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장] 세일즈맨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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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세의 세일즈맨이 죽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그는 이것으로 밀린 보험료, 냉장고 할부금, 자동차 수리비 등 경제적 책임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2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의 소유가 된 아파트에 그는 없다. “여보, 오늘 주택할부금을 다 갚았어요. 그런데 이제 집에는 아무도 없어요. 이제 우리는 빚진 것도 없이 자유로운데, 자유로운데, 자유롭다구요! 자유…….”그의 아내는 그의 죽음 앞에서 흐느낀다. 하지만 그는 곁에 없다. 그의 이름은 윌리 로먼.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자신을 소개하고 미국 전역을 돌며 물건을 팔아치우던 그의 모습은 이제 누군가의 기억 속에만 희미하게 남았다. 화려했던 과거, 성공의 기억 속을 서성이다 스스로 죽음 속으로 걸어 들어간 윌리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지금도 흔히 일어날 법한 일이다. 지금의 우리와 비슷해서, 너무 평범해서 더 쓸쓸한 윌리의 죽음과 그의 삶이 내게 던진 질문을 잡고 풀어본다.
윌리의 사랑은 왜 독이 되었나?
가족은 일종의 운명공동체로 한 울타리 안에서 각자의 삶을 인정하고 지지하며 모두가 나의 적이 된 상황에서도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일종의 충전소라 할 수 있다. 자녀들은 삶의 기본적인 가치와 태도를 부모에게 배우고 익힌다. 그렇기에 가정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체화하고 세상을 보는 관점을 갖는다. 윌리는 부와 성공, 인기와 외모를 중요시하고 유명해지고 주목받는 상황을 만들어가야 함을 강조한다. 외부의 인정과 남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인기 많고 축구를 잘하는 10대 아들 비프를 자랑스러워한다. 비프도 솔직하게 자신의 실제 모습을 직면하기보다 아버지가 그리는 성공의 환상을 선망한다. 하지만 그저 꿈만 꾸고, 실현을 위한 훈련이나 노력은 하지 않는다. 자기 물건이 아닌 것을 가져오거나 수학 시험에서 낙제를 받아도 이것을 문제라고 여기지 않고 운동화에 가고 싶은 대학교의 마크를 그려 넣고 여전히 꿈만 꾼다. 잘못되면 코치나 다른 친구 탓을 하며 원인을 외부로 돌린다. 이런 비프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궁금하고 찾고 싶지만 용기가 없다. 아버지를 가장 존경했지만 아버지의 실제 모습을 알고 난 후, 그 관계를 풀지 못하고 방황한다. 아버지의 환상 속에서 충실하게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아들의 방황은 계속된다. 사랑은 자기의 가치관이나 신념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려 하지 않고 상대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존중해주려는 애씀이다. 특히, 부모의 사랑이 그렇다. 스스로 찾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일이다. 그러나 이 가정의 권력자인 윌리는 아내 린다에게도, 아들 해피와 비프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주입하고 각자의 목소리를 내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들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니 그 댓가로 너희를 통해 나의 환상을 실현시키리니..... 자신이 누군지 궁금하지도 않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직면할 용기도 없는 환상속의 윌리는 현실이 변하고 자신이 초라해질수록 더 강하게 이런 모습을 고집한다. 관계는 상호작용이라는 순환으로 건강해지고 단단해진다. 하지만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관계로 각자의 독립적 주체로서 아들을 인정해주지 않는 아버지 윌리의 사랑과 헛된 믿음. 청년이 되어도 독립할 수 없는 두 아들은 이런 아버지의 사랑과 헌신이 독이 되어 만들어진 어른아이다. “내가 원하는 건 저 밖으로 나가 내가 누군지를 알게 되는 그 때를 기다리는 건데! 전 왜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거죠, 아버지?”
무엇이 윌리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까?
36년을 한 회사에서 일한 윌리는 속만 까먹고 버려지는 오렌지 껍데기처럼 어느 날 해고를 당한다. 사람은 과일 나부랭이가 아니라고, 사장의 아버지가 약속했던 일들을 말해보지만 소용없다. 세상은 변했고 그는 늙었다. 낡은 톱니바퀴가 교체되어 버려지는 것처럼 부품의 역할을 했던 그도 같은 신세가 된다. 자본의 거대 조직에서 생산과 소비의 부품으로 전락한 인간의 예견된 결말이다. 독립해서 자기 사업을 해보고 싶었으나 매달의 생활비, 할부금, 수리비 등의 고정 지출을 감당해내기 위해 이 끈을 놓을 수 없다. 씨앗을 심고 나무와 텃밭이 있는 주택에 살리라는 희망을 품지만 현실은 낡은 아파트로 돌아와야 한다. 믿었던 큰 아들의 방황과 실패는 과거 자신의 과오와 연결되어 있다. 현실을 직시하여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가 없는 윌리는 과거의 시간에 머무는 일이 잦아지고 자살을 시도한다. 무시했던 친구와 그의 아들의 성공은 그를 더 깊은 슬픔으로 빠뜨린다. 남들의 시선과 기준,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신의 빛나는 모습을 그렸지만 그것은 꿈속에서만 가능한 일이 되었다.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기에 타인의 삶에는 무관심하다.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들조차 자기 기준으로만 본다. 내가 제일 잘나가! 했던 사람이 내가 제일 불쌍해!가 되었다. 자신에 대한 믿음 없이 외부의 기준과 시선만을 의식해서 살아왔기에 환경과 조건이 바뀌어 자신이 천정에 있다가도 바닥을 치는 것이다. 천정과 바닥사이에 균형을 잡는 일은 스스로의 기준을 갖는 것이다. 사회에서 정한 것이 아닌 자신이 만드는 자기 삶의 중심과 기준이 없기에 윌리는 늘 공허하고 외롭다. 과거의 영광과 후회 사이를 서성이며 오늘의 여기에 살지 못한다. “아버지는 진실을 알아야만 해요. 아버지는 누군지. 나는 누군지!” 아들 비프는 그런 아버지에게 이렇게 외친다. 그리고는 거짓된 꿈을 태워 없애 버리라고 말한다. 우는 아들을 보며 윌리는 마지막 희망을 갖는다. 훌륭한 사람이 될 아들의 꿈을 위해 보험금을 받으려 자동차를 타고 전속력으로 다이아몬드를 꺼낼 정글 속으로 뛰어든다.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그 자신의 헛된 욕망이었다. 한편, 친구 찰리는 장례식에 와서 말한다. “이 사람을 비난할 자는 아무도 없어. 세일즈맨은 꿈꾸는 사람이거든. 그게 필요조건이야.” 사회적으로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을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물속에서 사는 물고기가 자신이 물 안에서 산다는 것을 자각하기 어려운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 안에서 객관적인 태도로 현실을 바라보기 어렵다. 하지만 나를 둘러싼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정말 당연한 것인지를 성찰해보는 것이 제대로 삶을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타를 잡을 수 있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죽음으로 스스로를 몰아가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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