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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안에 아큐를 찾아라! (수정본)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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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정재윤
    댓글 댓글 3건   조회Hit 6,680회   작성일Date 21-03-29 15:40

    본문

    < 얼렁뚱땅 >

      아큐의 삶을 한 마디로 축약한다면, 얼렁뚱땅이란 단어가 제격일 것이다. 게으름, 나태함, 안일함으로 무장한 아큐는 매사 자신이 대면한 상황 또는 사건을 얼렁뚱땅한 자세로 맞는다.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지 않고, 상황의 전후좌우를 살피지 않으며, 상대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함부로 막사는 삶인 것이다.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듯이, 아큐는 판판이 깨지고 그의 비호감과 어리석음은 사람들의 냉대와 무시로 이어진다. 하지만, 괴로운 현실과 얼렁뚱땅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있었으니! 바로 정신승리법이다. 사실과는 별개로 상황을 어떻게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것! 이렇듯 아큐는 망상에 가득 찬 인간이다. 얼렁뚱땅의 삶은 편하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고민할 필요가 없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공들일 필요도 없다. 그저 나에게 편한 감각과 경험, 익숙한 습관, 해왔던 양식대로 느긋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간간이 발행하는 괴로운 상황은 정신승리법의 망상으로로 대처한다. 아큐는 얼렁뚱땅한 삶의 진정한 달인이다.



    < 드높은 자존심 >

      아큐의 자존심은 하늘을 찌른다. 그가 생각하는 웨이좡 사람들은 모두 "세상 구경하지 못한 가소로운 촌뜨기들이었다." 아큐의 드높은 자존심에 그럴듯한 근거는 없다. 그는 집도 없고, 직업이 없으며, 날품을 팔았다. 누구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망각의 대상이었다. 자존심 또한 망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아큐는 한때 잘 나갔고, 식견도 높으며, 게다가 일도 잘했으니, 원래는 거의 '완벽한 인간'이어야 했다." 아큐와 같은 허술한 인간이 완벽한 인간이어야 한다는 현실과 이상의 엄청난 간극! 이러한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신승리법 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정신승리법이 결코 내면 깊숙이 파고든 세상과 타인에 대한 분노까지 해소할 수는 없을 것이다. 드높은 자존심을 짓밟힌 분노는 곧 약자를 향해 발산된다. "상대방을 살펴서 어눌한 자 같으면 욕을 퍼붓고, 힘이 약해 보이면 두들겨 패주었다." 만만한 상대를 짓밟아 얻는 희열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의 타깃은 주로 비구니와 하녀 같이 힘없는 여성들이다. 힘의 우위를 이용한 열한 방식으로 상대를 굴복시켜 쾌락을 얻는 것이다. 아큐는 약자인 여성을 향한 폭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하려는 찌질한 남성 자화상이다.



    < 야생의 무리 >

      아큐가 살고 있는 웨이좡 사람들의 얼렁뚱땅함은 아큐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은 사건의 진실, 사실의 진위 여부를 들여다볼 생각도 없이 그저 느낌과 소문, 추측만으로 사건과 사람을 가린다. 그 결과 아큐와 같은 허술한 인간에게 몇 년간 존경을 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가당찮은 거짓말로 높은 집안 나으리에게 따귀를 맞는 굴욕을 당한 아큐. "하지만 아큐가 잘못을 저질렀는데 왜 사람들이 그를 깍듯이 존경하는 것일까? 이거야말로 난해한 일이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큐가 자오 나으리와 한 집안이라 말했으니, 그로 인해 얻어맞았더라도, 어쩌면 어느 정도 진실일지도 모르기에 그를 존경하는 게 낫지 않겠나." 이것이 웨이좡 사람들의 통례다. 사람들은 아큐가 떠벌린 말의 진위여부 따위는 관심이 없다. 신나게 십어댈 수 있는 흥밋거리와 힘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원초적인 요소만이 그들의 관심사다. 얼렁뚱땅의 극치인 아큐의 행보에 대중이 동요하는 데는 아큐와 같은 어리숙함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웨이좡 사람들은 오직 힘의 논리만이 작동하는 야생동물 무리를 닮아있다. 그들은 권력을 가진 우두머리를 따르며 일신의 편안함을 유지하는 게 최고의 덕목이다. 사건과 상황은 통례와 성현의 말씀을 따르면 됐기에 생각을 골똘히 할 필요가 없었다. 아큐가 억울한 누명으로 처형당한 후 누구도 그가 죽은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우두머리들이 알아서 잘 해결했을 거란 생각을 할 뿐이다. "총살을 당한 것이 그가 나쁘다는 증거였다. 나쁘지 않다면 총살당하는 데까지 가지 않았을 것 아닌가?" 이웃이 처형당하는 사건의 인과 따위는 중요하지도 않고, 알고 싶어 하는 마음도 없다. 그들 또한 권력에 짓눌려 언제든 억울한 누명을 당할 수 있거늘. 웨이좡 사람들은 또 다른 아큐다.



