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고 건너가기 - 인간으로의 완성, '자산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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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에 최고의 영화 >
내 생에 최고의 영화를 만났다. '자산어보', 이준익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는 신유박해(1801년)와 황사영 백서 사건(1801년)으로 인해 유배형이 내려진 정약전, 정약용 형제의 삶을 조명하며, 정약전이 유배지에서 편찬한 어류학서 '자산어보'의 저술 과정을 그려냈다. 흑백으로 그려진 이 영화는 여백의 미가 담긴 담백하고, 묵직한 수묵화와 같았다. 흑과 백의 정적인 컬러는 시각적 자극과 시선의 분산을 줄여 배우들의 연기에 온전히 몰입하게 만든다. 설경구(정약전), 류승룡(정약용)의 절제된 연기와 변요한(창대), 이정은(가거댁) 등 조연들의 맛깔난 사투리 연기는 이질감 없이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이 작품은 한 인간이 유배라는 비극적 사건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하는 과정을 통해 최악의 조건과 상황에서도 고귀한 삶을 살아내는 모습을 담아낸다. 그 속에는 주어진 환경과 깊숙이 뿌리 박혀 우리를 발목 잡는 관념, 관습을 뛰어넘어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삶의 철학과 비전이 있다.
< 절망의 심연에서 건너가기 >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세 형제는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국문을 당하고 결국 정약종은 처형된다. 남은 두 형제는 각각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배를 떠난다. 유배형은 원칙적으로 기한이 없는 종신형이다. 때문에 무기징역과 같은 매우 무거운 중형이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먼 타지에서 가족과 고향을 등진 체, 귀향의 기약도 없는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이다. 간혹 호사스런 유배 생활을 하는 이가 있었으나 이들 형제의 유배는 그야말로 절망의 심연이었을 것이다. 형제의 죽음과 천주교를 배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적의 집요한 음해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억울함까지. 정약용은 육지인 전라도 강진이 유배지였지만 정약전은 유배지로 가장 악명 높은 흑산도라는 외딴섬으로 향하게 됐다. 그러나 두 형제는 이와 같은 절망의 심연을 보통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낸다.
저지른 죄에 대한 마땅한 처벌도 아닌 억울한 누명으로 모든 것을 잃고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자의 앞날은 불을 보듯 뻔하다. 비통함으로 세상을 원망하다 절망의 늪을 헤어 나오지 못하고 화병과 술병으로 죽음을 맞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유배인의 말로가 그러했다. 극 중 정약전 또한 마찬가지였다. 흑산도로 유배된 약전은 날마다 술로 괴로움을 달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취기에 비틀거리다 실족하여 바다에 빠진다. 이를 목격한 창대가 그를 구하여 다행히 목숨을 부지한다. 죽음의 목전에서 돌아온 약전은 각성한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삶에 집중하기 위해 흑산도에서 이루어야 할 소명을 찾는다.
사대부 엘리트 출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당연히 수양을 쌓고 글을 쓰는 것! 그리하여 약전은 지식과 글로써 자신의 소명을 이루기 위해 정진하며 그 속에서 괴로움 잊고 자신을 잊으려 했다. 정약전은 16년간의 유배생활 동안 총 세 편의 저서를 남긴다. 백성을 질곡에 빠뜨린 소나무 벌목금지 정책을 논의한 송정사의(松政私議). 어상 문순득의 표해기행록 표해시말(漂海始末). 어류학서 자산어보(玆山魚譜)까지. 정약용 또한 같은 삶을 살았다. 유배지에 도착하여 기거할 곳도 없이 주막 한편에서 수년간을 지냈으나 정진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열의는 다산초당을 세웠고, 그곳에서 제자들과 학문을 닦으며 수많은 저술을 하였다. 정약용은 18년간의 유배생활 동안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약 5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의 제자에 따르면 정약용은 방대한 저술활동으로 복숭아 뼈가 세 번이나 구멍이 뚫리는 고통을 겪어야 했으며, 중풍에도 불구하고 정진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두 형제의 위대함은 절망의 심연 속에서도 건너가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건너가기의 방식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행위 중 하나인 수양을 쌓고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 결과 모든 것을 잃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빛나는 저서들을 펼쳐 냈다. 