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죽음

기본학교 2기 이채영

평범해 보이는 한 가족이 몰락했다. 그들은 물먹은 스펀지처럼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지만, 그들 중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이는 없었다. 그러다 극 말미, 아들 비프가 갑갑하게 꽉 막힌 공기를 뚫고 울분을 토해낸다. “아버지는 진실을 알아야만 해요! 이 집에서 우리는 단 십 분도 진실을 이야기해 본 적이 없어요!” 숨통이 확 트이는 것도 잠시, 극 전체를 쥐고 있던 씁쓸함과 울적함이 다시 밀려온다. 처음으로 가족들을 현실로 끌어왔던 그의 발언이, 아버지 윌리의 죽음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들 가족을 죽였나?]

윌리의 죽음은 표면적일 뿐이다. 사실 윌리’가족’의 죽음이 더 정확한 표현 같다. 그들은 세상을 부유하는 좀비가 된지 오래다. 살아있는 것에서 느껴지는 생기가 없다. 무엇이 그들 가족을 서서히 말라 비틀어 죽였을까? 그들을 죽인 것은 외부에 있지 않다. 그들 스스로 만들어 놓은 망상에 있었다. 아버지 윌리의 망상은 자신의 화려한 과거이다. 그는 세일즈맨으로 잘나갔던, 그리고 두 아들에게 존경심을 받았던 화려한 과거에 현실을 기댄다. 어머니 린다의 망상은 남편과 함께한다. 그녀는 남편이 잘못된 선택을 할까 그의 환상을 오히려 부추기며 진실을 숨긴다. 아들 비프와 해피의 망상은 그들의 미래에 있다. 무너져가는 자신들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도피하듯 허황된 미래를 꿈꾼다. 망상은 그들이 서있는 현실과 점점 멀어지게 만들며 조금씩 목을 죄어왔다.

[그들의 망상은 처음부터 위험했을까?]

           그들의 망상의 시작은, 맞닥뜨린 현실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작은 이상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인간에게 이상을 꿈꾸는 것은 꽤나 중요하다. 이상은 방향성과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시궁창 같은 현재의 위치에서 몇단계로 상승시킬 수 있는 파워풀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하지만 이 파워풀한 에너지는 아무에게나 허용되지 않는다. 이 또한 몰아치듯 밀려오는 현실을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는 자에게만 살가운 손을 내밀어주기 때문이다. 이상을 진실로 착각하며 스스로를 진공 안에 가둬놓는 자에게는 서서히 스며들어 가라앉게 만든다. 윌리네 가족이 손쓸 수 없게 무너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건강한 이상주의자’가 되기 위해서]

        그렇다면 우리는 이 가족의 이야기에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 극이 진행되는 내내 머리가 지끈대는 이 가족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지금의 우리가 그들과 비슷한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반짝이고 보송한 수많은 이상들의 유혹 속에 파묻혀 있다. 영화, 드라마, SNS, 그리고 누군가 혹은 과거 ‘나’의 성공신화. 그들의 공통점은 ‘편집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와 비교하면 편집점 없는 우리의 현실은,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적나라하기 그지없다. 코를 찌르는 땀냄새가 가득하고, 우아하기보다 촌스럽다.

하지만 이상을 꿈꾸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허상으로 두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의 손에 진실로 쥐어주는 ‘건강한 이상주의자’가 되고 싶다면, 날 것의 나를 두 눈 똑바로 뜨고 마주해야 한다. 진실은 우아한 이상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은 땀냄새 폴폴 나고 촌스러운 현재의 나에게서부터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