    < 양자택일 >

      아큐의 삶은 극단적이다. 아큐는 세상을 오직 자기 뜻대로만 정해서 관계한다. 문제는 아큐의 뜻이 매우 어리석다는 데 있다. 아큐는 진실과 사실을 토대로 뜻을 결정지을 생각 따위는 없다. 드높은 자존심으로 오직 자신의 경험, 감각, 감정으로만 대상을 단정 짓는다. 따라서 아큐의 마음은 좋거나 나쁘거나, 무관심하거나 무시하거나, 소유하거나 버리거나의 극단적 양자택일에 빠져있다. 자기 멋대로 상황과 사람을 판단하여 한쪽으로 쏠린 마음으로 대상에게 덤벼든다! 이런 앞뒤 없는 들이댐이 세상에 통할리 없다. 영문도 모른 채 아큐에게 당한 이들은, 그대로 응징하거나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친다. 아큐의 레이더망에 걸린 사람들은 결국 아큐의 적이 돼버리고 만다. 무지함으로 점철된 아큐의 시선이 모든 상황과 관계를 극단으로 치닫개 한 것이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선 생각이라는 엄청난 수고를 감당해야 한다. 아큐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가 아닌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만 본다. 보고 싶은 대로만 보는 이유는 나의 본능과 감각만을 이용하면 익숙하고 편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완벽한 인간이라는 독선에 빠져있기에 엄청난 수고를 감당할 이유가 없었다. 드러나 보이지 않는 진실은 이것과 저것 사이에 숨어있는 법이다. 단순한 양자택일에 빠지지 않고 숨어있는 진실을 보기 위해서는 지적인 무장을 바탕으로 깊은 생각이라는 수고를 감당해야 한다.



    < 뒤집기 한 방 >

      아큐는 한 방을 노린다. 언제나 구질구질한 현실을 한 방에 뒤집을 방법을 모색한다. 그래서 도박판을 기웃거린다. 결과는? "아큐의 돈은... 다른 사람들 허리춤으로 사라져 갔다." 늘 꽝이다. 어느 날 그에게도 행운이 찾아온다. "그는 따고 또 땄다. 동전이 은전이 되고, 작은 은전은 큰 은전이 되어 수북이 더미를 이루었다. 그는 신바람이 났다." 하지만 영문도 모를 난장판 속에 돈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아큐의 흐리멍덩함과 어리석음은 덜컥 찾아온 행운을 지킬 수 없었다. "그는 이번에야말로 실패의 고통을 맛보았다." 그러나 실패의 고통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곧바로 정신승리법을 통해 고통은 어느새 흡족함으로 바뀌었다.

      한 편, 좀도둑임이 발각되고 또다시 옹색해진 아큐에게 솔깃한 소문에 들려왔다. 지체 높은 양반들이 두려워하는 혁명당의 등장이었다. 아큐는 혁명에 올라타 뒤집기 한 방을 꿈꾼다. "이 빌어먹을 운명을 혁파하자. 미운 놈들! 한스러운 것들!... 나도 혁명당에 들어가야지." 혁명의 주역이 되어 세상이 뒤집어지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아큐! 그러나 그는 혁명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고작 자신의 변발을 말아 올린 것뿐. 혁명으로의 투신은 상상 속에서만 펼쳐진다. 결국 아큐는 이도 저도 아닌 체 혁명의 주변에서 기웃거리다 그의 어리석음을 포착한 권력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그리고 혁명의 희생량이 되어 죽임을 당한다.