원망과 회한을 벗어던지고 유배지에서 조차 세상을 개혁하고 백성을 보우하려는 뜻을 품었던 두 형제. 먼 타향에서 화병에 객사하도록 떠밀린 자신들의 운명을 역사에 기록되며 후대에 평가될 고귀한 삶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변화하는 세계, 급변하는 운명에 흐름을 맞추지 못하는 자는 떠밀려오는 운명의 파도에 내동댕이쳐진다. 실패하고 패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자는 급작스런 운명의 파도를 주시하며 판단이나 결정을 그 흐름에 맞게 한다. 이들은 또 다른 생소한 운명을 자신의 방식대로 품어 최선의 것을 일구어낸다. 실학자로서 새로움을 주저하지 않으며 개혁적인 자세로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했던 정약전과 정약용. 세계를 대하는 그들의 지적인 태도와 행위가 심연으로 향하는 그들의 감정과 감각을 정련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처럼 절망 속에서의 끓임 없는 건너가가는 모든 새로움을 품어내는 담대한 가슴과 평생을 갈고닦은 두 형제의 지적인 태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 우정과 탐구의 원동력 >
자산 바다의 어족은 지극히 번성하다. 하지만 내가 이름을 아는 어족은 거의 없었다. 이것이 박물에 관심 있는 이들이 잘 살펴야 할 점이다. 그리하여 내가 섬사람들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아 어족을 짓고자 했으나, 사람마다 의견이 달라 딱히 의견을 쫓을만한 이가 없었다. 그런데 섬안에 장창대라는 사람이 있었으니 문을 닫고 손님을 사절하면서 독실하게 옛 서적을 좋아했다. 집이 가난해 책은 많지 않은 점을 볼 때 그가 비록 책에서 손을 놓지는 않았지만 보는 눈은 넓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성품이 차분하고 꼼꼼해 풀, 나무, 새, 물고기 등의 자연물을 모두 세밀하게 살펴보고 집중해서 깊이 생각해 이들의 성질과 이치를 파악했기 때문에 그의 말은 신뢰할 만했다. 결국 나는 그를 초청하고 함께 숙식하면서 궁리한 뒤 그 결과물을 완성하고서 이를 자산어보라 이름 지었다.
- 정약전, 「자산어보」, 서문 -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던 자산어보의 서문이다. 유배형으로 폐족이 되었지만 명문 사대부의 양반과 어부인 상놈이 한 팀이 되어 학문을 연구하는 모습.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별 감흥이 없겠지만 엄격한 신분제의 조선시대에서 높은 학식의 양반과 상놈이 함께 학문을 연구했다는 사실은 실로 부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또한 당시 천하게 여기는 해양생물을 직접 해부하고 관찰하는 정약전의 모습은 유학을 바탕으로 사회개혁을 연구했던 정약용과도 전혀 달랐던 시대를 초월한 행보였다. 그 결과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학 관계 서적인 '자산어보'를 낳게 된다. 그를 이처럼 시대의 통념과 상식을 넘어서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책 읽고 책 쓰기엔 유배지 만한 곳도 없는 지라, 근래 쓰고 있는 책 목민심서의 초고를 보내오니 잘못된 해석이 있으면 조목조목 논박해 가르쳐 주시고 정밀한 데로 나아가게 해 주십시오'- 형님의 안부를 묻는 약용의 편지 -'나도 아주 유배 잘 왔네. 호기심 많은 인간에게 낯선 곳만큼 좋은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제부턴 물고기 연구에도 착수하여 훗날 어류도감을 내볼 생각이네 마침 섬에서 물고기에 매우 해박한 젊은이를 만났네'- 아우에게 답한 약전의 편지 -< 영화 자산어보 中 >
영화 속 두 형제가 편지를 주고받는 내용이다. 약전을 움직이게 한 원동력은 바로 호기심이다. 강력한 호기심은 악명 높은 유배지인 낯선 흑산도에서도 그를 만물의 탐구자로 이끈다. 섬 생활은 곧 생계의 원천인 해양생물과의 밀접한 관계로 이뤄졌기에 그의 호기심은 자연스레 어족을 향했다. 그리고 어족자원에 대한 정리된 지식이 전무함을 알게 되고 흑산도 일대의 어족을 집대성하고자 결심한다. 이처럼 그의 호기심은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길은 이전에는 없었던 생경한 마주침을 만들어 낸다.
극 중 약전은 자신의 목숨을 구한 창대를 유심히 지켜보며 그의 물고기에 관한 정밀한 지식에 감탄한다. 서문에 적혀있듯이 대부분의 섬사람들은 약전과 함께 탐구를 할만한 인물이 없었다. 창대는 약전에게 자신의 호기심과 소명의 길잡이가 되어줄 보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또한 홀로 성리학을 닦는 창대에게도 약전의 존재는 쳇바퀴 돌던 학문을 단숨에 상승시킬 수 있는 귀한 스승의 출현이었다. 약전은 자신의 호기심으로 발동된 소명을 이루기 위해 상놈인 창대를 스승으로 하여 묻고 또 묻는다. 새로움을 향한 약전의 호기심과 열망은 계급이라는 견고한 절대적 통념을 가뿐하게 넘는다. 그리고 상놈인 창대와 스승이자 벗이 되어 서로를 고양시킨다. 이것이 흑산도라는 척박하고도 작은 섬에서 방대한 어류학서 자산어보를 생산하게 된 원동력이었다.
