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세이건, 코스모스에 대한 철학적 단상(8) / 기본학교 필사모임_우주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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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상 사람들은 이처럼 천문학을 배우려 했을까? 영양과 사슴과 들소는 철에 따라 이동하므로 한 지역에서 잡을 수 있는 사냥감은 계절에 따라 늘고 줄기를 반복한다. 과일과 견과류는 익는 때가 따로 있으니 계절을 알아야 제대로 익은 것을 제때에 따먹을 수 있다. 농업 기솔의 발명 이후 작물을 때에 맞춰 심고 거둬들여야 할 필요가 생겼으며, 또 멀리 떨어져 사는 유목민들은 미리 정해 둔 때에 서로 만나 연중행사를 치러야 했다. 그러므로 하늘의 달력을 읽을 줄 아느냐에 따라 목숨이 좌우되기도 했다. 새 달이 되면 초승달이 다시 나타나고 개기 일식 뒤에 태양이 다시 나타나며 밤사이 모습을 감춰 걱정스럽던 태양이 아침이면 다시 나타나는 현상 등은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항시 눈여겨 관찰한 자연의 충직한 순환이었다. 이러한 순환 현상을 통해서 우리 조상들은 죽음 너머의 또 다른 삶을 짐작했으며, 저 높은 하늘을 영생불사의 암시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상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 왔다. 해와 달과 별의 위치와 그들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알면 알수록 사냥을 언제 나가야 하는지, 씨앗은 어느 날쯤 뿌리고 익은 곡식은 언제쯤 거둬야 할지, 그리고 부족 구성원은 언제 모두 불러 모아야 할지를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측정의 정확도가 향상됨에 따라 기록을 보존하는 일이 점점 중요시되었다. 그러므로 천문학은 관측과 수학과 문자의 발달에 크게 이바지했다. < 칼세이건, 「코스모스」, 사이언스북스, 110~111쪽 >
그 옛날 누군가는 하늘의 움직임과 별을 보며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느꼈고, 누군가는 두려움을 느꼈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고, 누군가는 호기심과 생각으로 별들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왜 누군가는 늘 반복되는 하늘의 움직임을 생각하며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을까? 이들이 하늘을 감상으로만 바라보지 않은 까닭은 하늘의 움직임에서 생존의 질과 양을 증가시키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존의 질과 양을 증가시키려 할 때 가장 효율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하늘을 감상하고 숭배하는 감각적인 인간에서, 관찰하고 측정하는 생각하는 인간으로 도약한 것이다. 그 결과 사냥과 수확, 작물 재배 그리고 인간 활동의 규칙성이 생겨나며 생존의 질과 양이 급격히 상승했다. 궁극적으로는 하늘과 별의 움직임을 천문학으로 발전시켜 자연의 순환을 통찰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어떠한 대상과 활동을 생존과 연결시킬 때 자신의 능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극대화한다. 책 읽기 또한 마찬가지다.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는 누군가에겐 괜찮은 교양서적, 누군가에겐 그저 그런 책, 누군가에겐 삶의 영감을 안겨주는 책이 될 것이다. 나는 철학하기와 글쓰기의 소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마주하고 있다. 코스모스는 곧 나의 생존인 철학하기와 글쓰기라는 소명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생존과 연결된 책 읽기는 보통의 책 읽기와는 차원이 다른 밀도로 체득된다. 책이 단순히 교양으로 남는 것이 아닌 발 뒤꿈치까지 스며들어 사무치는 것이다. 또한 읽기와 동시에 코스모스의 영감을 글쓰기로 풀어내고 있다. 쓰기를 위한 읽기는, 읽기만 하는 것과 전혀 다른 집중과 밀도를 가진다. 이렇게 체득된 코스모스는 나의 철학하기와 융합하여 새로운 통찰로 승화한다. 하늘의 움직임을 생존의 질과 양을 증가시키는 지혜로 삼았던 그 누군가와 같이, 나 또한 코스모스를 생존의 질과 양을 증가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덤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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