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적인 구조로 볼 때 근대는 남성의 형상을 하고 있어요. 직선의 세계이고 힘의 세계죠. 그런데 현대 이후로는 점점 여성적인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근대가 불의 시대라면 현대는 물의 시대, 근대가 태양의 시대라면 현대는 달의 시대, 근대가 남성과 아버지의 시대라면 지금의 현대문명은 여성과 어머니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 경향을 보이죠. 근대성은 기본적으로 본질주의적인 특성을 보여요. 실체론에 입각해 있죠. 현대의 특징이라는 것은 관계론의 이행이거든요. 양자물리학과 유사해요. 그런데 근대적 특성, 본질론적 특성을 갖는 세계는 남성 중심적인 모습을 취할 수밖에 없어요. 본질이 정해지면 거기에 누가 더 빨리 도달하느냐가 중요해요. 당연히 곡선보다는 직선이 유리하지요. 노자의 사상이 관계론적 특성을 보여주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노자 사상의 배경이 하나라인데, 그때는 아직 모계사회의 특징이 남아 있을 때입니다. 여성성이 주도적이었던 시대였습니다. 관계론적 세계관은 사유의 구조상 어쩔 수 없이 여성적인 특성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봐요. 근대는 문명의 출발을 어떤 단일한 것으로 설정하지만, 고대는 문명이 어떤 갈라짐으로 드러난 대립면들의 상호의존에서 출발한다고 봤을 것입니다. 노자가 공자보다 더 오래된 문명이니 갈라짐이나 대립면의 상호의존을 더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근대의 모순들이 드러나면서 흔히들 근대문명의 폐해를 말하기도 하는데 저는 폐해만을 집중해서 보는 편은 아니에요. 근대문명은 원래 그런 거예요. 다만 그것이 수명을 다한 거예요. 근대문명은 이제 인간 생존의 양과 질을 증가시키는 데 있어서 한계를 맞이한 거예요. 저는 근대든 현대든 태어날 때는 전부 자기 역할이 있다고 봐요. 현대문명도 언젠가는 오히려 ‘폐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죠. 근대에서 현대로의 이행을 문명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크게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요. 모든 것에는 생로병사가 있으니까요. 세계관에도 생로병사가 있죠. 과거는 과거의 역할을 하면서 자기 존재 이유를 가졌죠. 지금은 그 존재 이유가 큰 의미를 갖지 않는 것뿐이에요. 공자와 노자 사상도 그렇습니다. 그들의 사상은 만병통치약이 아니에요. 어느 시대에는 공자가 더 맞았고, 어느 시대에는 노자가 더 맞았을 뿐이에요. 현대에는 공자보다는 노자가 더 잘 맞아요. 공자를 가지고 현대를 살아가기에 공자의 사상이 너무 낡았죠. 공자로 현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근대로 현대를 살아간다는 것과 같은 말이거든요. 최진석, 『나 홀로 읽는 도덕경』, 시공사, 2021, 78~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