 가두는 유리천장을 뚫고 나아갈 힘은 성장에서 비롯된다. 꾸준한 성장으로 두텁게 쌓은 어떠한 실력이 곧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힘이다.


    세상의 기준에 턱없이 부족한 나는 황량한 공터에서 얼마나 배회했나. 그 공터에서 나의 토대를 세우기 위해 무엇을 했나.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가. 그럼에도 삶은 결코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저 잘되리란 희망의 씨앗을 품고 부단한 성장 속에 묵묵히 살아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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