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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문장 3기]Like Tears in Rain(나를 보내지 마_가즈오 이시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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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송선형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48회   작성일Date 25-08-13 01:39

    본문

    Like Tears in Rain


    0.       1982년 제작된 리틀리 스콧이 감독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는 리틀리컨트라는 생체 로봇이 등장한다. 그들은 인간의 DNA로 설계되어 있고, 모델에 따라 능력과 수명이 정해진다. 제목의 ‘like tears in rain’은 전투용으로 제작된 로이 배티가 죽기 직전 빗속에서 내뱉은 독백 중 일부이다. 그는 자신의 수명을 늘리고 싶어 창조자 타이렐을 찾아가지만, 거절의 의사를 듣게 되고 그만 그를 죽여버린다. 그의 수명은 단 4년이었지만, 경험한 세계가 무척 강렬했기에 존재의 의미를 찾게 되었고, 삶을 향한 열망을 품게 하였다. 그러나 정해진 운명은 그에게 유연하지 않았다. 생에 대한 간절함은 참담함으로 마지막 숨과 함께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그 장면을 보노라면 그의 육체에서 인간이 지닐법한 영혼의 자취가 느껴졌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      캐시 H, 토미 D, 루스 C가 헤일셤 시절, 블레이드 러너를 봤다면 서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어쩌면 침묵했을 것이다. 그들도 인간의 치료를 위해 개발된 클론임이 어느 순간에는 명확히 드러났을 테니까. 소설 초반부를 읽을 때는 헤일셤은 어떤 곳인지 간병인기증인이 무엇을 뜻하는지 등의 설명 없이 인물 위주로만 전개되는 서사 구조에 답답하기도 했다. 다소 지루하기도 해서 어디에 흥미를 둘까 하던 차, 이 소설이 SF 장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얽히고설키는 교우 관계 속에서 수치심을 느끼던 아이들이 클론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지는 않았다. 오히려 수치심이 주는 의미에 관한 생각이 이곳저곳으로 오가며 거미줄처럼 더욱 복잡하게 얽혔을 뿐이었다. ‘수치 羞恥란 자아를 향한 상대의 부정적 반응에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2.      한 발, 두 발, 투명한 눈송이가 쌓이듯, 클론 아이들에게 대한 유대감이 두터워질수록 둥둥 떠다니던 의문점이 비로소 하나둘 스스로 빈칸을 채웠고, 그렇게 서사 위에 깔린 안개가 서서히 걷히자, 이기적인 루스도 연민하게 되었다. 초반에는 헤일셤을 기숙학교나 여건이 좋은 보육원 정도로 상상했다. 서로 애틋했던 아이들, 예술 활동의 중요성을 선사하던 마담의 화랑, 토큰으로 물건을 교환하던 장터, 어느 교실에나 있을 법한 수업 분위기, 밤이면 침대맡에서 소곤대는 수다, 성에 관한 관심과 커플에 대한 고심 등 헤일셤에 있던 학생들의 추억 속에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환상과 경험이 충만해 보였다. 그러나 그 환경이 실험성으로 특정 아이들에게만 제공되었던, 일종의 연민에 의한 구호 활동이었던 것임이 드러나고, 그들 중 누군가는 품고 있던 이상과 꿈이 이러한 사실과 맞닥트리며 깊은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감정이란 완고한 틀 앞에서 한없이 투명했다. 거시적 관점에서 한 개인도 인구라는 수치 數値로써 관리된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회 시스템은 합리적 순환을 지향하기에 개개인의 마음을 살핀다는 것은 폭우 속에서 눈물 몇 방울 헤아리는 일처럼 지극히 소모적이라는 판단을 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그는 쓰임새가 분명한 클론이었으므로 보다 냉혹한 현실 속에서 벌거벗은 자신을 느껴야 했을 것이다.

     

    3.      어느 날 토미는 소문과 그림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며 뒤늦게 자신이 가진 영혼의 가치를 꺼내려 노력한다. 소문은 진실로 사랑하는 커플에겐 3년간의 장기기증 집행 유예기간이 주어진다는 것이었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몰입한 그림의 주제는 환상 동물이었다. 그러나 어렵게 찾아간 마담의 집에서 캐시와 토미가 기대한 자비의 끝은 냉정했다. 열정과 노력이 이른 곳에서 깨치게 된 것은, 자신들이 고마움은커녕 염치조차 없는 그저 가엾은 것들이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장기 기증자사육되던 학생들에게도 영혼이 있음을 알리려던 취지로 설립된 곳이 헤일셤이었고, 마담과 교장 같은 이들의 희생과 봉사 정신으로 어린 클론들이 닭장과 다를 바 없는 곳보다 나은 환경에서 유년 시절이라도 추억할 수 있게 운영된 것이란 허심탄회한 고백을 듣게 된다. 그래서였을까, 양질의 교육을 받은 그 둘은 교양 있는 대화를 이어 나가며 어떠한 부정도 난동도 보이거나 일으키지 않았다.