호기심이 없는 삶은 늘 제자리를 맴도는 과거에 갇힌 삶이다. 과거에 갇힌 사람은 자신이 고수하는 것을 절대화하기에 새로움을 수용할 수 없는 작은 인격으로 머문다. 호기심은 인간을 자신만의 생각에 갇히지 않게 하며, 경청하게 하며, 질문하게 하며, 새로움을 추구하게 한다. 호기심은 그에 따른 모든 새로운 것을 포용해야 하기에 필연적으로 큰 인격이 동반된다. 큰 인격은 자신뿐만 아니라 널리 이로움을 끼치는 큰 성취를 가능하게 한다.
< 이념의 수호자 vs 이념의 이탈자 >
우리는 독립적인 생각을 주인삼아 살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한 생각의 결과를 수용하며 살았고, 내 철학을 갖기보다는 다른 철학을 수입하여 그것을 내면화하느라 애쓰며 살았고, 인격적인 질문보다는 기능적인 대답에 익숙하게 살았고, 실제 효과보다는 도덕이나 이념적 기준을 중시하며 살았다.< 최진석,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북루덴스, 192쪽 >
창대는 나라의 이념인 성리학을 성실히 이행하고 구현하려는 자다. 출세하여 성리학의 구현을 통해 가렴주구(苛斂誅求)로 고통받는 백성을 구원하려는 이상을 품고 있다. 이러한 창대와 유배 죄인 약전의 만남은 처음부터 불꽃을 튀긴다. 글을 배우러 오라는 약전의 제안에 창대는 답한다.
말씀은 겁나게 고마운디, 지는 나으리한테 배울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구만이라!- 창대 -뭐? 이런 상놈의 자식이. 이유가 뭐냐?- 약전 -나으리는 사학 죄인인께요. 400년을 이어온 주자의 나라에서 임금도 없고, 부모도 없고, 제사도 안 모신다니 고것이 역적의 생각과 뭣이 다른게라. 지도 물들까 봐 거시기 혀요.- 창대 -< 영화 자산어보 中 >
창대는 조선의 통치 이념인 성리학의 충직한 수호자다. 배우고 익힌 학문을 일상생활에 하나하나 그대로 적용하며, 양반도 아닌 것이 똑똑하지만 고지식한 상놈?!으로 살아간다. 백성들이 가혹한 세금 징수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며 창대는 말한다. '이것이 다 성리학이 무너져서 그런 것이여' 창대의 가치관은 철저히 성리학에 기준한다. 따라서 성리학을 해치는 모든 것을 부정한다. 거기에 성리학을 위배하는 별장에게 덤벼드는 혈기왕성한 정의감까지. 창대는 더할 나위 없는 성리학의 수호자다.
한 편 출중한 학문으로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나라의 요직을 지냈던 정약전. 성리학을 비롯하여 실학과 서학까지 섭렵하며 그 시대 누구보다 시야를 넓힌 약전은 유배형으로 모든 것을 잃은 후 이전과는 다른 삶을 꿈꾸었다.
내가 이제까지 성리학, 장자, 노자, 서학 가리지 않고 공부한 것은 한 마디로 사람이 갈길을 알고자 했던 것인데, 창대 이놈이 물고기에 대해 아는 것만큼도 알아낸 게 없지 않은가? 하여, 이제부턴 애매하고 끝 모를 사람 공부 대신 자명하고 명징한 사물 공부에 눈을 돌리기로 했네 사물로 나를 잊어볼 생각이네.- 아우에게 보내는 약전의 편지 -< 영화 자산어보 中 >
약전은 지난날 자신이 투신했던 이념과 가치관이 벼슬을 잃은 후에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완전한 실사구시의 자세로 학문에 임할 것을 말한다. 자신을 옭아맨 모든 이념으로부터의 이탈을 꿈꾸며, 명분과 이념에서 실리와 실용으로 삶의 방향을 완전히 전환하고자 했던 것이다.
