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로그인
  • 참여
  • 책 읽고 건너가기
  • 참여

    책 읽고 건너가기



    새말새몸짓 책 읽고 건너가기의 참여자 게시판입니다.

    매월 선정된 책을 읽고 나누고 싶은 글귀, 독후감, 그림 등을 올려주세요.

    , 글은 300이내로 올려주세요



    [새문장 2기] 오늘은 실컷 취 取하고 내일은 바로 행 行할 것이다.(구운몽_김만중)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송선형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874회   작성일Date 24-02-14 22:06

    본문

    구 운 몽 _ 오늘은 실컷 취 하고 내일은 바로 행 할 것이다.

     

    서포 西浦_ 김만중 金萬重

     

    우리 아홉 사람의 뜻이 이와 같으니 즐거운 일이라. 내일 바로 행할 것이니 오늘은 여러 낭자와 같이 실컷 취하리라.” [p.248 구운몽_민음사]

     

    구운몽을 처음 읽으며 하나둘 등장하는 완벽한 선남선녀에게 지쳐갈 때쯤 문득 이 소설의 작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중간에 책은 덮어버리고, 구운몽의 배경이 되는 당나라 시대상도 알아볼 겸 함께 김만중이란 사람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료를 얻다 보니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났다. 소유와 채봉이 만나려는 시점에서 구사량이라는 자가 난을 일으키는 사태가 벌어진다. 알아보니 그는 현재 실존했던 인물로 환관이며, 대리청정까지 했던 야심가였다. 순식간에 소설 속 배경이 나의 현실과도 연결이 되었다. 그렇게 되다 보니 이 이야기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역사적으로도 고증할 수 있는 사건이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김만중 님의 일대기를 보던 중 그의 출생과 기록에 남겨진 일화를 보다 그가 유배를 세 번이나 가게 되었을 만큼 소신 있는 발언을 참지 않는 곧은 성정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척박한 유배지에서 자신의 쌓아온 방대한 지식을 토대로 이토록 재미있는 이야기를 엮어내다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놀랍고 존경스럽다는 마음이 일었다.

    잠시 접어 밀어두었던 구운몽을 다시 펼치자, 책 속에서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는 듯하였고,

    그 바람에 향기가 나는 것도 같았다.

     

    규방에서 기방, 왕궁에서 용궁 그리고 변방의 여덟 낭자는 소유와 부부로서 연을 맺으면서

    서로 화합한다.

    팔선녀는 연화봉에선 그저 모두 흰 옷을 입은 아름다운 처자들로 연상되었지만, 양소유와 함께 표표탕탕 바람에 실려 도착한 인세에서는 각각 진채봉, 계섬월, 가춘운, 정경패, 적경홍, 이소화, 심요연, 백능파 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다. 모두 재무가 출중하였고, 인품 또한 아름다워 양소유란 한 명의 남편을 중심으로 인연을 맺게 되지만, 시기와 질투가 아닌 존중과 사랑으로 서로를 대하며, 후에는 신분과 출생을 넘어서며 돈독한 자매의 연을 맹세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설정에서 구운몽의 판타지가 정점을 찍는다고 생각한다. 조선을 넘어서, 부와 권력과 명예를 향한 표독했던 여인들의 간계와 술책은 여러 역사서에서 피바람을 불러왔음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구운몽에선 처와 첩들의 지혜로움과 평화로움으로 양소유는 대승상의 지위까지 오르며 오래도록 나라의 태평성대를 지켜보게 된다. 그 모습은 마치 잔칫상 위의 구절판처럼, 소유라는 밀전병을 중심으로 8명의 여인들이 자신들의 개성을 빛내면서도 서로를 밀쳐내지 않으며 품위와 품격을 높이는 모습이었다. 구절판은 또한 연화문의 도식과도 닮아있어 더욱더 그 모습이 연상 되었다. 작가가 이러한 여인상들을 그려낼 수 있었던 이유에는 일찍이 부군을 잃었음에도 두 아들을 훌륭히 가르치고 기르셨던 그의 어머니 윤 씨 부인에 대한 존경심도 있었을 것이다.

     

    성진은 용왕이 주는 석 잔의 술을 연거푸 마시고 팔선녀의 향기에 취하여,

    불자로서 깨서는 안 되는 금기를 깨고 소유라는 자로 환속하게 된다.

    구운몽을 읽는 도중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가 문득 떠올랐다. 소설 속 싯다르타는 스스로 소인배의 삶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카밀라라는 매춘부와 연을 맺으며 속세의 모든 향락을 누린다. 성진은 육관대사에 의해 양소유로 환생 하며 그가 잠시 품었던 대인배로서의 최상의 삶을 누린다. 하지만 그 둘은 그 삶 속에서 똑같이 지겨움을 느낀다. 전혀 다른 뱡향으로 흐른 여정이었지만 이르게 된 마음은 같았다. 반복되는 것에서 더이상 채울 수 없는 무엇을 느낀 그들은 현실에 이별을 고한다. 싯다르타는 처음에 왔던 것처럼 다시 밖을 향해 스스로 걸어서 나아가고, 소유는 길다면 길고 짧다는 짧은 일장춘몽에서 다시 육관 대사를 만나며 성진으로 깨어난다. 싯다르타는 잃어버린 것을 찾아 고요한 곳으로, 소유는 성진일 때 품었던 욕망이 비워진 곳으로 향한다.