     

    4.      동물의 복지에는 5가지 자유가 있다고 한다. ‘배고픔과 갈증으로부터의 자유,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통증·상해·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자연스러운 행동을 표현할 자유, 공포와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에 기반하는 동물 복지 시스템에는 안전하고 윤리적인 먹거리를 얻고자 하는 제도적 취지도 포함하고 있다. 만약 안전한완벽한으로 이어질 수 있는 어떤 경로가 열리게 된다면 어떨까? 그것이 윤리의 일부를 자극할지라도, 경제적 이치에 부합된다면 권력가와 자본가들은 사회적 이념과 통념을 재편해서라도 완벽한 먹거리가 실현되도록 유도할 것이다. 유전자 편집 가위가 펼쳐 놓은 새로운 관점처럼 말이다. ‘복지 福祉란 행복한 삶을 뜻한다. 그리고 사육자인 인간은 이제 무엇에 관한 자유보단 무엇에 대한 권리를 추구하는 것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대상에 따라 복지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구현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시점, 우리에게 매체 속 공상과학은 더는 상상의 미래가 아니다.

     

    5.       소설 속이던, 현실 속이던, 더 우수한 복제 인간을 만들려던 모닝 데일사건은 반드시 재차 일어날 불씨이다. 클론의 장기를 합리적인 제도로써 합법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인간성을 이론과 이치에 어긋나지 않게 편집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더 발전한 신세계의 치료법이 칼자국을 남기지 않고 잃은 부위를 재생시키거나 전보다 향상된 몸으로 이전하는 방법이라면, 상황에 따라 결국 인간성에 관한 새로운 지도를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연적으로 태어난 신체와 인간의 손끝에서 빚어진 인체를 주체자 혹은 도구나 재료로 분류하는 정의의 경계는 필요한 만큼 조율이 이뤄질 것이다. 기울어진 세상에서 자연은 차이를 낳지만, 인간은 차별을 구조화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는 대의명분 大義名分이란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무기라 여겨진다. 백지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잉크는 실수일지언정, 시작점이 된다. 그 점 하나가 구체 具體와 여백을 나누며 다음의 현상을 주도할 것이고 또 허용할 것이다.

     

    0.      나는 유한하지 유일하지 않다. 그리고 구조의 틀 속에서 대체될 수 있는 인력이다. 사회는 매일이 채워지는 삶의 장 이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존재함을 들뜨게 하고, 울렁이게 한다. 때론 목적과 목표를 그리며 열정과 열의를 다하더라도, 보상은 그리 즐겁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수치심이 따른다. 언젠가 내가 포함된 문명의 자국이 마르게 된다면, 지금을 살며 새긴 수치의 편린이 이 시대를 추억한 진실한 기록으로 남길 바란다. 모든 유실물이 모이는 노퍼크에서 캐시가 점차 온전해지는 토미의 모습을 그려냈듯, 나 역시 삼켜온 진실을 더 깊숙이 밀어 넣으며, 때가 되어 더 완전한 형태로 드러나길 소망한다. 갈망하는 것이 마음속에 조형되면 시선을 찰나에 머물도록 결박한다. 그러나 그 형상은 정작 코 앞을 벗어나야 비로소 바라볼 수 있다. 나를 떠남으로써, 비와 함께 내리던 비통의 자취가 ‘like tears in rain’이란 문장으로 음미되어 나타난 것처럼 말이다.

     

    “I've seen things you people wouldn't believe. Attack ships on fire off the shoulder of Orion. I watched C-beams glitter in the dark near the Tannhäuser Gate.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블레이드 러너_로이 배티의 독백

    당신들이 믿지 못할 일들을 나는 봤지. 오리온의 어깨너머로 불타는 공격 함선들. 탄하우저 게이트 근처 어둠 속에서 반짝이던 C-

    그 모든 순간들은 시간 속에 사라지겠지마치 빗속의 눈물처럼. 죽을 시간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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