네가 사서삼경을 외우는 시간에 서양은 또 무엇을 연구하고 알아냈는지 모른다. 무섭지 않으냐? 나는 성리학으로 서양의 기하학과 수리학을 받아들였다. 너의 그 영특한 머리로 다른 공부를 배워볼 생각은 없느냐?- 약전 -뭔 공부를 또 배워요. 성리학 공부도 겁나게 벅찬디.- 창대 -같이하면 된다. 성리학과 서학이 결코 적이 아니다. 함께 가야 할 벗이지!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 약전 -< 영화 자산어보 中 >
약전은 태생적 한계로 성리학의 굴레에 갇힌 창대를 보며, 삶을 통해 깨달은 바를 그에게 일깨워주려 한다. 창대 또한 약전의 신실한 가르침에 마음의 문을 열고 실사구시에 눈을 뜬다. 둘은 의기투합하여 어족 연구에 박차를 가한다. 약전은 창대에게 유학과 서학을 동시에 가르치며 세계를 대하는 그의 시야를 넓혀 준다. 그러나 성리학의 근간을 흔드는 약전의 철학은 창대에게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양반도 상놈도 없고 적자도 서자도 없고 주인도 노비도 없고 임금도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이다.- 약전 -그럼 어째서 서당 현판에 성리학의 핵심인 복성(復性)을 쓰셨습니까요?- 창대 -서학이던 성리학이던 좋은 건 다 가져다 써야지. 나는 성리학으로 천주학을 받아들였는데 이 나라는 나하나도 못 받아들였다. 이 나라의 성리학은 누굴 위한 것이냐? 이 나라의 주인이 성리학이냐? 백성이냐?- 약전 -그건 지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닌 거 같은디요? 임금도 필요 없는 세상에 누가 주인인들 어떻습니까요? 이제 선생님과 저의 연을 끊어야겠습니다. 선생님처럼 잘못된 생각을 가진 분과 함께하다가는 제 앞길도 위험해지겠습니다.- 창대 -< 영화 자산어보 中 >
약전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창대는 성리학으로부터의 이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출세를 통한 성리학의 구현이라는 뜻을 펼치기 위해 스승을 등진다. 창대에게 뿌리 박힌 주자의 이념은 절대 움직이지 않는 태산이다!
이념을 굳건하게 소유하면 진실하고 헌신적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져서 과거를 지키거나 거기에 자발적으로 갇힌다는 문제가 있다.... 이런 사람들이 만일 권력을 갖게 되면 쉽게 자기 확신에 빠진다. 자기 확신에 빠져, 자기가 만든 진실에 자기가 도취되어 역사에 철저한 태도로 헌신한다는 느낌을 스스로 제조한다. 그래서 현실을 보지 않고 자기 이념을 본다. 현실에서 이념을 생산하는 수고를 하지 못하고, 이념으로 현실을 제어하려는 무모함을 행한다.< 최진석,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북루덴스, 131쪽 >
과거에 합격한 창대는 벼슬에 올라 그토록 고대한 양반이 되어 세상으로 나간다. 비장한 각오고 세상을 개혁하려는 창대. 그러나 실제 목격한 탐관오리의 부정부패는 상상 이상으로 썩어빠진 것이었다. 이제 갓 벼슬을 단 진사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부정에 가담하여 백성의 고혈을 짜는 것이 직을 보전하는 길이었다. 상관인 목사에게 찾아가서 따져 물었으나, 돌아오는 건 부정을 논하는 것은 곧 주상전하를 능멸하는 것이란 어불성설이었다. 분노로 끓어오른 창대는 사고를 저지르고 결국 삭탈관직당한다. 다시 모든 것을 잃고 흑산도로 귀향하는 창대. 그제야 이념의 이탈자가 되고자 했던 스승의 깊은 뜻을 헤아리게 된다.
이념으로부터의 종속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현재 진행형이다.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이념의 속성에 갇힌다. 이념의 선명성, 신속성, 집단성은 인간을 매료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특정 이념을 내제 하여 그 기준만으로 세상을 살게 되면 생각이라는 정신적인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을 하지 않고 이념에 빠진 인간은 감성적이다. 따라서 세계를 보고 싶은 대로만 보는 착각에 빠진다. 약전은 이러한 강력한 이념으로부터 이탈했다. 그 시대 누구도 벗어나지 못했던 주자로부터 천주까지. 약전은 지난날에 대한 통렬한 성찰과 자신을 옭아맨 것들에 대한 질문을 통해 인간을 자유케 하는 본질을 꿰뚫었다.