    만약에 성진이 소유로 다시 태어나 고행과 역경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다면 어떠했을까?

    확실하다 여겨지는 것은 언젠가 소유는 그 삶에 역시 지겨움을 느꼈을 것이고, 때가 되어 어떻게든 다음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렇게 채우고 비우고 또 채우기 위해서 말이다.

     

    생각하며 궁리하다 알게 된다는 것

    책을 읽기 전부터 계속 가졌던 강박관념은 바로 어떤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이 책을 통해 지식을 쌓고 더 훌륭한 생각을 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다듬어 쓰기를 해야지 하는 근사한 욕망이 담긴.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꿈속에 시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알 것 같은 것을 알고 있다고 쓰고 싶은 마음은 결국 한계를 드러냈고, 어느 날 지겨움으로 환원되어 버렸다. 그래서 덜 익은 생각들을 적고 차라리 부끄러워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생각은 어떻게든 뻗어나가고 성숙하게 될 테니까. 성진은 팔선녀를 만나고 대장부로서의 삶을 떠올린다. 육관대사가 그 일을 귀신같이 알고 성진을 정말 그렇게 살도록 인간 세상으로 환생시키는 사건은 그의 금지된 욕망이 들통나 수치는 겪게 하였지만, 오히려 자신이 떠올려 본 삶을 직접 살아보며 얻은 깨달음으로 다시 승려로서의 뜻을 다잡게 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성진이자 소유가 겪는 사건들의 연관성을 연결해 보며 이것저것 생각하고 궁리하던 통에 의문이 하나 생겼다. 성진이 소유가 되었던 이유는 금기된 욕망을 품어서이고, 소유가 속세를 떠나려고 했었던 이유는 다만 인생의 부귀영화가 그저 일장춘몽임을 깨달았기때문이라고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속세에서 원하는 것을 다 이룬 소유는 역대 왕들이 누렸던 영토를 바라보며 세상만사 속 흥망성쇠가 덧없음을 이야기하며 이제는 속세를 떠나 불가에 귀의하여 이번엔 불생불멸 하는 도를 이루는 것을 누리겠다는 욕망을 표현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성진은 사내로서 입신양명하여 성공하는 삶을, 소유는 도를 깨달아 경지에 이른 신인으로서의 삶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면 결국은 양쪽 다 그렇게 하고 싶음이 추동하는 현상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애를 쓰고 기를 쓰고 사는 인생이든 유유자적 평화로운 인생이든 옳음과 그름, 좋음과 나쁨을 떠나 때가 되면 전환되는 스위치처럼 이쪽이 채워지면 자연스럽게 바라보게 되는 비워진 저쪽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깨달음이란 잠시 이는 수면 위 물결처럼 찰나 같아서 매 순간 모두 다른 얼굴인 것 같다.

    그 의미는 피어 있는 연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잠시 바라보는 마음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지. 깨달음은 번민과 번뇌가 사라지는 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가득 찬 무엇이 자신의 마음에 존재함을 자각하고 인정하고 수용하여 그것을 가만 내려두고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열리는 일종의 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서포 김만중님은 그의 유배지 남해에서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적어 내려갔을까? 이제 다시는 뵙지 못할지도 모를 어머니를 떠올리며 어떠한 심정으로 이 소설을 구상해 나갔을까? 한편으론 차가운 현실 속이었기 때문에 이처럼 아름다운 봄날의 꿈같은 이야기가 탄생했는지도 모르겠다. 적막한 방에서 촛불 하나에 의지하여 아버지를 양 처사로 어머니를 유 부인으로 자신을 양소유라는 인물로 상상하며 이야기를 펼쳐나갔던 것은 아닐지. 덕분에 구운몽이란 걸작을 만날 수도 있었지만, 그의 마지막 행보에서 비록 높은 신분에 박식, 유능하며 문장에다 곧은 품성과 효심을 지녔다 할지라도 어찌해 볼 수 없는 가혹한 현실의 벽이 있음도 느꼈다.

     

    고독 속에서도 풍류는 일어나고 아름다운 시는 고요한 백지 위에 그 발자국을 남긴다.

    그는 일생의 마지막 문턱에서도 문장으로 자신의 이상향을 꽃답게 피웠다.


     


    ede14feeca0cb806fef4724b7673d6bc_1707916105_9996.jpg

    연화문(평양 내리 호분, 고구려 7C)_자료출처/ 네이버 지식검색


    추천3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