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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문장 3기]영혼, 사랑 그리고 성장(나를 보내지 마_가즈오 이시구로)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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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현식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6회   작성일Date 25-08-13 23:55

    본문

    늪 속의 배

     

    캐시, 루스, 토미는 물에 올라와 있는 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늪 속의 배를 보며 캐시가 말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는걸.” 바다나 강 위를 다녀야 할 배가 어떻게 늪까지 왔는지에 대한 의문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삶이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인지 모를 말을 캐시는 내뱉는다.

    장기 기증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클론. 삶의 굴레 속에서 자기 영혼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사랑을 나누며 고통 속에서 성장해 가는 그들. 자기 장기를 하나씩 하나씩 기증 하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을 알고 있지만, 이를 벗어나기 위해 저항하지 않는다. 오히려 짧은 삶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운명 속에 꼼짝달싹 못 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들과 크게 다른가?

     

    영혼: 순응 또는 저항

     

    플라톤의 철학에서는 인간이라는 완전한 이데아가 있고, 현실 속의 개별 인간은 그 이데아를 불완전하게 모사한 현상에 불과하다. 클론들은 모사의 복제에 불과하니 더 불완전한 모사다. 그들은 장기 기증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고, 격리된 기숙학교에서 다른 클론들보다 조금 더 인간적으로 보호되고 성장한다. 종국에 그들이 맞이할 운명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을 들은 적은 없었으나, 자신들이 일반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선생님과 관계자들의 수상한 말과 행동을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동굴의 비유를 제시했다. 동굴 속 죄수들이 벽에 비친 그림자를 현실이라 믿는다는 것이다. 헤일셤의 어린 클론들은 동굴 속 죄수처럼 주어진 환경을 세계의 전부라 여기며 살아간다.

    그러나 헤일셤을 나와 코티지 등 바깥세상을 알게 되면서, 자신들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복제된 클론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근원자가 있고 인간을 위해 기증되도록 설계된 피조물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기증을 마친 클론들은 몸과 마음에 상처 입고 영혼은 피폐해져 간다. 이때 캐시와 같은 클론 간병사들이 그들의 안심시키고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클론들은 순응을 통해, 삶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다.

    반면, 클론(넥서스 6-Nexus 6)을 다룬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레플리컨트들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I want more life, father.”라고 외치며 제조회사인 타이렐 코퍼레이션을 찾아가 수명 연장을 적극적으로 요구한다. 존재의 유한함에 대한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처절하게 저항하고, 4년밖에 되지 않는 삶의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죽을 때까지 되뇐다. 클론이라는 같은 설정이지만, 순응하는 모사와 저항하는 모사라는 상반된 존재 방식을 보여준다.

     

    사랑 그리고 성장

     

    클론들은 장기 기증 후 죽을 것이라는 정해진 미래 속에서도 사랑하고, 질투하며, 화해한다. 캐시와 토미는 처음부터 서로에게 끌렸고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했다. 하지만 루스의 질투로 그들의 사랑은 엇갈렸다. 그들의 사랑은 연장되지 못했지만, 캐시가 토미를 간병하면서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게 된다. 죽음을 앞두고 루스는 캐시와 토미의 사랑이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며 용서를 빈다. 사랑은 불안한 클론들의 삶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 수는 없었지만, 사랑을 통해 인간일 될 수 있었다.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고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성장은 주어진 운명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달성할 수 있는 그 무엇이다. 캐시는 간병사로 일하며, 자기 장기를 기증하며 생을 마감하는 클론들을 정성스레 돌본다. 캐시는 고독하게 기증자를 돌보지만, 그들과 엮인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어릴 적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려고 한다. 캐시의 삶에 대한 자세는 성장의 진정한 모습을 나타낸다. 삶의 의미는 과정을 어떻게 살아냈느냐에 따라 나오는 것이지 어떤 결과를 얻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캐시, 루시, 토미는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 결과가 좋았든 좋지 않았든 간에 상관없는 것이었다. 토미가 끝까지를 그림을 그리던 모습이 그 예이다. 캐시는 루시와 토미를 떠나보내고 나서도 자기 경험과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한다.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 캐시의 성장은 우리에게 삶의 유한함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깊은 깨달음을 준다.

     

     

    영혼을 가지고 사랑하고 성장하며

     

    <블레이드 러너> 속의 레플리컨트 넥서스 6(Nexus 6)은 저항 속에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비해 <나를 보내지 마> 속 클론들은 순응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움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자는 삶을 늘리기 위해 싸우고, 후자는 주어진 삶을 깊이 살아내는 길을 걷는다. 캐시, 루시, 토미의 이야기는 슬픈 운명을 지닌 클론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이 만들어 간 삶은 곧 우리 삶에 관한 이야기다. 영혼을 가지고, 사랑하고 성장하며, 그림과 시를 즐긴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혹시 기억나, 캐시? 선생님은 로이한테 그림이나 시 같은 건 한 인간의 내면을 드러낸다.’라고 했어. ‘영혼을 드러낸다.’라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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