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장]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_줄리언 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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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새문장]
기본학교 2기 신동찬
어느 날 찾아온 편지 한 통이 오래 전,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 낸다. 항상 붙어 다니던 녀석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빛나던 한 친구가 있었다. 말 한마디 허투루 하는 법이 없고, 이미 무언가 중요한 걸 꿰뚫고 있는 듯한 눈빛과 태도, 그에 걸맞은 우수한 성적. 그 시절 우리의 자랑거리였던 ‘철학자 친구’ 에이드리언. 그리고 그가 대학 시절 자살했다는 기억도 함께.
‘기억 속의 나’와 ‘실제의 나’는 얼마나 같은가
두 가지 대목이 있다. 먼저 주인공 토니와 그의 친구 앨릭스는 에이드리언이 자살했다는 사실에 대해 그것이 자신의 삶을 자기 스스로 결정한, 꽤나 멋진 태도로 여긴다. 이는 그들이 아직 호기롭고 반항적인 태도가 남아있던 청년 시절이었다는 점도 있지만, 그들의 기억 속에 에이드리언은 똑똑한 ‘철학자 친구’였고, 항상 분명하고 단호한 태도로 가르침을 주던 진중한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의 자살 이유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지 못하지만, 그 기억을 토대로 ‘1등급 성적에 걸맞은 1등급 자살’이라고 평한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에이드리언이 그의 여자친구의 어머니를 임신시킨 상태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른 대목에서는, 에이드리언이 자신의 여자친구였던 베로니카와의 교제를 알리는 편지를 보내자, 토니는 화가 났지만 그래도 쿨하게 친구의 행복을 빌어주는 답장을 보냈었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뒤, 베로니카를 통해 직접 보게 된 자신의 답장은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험담과 저주로 가득했다.
토니는 60대의 노인이 되어, 난생 처음 자신의 삶을 적나라하게 마주하며 깊은 회환과 혼란 속에 빠진다. 교묘하게 꾸며진 기억과 그 기억들을 토대로 살아온 자신의 삶이 얼마나 많은 거짓과 자기기만으로 가득 차 있을지를 떠올리며 아찔한 부끄러움 속에 잠겼을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보다 생각을 바꿔버리는 것이 더 쉽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분투하는 것보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내가 원하는 모습을 바꿔버리는 것이 훨씬 더 쉽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은 교묘하게 더 쉬운 쪽으로 우리를 몰고 가서 그것이 사실 우리가 바라던 모습이고, 만족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애써 힘들여 노력하고, 칼을 빼어 들어 제동을 걸지 않는 이상, 절대로 주도권을 찾지 못하고 그저 살아지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다가 노인이 다 되어서야 토니처럼 카오스를 마주하거나 혹은 그마저도 외면한 채로 살다 간다.
‘그래서 만약 토니가’
토니는 에이드리언의 자살에 대해, 딱 중간쯤의 위치에서 흘러가는 대로 살아온 자신의 삶과 비교하며, 그것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윤리적 결정이자 정신적, 육체적 용기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삶이란 바란 적이 없음에도 받게 된 선물’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그의 유서와 그 안에 제시한 자살에 대한 철학적 정당성은, 그 또한 한 생명에게 바란 적 없는 선물을 받게 한 상태였음을 감안한다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자살은 정말 삶을 명징하게 받아들인 자들이 스스로 내리는 용감한 결정인가? 그보다는 막다른 상황에 놓였을 때 스스로를 보전하기 위해 내리는 최후의 선택에 더 가깝게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왜 하필 여자친구의 어머니를 임신시킨 상황이 되어서야 자살을 선택했는가. 에이드리언은 자살을 통해 자신의 반항아적이고 영웅적인 태도와 철학이 완성되길 바랐지만, 현실에서는 삶의 곳곳에 도사린 무의미함과 부조리함을 딛고 끝끝내 승리하는 사람을 영웅이라고 부른다. 에이드리언 역시 ‘자신이 기억하는 나’와 ‘실제의 나’가 다른 인물이다. 토니가 보지 못한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에는 다른 이야기들이 적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만약 토니가’.
삶에도 이유가 있다
세상에 이유없는 자살은 없듯이, 사유하는 자가 삶을 살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분명한 이유가 존재한다.
‘삶이란 바란 적 없음에도 받게 된 선물이며, 사유하는 자는 삶의 본질과 그 에 딸린 조건 모두를 시험할 철학적 의무가 있다. 그리고 만약 그가 바란 적 이 없는 그 선물을 포기하겠다고 결정했다면, 결정대로 행동을 취할 윤리 적, 인간적 의무가 있다.` (에이드리언의 유서 中)
에이드리언이 인식한 삶의 본질에는 동의하지만, 그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유하는 자는 삶의 부조리함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끝까지 살아내서, 보다 많은 것을 관찰하고 경험하여 이를 기록하고 남겨야 할 철학적 의무가 있다. 삶의 실존적 조건에 저항하는 자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내서, 마침내 무언갈 이뤄내는 것이 더 진정한 저항이다. 삶에도 분명한 이유가 필요하다. 에이드리언처럼 고독한 철학자로 죽거나, 토니처럼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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