      아큐의 삶에는 과정이 없다. 과업을 이루기 위한 치열한 과정들이 삶에서 생략되어 있다. 과정의 노력이 없기에 무엇도 이룰 수 없고 이룬 것 없는 비루한 인생. 하지만 현실을 압도하는 욕망은 망상을 부채질한다. 아큐에게 한 줄기 희망은 오직 뒤집기 한 방뿐! 두께를 쌓는 과정 없이 인생역전을 노리는 것이다. 이러한 삶은 대부분 역전의 망상을 꿈꾸다 아무 소득 없이 인생을 탕진해 버리는 결과를 맞는다. 설사 운 좋게 행운을 거머 줘도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이 갖춰지지 않으면, 행운은 오히려 크나큰 화로 돌변하여 삶을 타격한다. 두께를 쌓는 치열함을 피하거나 감당하지 못하면 삼류로만 머물 뿐이다. 오늘도 한 치의 치열함 없이 인생역전을 꿈꾸는 자! 아큐와 같은 하류 인생을 면치 못할 것이다.



    < 언어의 한계 >


    - 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다. <비트겐슈타인>


      아큐의 언어는 과연 어떨까? 비루한 인생만큼 아큐의 언어 세계는 무지로부터의 빈곤과 협소로 이루어져 있다. 빈곤한 언어로 말하기 능력은 지극히 떨어지지만, 매번 정신승리를 하느라 혼잣말은 청산유수다. 어눌한 아큐가 가장 신나게 말을 내뱉는 경우는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공격할 때다. 이렇듯 아큐의 존재 형식은 그가 즐기는 언어처럼, 오직 타인에 대한 무시와 공격을 향해 있다. 빈곤하고 원초적인 언어는 감각적인 것에 집중하게 되고, 감정의 배설과 뒤엉켜 왜곡된 정신세계를 만들어 다. 그리고 왜곡된 정신세계는 현실과 소통하지 못한다. 끓어오르는 욕구를 참지 못하고 우 씨 어멈에게 어이없는 고백을 해버린 아큐. "너 나랑 자자, 나하고 자!" 우 씨 어멈은 허겁지겁 줄행랑을 친다. 상대방에 대한 무시가 전제되어 상황과 대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일방통행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처럼 타인과의 교감이 배제된 폭력적 소통 방식의 근원은 빈곤한 언어로부터 구조된 것이었다. 결국 소통의 부재로 인해 아큐는 점점 세상으로부터 고립된다.

      무지는 언어의 빈곤을 야기하고 언어의 빈곤은 삶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또한 지적 반성 능력이 결여되어 삶의 방향은 극단화된다. 언어의 빈곤은 곧 삶의 재앙인 것이다. 아큐는 생각을 정립하거나, 사건과 상황을 정의 내리지 못한다. 따라서 판단을 하지 못하며 결정을 짓지 못한다. 무시와 공격의 장이 아니면 언제나 우물쭈물하며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 간다.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아큐는 누명을 쓰고 조사를 받게 된다. 권력자는 아큐의 어리석음을 눈치채고 그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아큐는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을 집어삼킬 화마 속으로 순순히 걸어 들어간다. 여기서 아큐는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준다. 까막눈으로 자신의 명줄이 끊어질 판에 고작 동그라미를 제대로 그리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다. 목숨이 달려있는 엄중한 상황에서도 전혀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아큐! 극단적 언어의 빈곤은 아큐의 세계를 소멸로 한계 지어버린다. 아큐의 언어는 타인과 자신을 파괴하는 끔찍한 재앙이었다.

      나의 언어는 내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의 가장 핵심적인 비물질적 토대다. 그렇다면 나의 언어적 토대는 어떠한가? 나를 세상에 우뚝 설 수 있도록 단단한 토대가 되어 떠받치고 있는가? 반대로 세상이 나를 잠식하도록 심연을 향해 무너지고 있는가? 내 언어의 질은 내 삶의 질을 결정한다!