선진화는 전술적 차원에서 전략적 차원으로, 따라 하기에서 선도력 추구로, 자리 경쟁에서 가치 경쟁으로, 사회과학적 시선에서 인문적 시선으로, 일반성에서 고유함으로, 명분과 이념에서 실리와 실용으로, 종속적 단계에서 능동적 단계로, 선례 찾기에서 선례 만들기로, 안전 추구에서 과감한 모험으로, 대답하기에서 질문하기로, 정답 찾기에서, 문제 찾기로, 지식 수입에서 지식 생산으로, 취업 기풍에서 창업 기풍으로 사회 전체를 혁신하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단계로의 상승만이 남았고, 바로 이것이 현재를 사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시대 의식이다.< 최진석,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북루덴스, 41~42쪽 >
약전이 그리던 세상이 바로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지금도 우리는 어떠한 이념, 관념, 신념에 종속되어 그것의 충실한 수행자로 살고 있지 않은가?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세계를 창대와 같은 좁디좁은 시야로 마주하고 있지 않은가? '자산어보'속 창대와 약전이 직면한 시대의식은, 바로 지금의 우리가 각성해야 할 것들이다.
< 인간으로의 완성 >
저는 자산어보 보다 목민심서의 길을 택하겠습니다.- 창대 -< 영화 자산어보 中 >
결국 창대는 자신이 품어온 뜻을 펼치기 위해 스승을 등지고 출세길을 떠난다. 스승이자 벗을 잃은 약전은 비록 홀로 되었지만 자신의 소명을 다해 연구와 저술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노구를 이끌며 수년간의 저술 활동은 그를 점점 쇠약하게 했다. 지병이 악화되어 숨을 거두는 약전. 그는 숨이 멎는 순간까지 저술을 멈추지 않았다. 자산어보를 저술하는 중 불가(佛家)에서 일컫는 죽음의 최고 경지인 좌탈입망(坐脫立亡)으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는 법력(法力)이 높은 고승에게 드러나는 신비한 현상이 아닌, 그저 죽는 순간까지 행해진 고귀한 삶의 자세가 고귀한 죽음의 형태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죽음에는 보통의 인간이 죽음의 언저리에서 겪는 어떠한 원망도, 허무도, 괴로움도, 두려움도 없다. 죽는 순간까지의 건너가기는 자신의 소명에 집중하기에 헛된 망상을 허락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하거나 만들어서[文]' 변화를 야기[化]한다. 이런 의미로 인간은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문화적 존재다.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무엇인가를 하거나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일을 가장 근본적인 사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인가를 하거나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도전에 나서지 않는 인간은 인간적이지 않다.< 최진석,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북루덴스, 248쪽 >
가장 인간다운 것 또는 인간으로의 완성은 세상에 가치 있는 무언가를 생산하고 창조하는 것이고, 이 같은 태도를 끊임없이 이어나가는 것을 말한다. 약전은 스스로를 자유케 하고, 어업을 생계로 하는 백성들을 돕고자 자산어보를 저술한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저술을 놓지 않는다. 세상에 가치 있는 지식을 생산하여 생의 마지막인 임종까지 창조적 행위를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가장 인간다운 행위 속에서 맞이한 죽음으로 정약전은 인간으로의 완성을 이룬다!
가치 있는 무엇을 생산하지 않거나, 창조하지 않는 인간은 인간적이지 않다. 창조와 생산이 부재된 삶은 오직 소비로만 점철된 삶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소비한다. 인간과 자연, 물질과 비물질까지. 하지만 소비적 행위만으로는 대상으로부터 짧고 자극적인 쾌락만을 충족할 뿐. 결코 내 안에서 일어나는 내적인 충만함을 느낄 수 없다. 중독성을 내포한 짧고 강렬한 쾌락은 끝없는 욕망을 부추긴다. 결국 인간은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허덕인다. 오직 소비적이며 소모적인 방식으로만 삶을 채우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역사, 문명의 발전과는 배치는 속성이다. 태초부터 현재까지 인간의 역사는 도전과 창조의 역사다. 인간의 호기심은 의문 투성이의 세계에 질문을 던지며, 모르는 것으로부터 아는 것으로 문명을 진화시켰다. 호기심과 질문, 도전과 창조가 곧 문명의 원천인 것이다. 이처럼 새로움의 추구는 곧 인간의 본능이다. 따라서 인류에게 가치 있는 무언가를 생산하고 창조하는 행위는 가장 인간적인 행위이며, 이러한 행위를 끊임없이 이어나감은 인간으로서의 완성을 이루는 것이다.
당신이 만일 인간으로서의 완성을 꿈꾼다면, 이 영화를 보라! 정약전의 삶에서 그 비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자산어보'에서 인간으로의 완성을 보았다. 하여, '자산어보'는 내 생에 최고의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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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노귀임님의 댓글
노귀임 작성일 Date멋진글 잘 읽었습니다~~~
이수헌님의 댓글
이수헌 작성일 Date덕분에 저도 좋은 영화를 보았습니다. 추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