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장 2기] 나는 걷는다(열하일기-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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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다
연암 박지원은 1780년 5월 한양에서 출발하여, 그해 10월 돌아오는 내내 길 위에 있었다. 일기의 첫 문장은 거의 지나온 여정과 몇 리를 갔는지로 시작했다. 건륭 황제의 만수절 축하 사절로 가는 것이기에 기일에 맞춰야 했기 때문이었지만 평생을 정착하지 못했던 그의 인생과도 같았기 때문에 매일 매일 온 길을 적지 않았을까. 길 위에서 연암은 수많은 사람과 사물을 만났다. 어느 하나 허투루 지나치는 법 없이 세심히 관찰하고 사유했고 기록했다. 청 사회와 비교하며 조선 사회의 문제점을 고민하고 조선 혁신의 아이디어를 토해내었다. 병자호란을 통해서 호되게 당한 조선이었지만 되놈의 것이라면 모두 업신여기며 북벌론, 명분론에 빠져있는 조선의 사람들을 연암은 통렬히 비웃으며 삼류 선비를 자처했다. 열하로 가는 길 위에서 살길을 찾으려는 연암의 노력이 『열하일기』에 담겨있다.
관찰
연암은 힘들고 고단한 길 위에서 끊임없이 관찰했다. 사절단이 평시 이용했던 연경으로 가는 길과 열하로 가는 길에서 청의 다양한 곳을 볼 수 있었다. 가는 곳마다 역사와 문화를 살피고 자연경관을 자세히 묘사했다. 먼저 다녀온 동무들의 말을 참고하고 다양한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세심하고 깊게 관찰했다. 길을 시작하는 변방의 도시에서부터 연암은 화려하면서도 정교한 오량집, 벽돌로 쌓은 담, 사람용 수레와 화물용 수레, 그림을 그려놓은 도자기 등을 보며 놀라워했다. 청 변방의 도시가 이럴진대, 청의 중심은 얼마나 더 발전했을까를 생각한 것이었다. 성경, 요양에 도착한 후 연암은 “주변의 진열 상태를 둘러보니 모든 것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다. 한 가지도 구차스럽게 대충 해놓은 법이 없고, 물건 하나도 너저분하게 늘어놓은 것이 없다. 심지어 소 외양간이나 돼지 우리까지 모두 법도 있게 깔끔하다. 땔감 쌓아 놓은 것이나 두엄 더미까지도 그림처럼 곱다. 아! 이렇게 한 뒤에야 비로소 이용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용’이 있고 난 뒤에야 후생이 될 것이고, 후생이 된 뒤에야 정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실질적인 일에 나아가 옳음을 구한다는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백성의 일상의 삶을 변화시키는 ‘이용’, ‘후생’의 지혜가 바로 정덕에 이를 수 있음을 세심히 관찰했다. 특히, 천하에 쓸모없는 물건처럼 보이는 깨진 기와 조각과 똥 덩어리를 하나 버리지 않고 고루 활용해 고운 빛깔을 내고, 농사 거름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중국의 제일 장관은 저 기와 조각에 있고, 저 똥덩어리에 있다.”라고 외쳤다. 작은 것 하나하나 정교하게 활용하는 것이 바로 청의 저력이었다.
사유
연암은 수역 홍명복에게 물었다. “자네, 길(道)을 아는가?” 혼란스러워하는 홍명복에게 연암은 말했다. “이 강은 바로 저들과 우리 사이에 경계를 만드는 곳일세. 언덕이 아니면 곧 물이란 말이지. (중략) 길이란 다른 데서 찾을 게 아니라 바로 이 사이에 있는 것이지”라고 알 듯 말 듯 한 이야기를 했다. 도덕경 2장을 보면 “유와 무는 서로 살게 해 주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이뤄주며, 길고 짧음은 서로 비교하고, 높음과 낮음은 서로 기울며, 음과 성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르는, 이것이 세계의 항상 그러한 모습이다.”(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최진석)라고 나와 있다. 도(道)는 세계가 반대되는 두 대립하는 항들이 서로를 살게 해 준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존재 근거를 나누어 가지면서 꼬여 있음을 아는 것이다. 세계가 서로 관계 속에서 얽혀 있으니 길이란 관계 사이에 있는 것이다. 언덕과 물 사이에 길이 있는 것이고 길은 언덕과 물을 공유하고 있다. 언덕이기도 하고 물이기도 한 것이 바로 길이다. 삶을 산다는 것은 언덕을 넘는 것이며, 물을 건너는 것이다. 먼저 넘거나 건넌 사람들이 만든 길이 있고, 내가 새롭게 넘거나 건너는 길이 있다. 어떤 선택을 할지는 바로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먼저 간 길은 넓고 쉽겠지만, 어려워도 자신이 만들어 가는 길이 바로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연암은 1780년 이렇다 할 것 이룬 것 없이 우울한 40대를 보내던 차에 기적처럼 열하로 가는 기회를 잡았다. 의주에서 청으로 넘어가는 압록강에서 강과 저 멀리 보이는 언덕을 바라보며 스스로 질문을 했을 것이다. “길을 아는가?” 혼란에 빠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언덕과 물 사이에 길이 있다”라는 탁월한 답을 한 것이다.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의 자세이며, 길 위에서 길을 찾는 사람의 모습이다.
기록
청의 발전된 모습을 보며 연암은 조선의 현실을 반성하고 개혁의 필요를 역설했다. 조선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실용적인 학문과 과학기술을 도입해야 함을 주장했다. 무엇보다 외국과의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믿었다. 연암이 열하에 도착했을 때 몽골, 위구르, 티베트 등 다양한 청 주변의 이민족들과 마주했고 코끼리와 낙타 같은 기이한 동물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신기한 서양 문물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교류하고 포용하며 실용적인 학문과 과학기술을 활용했던 청의 힘이고, 청나라가 중국 최대의 영토를 차지하게 된 이유였다. 함께한 정복에게 연암은 “네가 만일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겠느냐?”라고 물었다. 이에 정복은 “중국은 되놈 나라잖아요. 소인은 싫습니다요.” 아 맙소사! 아직도 명중심의 중화사상에 사로잡혀 실용적 지혜로 중국을 장악한 청의 실력을 보지 않고 되놈이라고 무시했다. 만약 조선 사람들이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 정말 오랑캐를 물리치려 했다면 그토록 무시해마지않는 청의 전해오는 밭 갈기, 누에치기, 그릇 굽기, 풀무 불기부터 공업, 사업 등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다 배워야만 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 백성들이 몽둥이를 만들어 두었다가 저들의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무리기를 두들길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연암은 조선의 모습을 개탄하며 조선이 살아날 방법을 고민했다. 바로 조선을 바꾸어 성리학의 공리공담에 빠진 조선을 살리려고 한 것이었다. 이것만이 조선이 살길이었다. 그렇기에 열하로 가는 길 내내 연암은 조선의 살길을 고민했고 처절하게 기록한 것이었다.
연암은 천하를 널리 구경하고자 만 리 길을 마다 하지 않고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어가며 열하로 향했다. 열하로 가는 길 위에서 끊임없이 관찰하고 사유하며 기록했다. 해박한 인문학적, 기술적 지식을 바탕으로 격의 없이 여러 인물과 만나고 대화하며 청의 다양한 모습을 파악하고 조선과 자신의 길을 고민했다. 당대 조선의 천재 지식인이었지만 현실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던 비주류 지식인의 피 끓는 마음으로 조선과 자신 길을 찾으려 했던 연암을 보며, 오늘을 걷고 있는 나는 어떤 길을 만들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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