    < 무엇을 원하는가? >

      우 씨 어멈을 희롱하여 기피 대상이 아큐는 곧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다. 별수 없이 살기 위한 몸부림을 준비한다. "그는 길을 가며 '구걸'할 요량이었다. 잘 아는 주점... 잘 아는 만두집도 보였다. 하지만 모두 지나쳤다. 잠시도 멈추지 않았을뿐더러 구걸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가 바라는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그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그 자신도 몰랐다." 굶어 죽어가는 판에 아큐는 구걸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드높은 자존심이 구걸을 막아선 게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철저한 무기력과 무의욕, 무념의 상태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어리석음은 삶을 고갈시키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혁명의 물결에 올라 인생역전을 꿈꾸는 아큐!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혁명당과 인연을 맺어야 한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문제는 아큐와 좋지 않은 관계인 가짜양놈에게 입당을 간청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평소 같으면 벌레처럼 무시했을 가짜양놈일텐데, 아큐는 어렵게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제가...." 그러나 한 마디 대화도 나누지 못한 채 가짜양놈에게 문전박대를 당한다. "나가...꺼지라고" 아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문밖으로 달아났다... 가슴속에서 슬픔이 솟구쳤다... 그가 품었던 포부와 지향, 희망, 앞날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아큐의 혁명은 거기서 끝났다. 혁명의 인생역전은 가짜양놈의 단 두 마디로 허공으로 사라졌다. 가짜양놈의 거절 두 마디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상실하고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이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생각이 없었기에, 빈약한 내적 무장은 작은 충격에도 대응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아큐는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수많은 어리석음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어리석음을 만들어내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미성숙한 인격? 지성의 결핍? 빈곤한 언어?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이러한 어리석음을 극복하려는 마음의 발현이 없었다는 것이다. 마음의 발현이 곧 모든 행위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도전과 과제에 직면한다. 그 속에서 지금 내 역량의 한계와 마주한다. 도전을 넘어설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했기에 나의 역량이 벽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편안함, 익숙함에 안주하여 벽을 넘어서려는 치열한 수고를 감당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현재를 고수하기 때문에 낯선 것을 거부한다. 좁고 협소하다. 자신이 만든 왜곡된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진실을 보지 않는다. 아큐와 같은 이들이다! 한 편 어떤 이들은 더 높은 수준의 세계 혹은 또 다른 차원의 세계로 나아가려 한다. 이들은 벽을 극복하기 위한 수고를 감내하기 위해 철저히 각성한다. 미지의 영역으로 마음을 발현하는 것이다. 여기서 철저한 각성이란 바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가?'이다. 아큐는 어리석음으로 마주하는 비천한 상황을 극복하려는 마음을 내지 않았다. 자기를 마주하는 철저한 각성이 아닌 정신승리법을 통해 자기를 속여왔기 때문이다. 결국 어리석음으로 점철된 비참한 삶을 벗어날 수 없었다.

      무엇을 원하는 마음이 없다면 무엇도 할 수 없다. 무엇을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실현 가능한 어떤 것도 해낼 수 있다. 인간은 머무르거나 안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정체된 삶은 결국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낙오되기 때문이다. 주체적으로 우뚝 서서 매 순간 삶의 향상을 꿈꾼다면, 우리는 이 질문을 끊임없이 되새겨야 한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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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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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남섭님의 댓글

    이남섭 작성일 Date

    눈치도 좀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책 읽으시느라고 애 많이 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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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남섭님의 댓글

    이남섭 작성일 Date

    아이구 죄송합니다^^
    이제야 확인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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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차남님의 댓글

    오차남 작성일 Date

    아큐정전읽고 '이 사람 뭐지?'하며  내용과 주제 파악이 어려웠는데... 재윤님의 서평을 읽으며 감탄하였습니다!
    재윤님의 서평을 통해 안보이던 작가의 생각을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재윤님의  통찰력과 글솜씨도 감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