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장 2기] 반성 이전의 반성(2) (징비록 - 류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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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속적 주체의 멸망>
강화 협상이 결렬되자 조정은 또다시 명나라에 출병을 간청한다. 하지만 국경으로부터 전선을 멀리하려는 목표를 달성했기에 더 이상 싸우려 하지 않는다. 새로 부임한 명나라 경락 고양겸은 조선에 공문을 보낸다. "황제께서 크게 노하여 군대를 일으켜... 왜군이 마침내 한양에서 달아났고... 2000여 리의 영토를 되찾게 되었다. 이때 소비된 명나라 금고의 돈은 헤아릴 수 없으며, 죽은 군사와 말도 적지 않다. 우리 조정이 속국을 대우한 은의가 이 정도이니, 황제의 망극한 은혜 또한 이미 과분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너희 나라는 식량이 다 떨어져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고 있는데 또다시 무엇을 믿고 군대를 요청하는가?... 또 왜의 책봉과 봉공을 거절한다면 왜놈은 반드시 너희 나라에 화를 입히고 너희 나라는 망하게 될 것이다. 어째서 스스로를 위한 계책을 속히 세우지 않는가?" 참으로 굴욕적 비판이다. 조선은 왜의 침략 야욕과 자국의 위협을 사전에 방비하려는 명의 셈법으로 나라 운명이 좌우되고 있었다. 우리 운명을 결정짓는 강화 협상에 당사자는 빠졌다. 타국에 운명을 맡긴 채, 왜에게는 치욕과 명에게는 굴욕을 당하는 꼴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승리는 이순신과 의병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이는 조정의 현명한 지휘로 잘 방비했다면, 우리 힘으로 얼마든지 왜적을 물리칠 수 있는 전쟁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선조는 명을 찬탄하기 바빴다. 도읍과 백성을 버리고 도망친 과오를 덮고 자신을 높이기 위해선, 애타게 구원을 요청한 명나라의 공을 높여야 했다. 승리의 공을 논하는 논공행상(論功行賞)에서는 허망한 결론이 내려졌다. 피란길에 왕조를 호위한 호성공신이, 목숨 바쳐 싸운 선무공신 이순신, 권율 장군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분연히 일어나 왜적을 물리친 의병의 공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선조는 이순신과 의병의 승전을 보며 곤궁해진 자신과 상대적 비교에 빠진다. 이는 왜란 후 철저한 반성은커녕, 왕의 책임회피와 오히려 자신의 공을 높이려는 과오를 저지르게 한다. 정치적 목적으로 내부의 공을 외면한 채, 종속 대상에게 공을 돌림으로써 더 깊은 종속에 빠진 것이다. 이것이 왜란 후 또다시 조선을 파국으로 몰고 간 재조지은(再造之恩)의 부채의식이다.
철저한 반성을 외면한 존재는 과오를 되풀이한다. 재조지은의 부채의식에 갇힌 조선은 인조반정 후 친명배금(親明排金)을 일관하다 또다시 청나라에 치욕을 당한다. 왜란 후 불과 40여 년 만의 일이었다. 종속적 주체는 정세 변화에 유연히 대처하지 못한다. 종속 대상만을 추종하여 경직됐기 때문이다. 청나라에 굴복한 조선은 명에서 청으로 종속을 강제로 옮긴다. 비독립적으로 형성된 풍요와 번영은 양날의 검이다. 자신보다 강한 대상에 기대어 손쉽게 안정을 얻지만, 시련이 닥치면 운명을 의지대로 통제할 수 없는 비극을 맞는다. 종속적 주체는 종속 대상과 필연적으로 운명의 궤를 같이한다. 청나라에 복속한 조선은 200년 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전하자, 그 또한 경술국치(國權被奪)로 멸망한다.
<반성 이전의 반성>
왜란 후 왕이 허망한 논공행상을 벌이는 반면, 류성룡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란을 복기한다. 그는 나라의 재상으로 군무(軍務)를 담당했다. 왜란을 사전에 감지하여 대책을 세우고 이순신을 발탁하여 침략을 막는데 기여한다. 또한, 온갖 굴욕을 감내하며 명군을 전장에 참여토록 힘썼다. 조정의 그 누구보다 능동적으로 전란에서 나라를 구하고자 투신했다. 과오를 뼈저리게 겪은 능동적 주체에게, 철저한 반성은 과거의 재현을 막기 위한 당연한 수순이다. 그리하여 류성룡은 "지난 일을 경계하여 앞으로 후환이 생기지 않도록 대비하기 위해"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선조와 류성룡은 같은 일을 겪고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과오를 논한 것이다. 과연 무엇이 이 둘의 차이를 만들었을까.
종속적 주체는 자신을 철저히 해부할 수 없다. 철저한 반성 없이도 종속 대상이 건재하는 한 그럭저럭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종속 대상을 향한 의존은 존재의 근간에 닿는 반성을 막아선다. 결국, 과오를 저지른 자신을 뛰어넘지 못하고 왜곡된 반성으로 또다시 과오의 굴레에 빠진다. 능동적 주체는 과오로부터 자신을 철저히 해부한다. 무엇도 의지하지 않기에 다음이란 없다. 샅샅이 복기하고 극복하려는 발버둥 속에 이전의 자신을 뛰어넘는다. 철저한 반성은 오직 능동적 주체로 존재할 때 가능하다. 만약 어떠한 과오로 철저히 무너지는 시련을 겪는다면, 존재는 반성 이전의 반성까지 자신을 해체해야 한다. 존재 형식을 뒤집는 존재의 근간을 뒤엎는 성찰이 아니면, 그 반성은 피상만을 훑는 자기 위안으로 끝날 것이다. 하여, 우리는 과오로부터 철저한 반성에 앞서 질문해야 한다. 존재의 방향이 어디를 향해 있는가? 능동적 주체로 온전히 나를 향해 있는가? 종속적 주체로 무언가를 향해 있는가? 철저한 반성은 종속에 갇힌 존재에겐 허락되지 않는, 뼈를 깎는 고통이자 존재를 변환시키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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