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편의 일부 내용을 발췌합니다. ) 생각이라는 건 좀 막연하잖아요. 문명에서 주도적이고 주인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생각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명, 특히 물건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생각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어떤 불편함을 해결한 것들입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 (예컨대)의자며, 우주선이며, 이런 것들은 전부 어떤 불편함을 해결한 것들이에요. ‘내가 하늘을 날지 못해서 불편하다. 그래서 하늘을 날고 싶다.’ 그래서 비행기가 나오는 거죠. ‘내가 이렇게 혼자 천천히 걷는 것이 불편하다. 저기까지 좀 더 빨리 가고 싶다.’ 그래서 그때 수준으로 나온 것이 자전거입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도 예외 없이 전부 불편함을 해결한 결과들입니다. 그렇다면, 생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한 형태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다 생각의 결과이다.이 세계 존재하는 어떤 것도 다 불편함을 해결한 결과이다.' 똑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다 문제를 해결한 결과다. 문제점을 해결한 결과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물건이 되었든, 제도가 되었든, 생각이 되었든, 어떤 것도 전부 다 문제를 해결한 결과입니다. 생각뿐만 아니라, 제도 물건 모든 것이 다 문제를 해결한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생각의 가장 중요한 속성 가운데 하나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 문제점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창의적 인간은 우선 원초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인간입니다. 문제를 발견하는 인간입니다. 일반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불편함을 느껴서 그 불편함을 자기가 해결하려고 덤빈다는 것입니다. 문제점을 발견해서 자기 일로 생각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덤벼든다는 것입니다. 그냥 덤벼들 뿐만 아니라, 집요하게 그 문제점과 불편함을 놓지 않는 것이죠. 이렇게 본다면, 문명의 주도권을 잡고 싶거나, 창의적인 인간이 되고 싶거나, 더 자유로운 인간이 되고 싶거나 더 풍요로운 인간이 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경로가 복잡하지 않습니다. ‘불편함을 느껴라, 문제점을 발견해라. 그리고 불편함을 해결하려고 덤벼라!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덤벼라!’ 우리가 지금까지는 우리 문명을 채우고 있는 물건이나 제도들을 우리가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이 별로 없고, 다른 곳에서 만든 것을 가져다 쓰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물건을 만들거나 제도를 만드는 데, 그렇게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뜻인데, 물건을 만들거나 제도를 만드는데,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뜻은, 우리가 불편함을 느끼고 문제를 발견하는 그런 예민함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저는 총체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배양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거죠.
우리가 문제점을 발견하고, 불편함을 발견하는 것이, 또 그럴 수 있는 예민함을 갖는 것이 그냥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왜? 우리가 지금 말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이 너무나 쉬운 것들이기 때문에... 그런데 이 불편함을 발견하고,문제점을 발견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기가 그것을 해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해본 적이 없다는 말은 우리 능력 범위 안에서는 난이도가 굉장히 높다는 것이에요. 그러면 우리는 왜 불편함을 느끼고 문제를 발견하는 예민함이 배양되지 않았을까요? 왜 생각하는 능력이 배양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중요하게는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높은 수준의 생각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데만 익숙했기 때문에 그래요. 조선 시대 내내 중국의 이데올로기를 최고의 선으로 놓고 살았습니다. 그 뒤로는 일본, 그 뒤로는 미국을 필두로 한 서양... 물론 그런 생각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들이 가치가 있었죠. 그래서 우리는 또 지금 이 정도까지 살게 된 것이고요. 그보다 ‘어떤 사상, 어떤 철학, 어떤 이데올로기가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보다도 ‘그것을 스스로 생산한 것이냐 아니냐’가 ‘문화적 인간, 문명을 건설하는 인간’이 주도권을 가진다는 점에서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는 것예요. 우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한 생각의 결과를 받아서 사는 것으로는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에 이미 도달해 버렸다는 것이죠. 불편함을 느끼고 문제점을 느낀다는 것은 이렇게 난이도가 높은 겁니다. 그러면 개인들이 이 불편함을 느끼고 문제점을 발견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그것은 ‘이 세계가 내 것이다. 이 세계가 내 놀이터다. 이 세계가 내 삶의 현장이다’라는 인식을 가져야만 돼요.이 세계는 다른 사람의 놀이터인데, 나는 거기에 끼어서 함께 놀아 주는 사람이라는 인식으로는 불가능해요. 이 세계는 다른 사람의 삶의 현장인데, 나도 여기서 함께 산다는 생각으로는 불가능해요. 자기가 딛고 있는 세계가 자기의 삶의 현장이고, 자기 세계라는 인식을 가져야 해요. 그러면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가 자기의 세계이고 자기 삶의 현장이라는 인식을 갖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것 하나하나가 그 세계 전체가 다 자기가 다루어야 되는 세계로 인식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자기한테 분명한 야망이 있으면 가능해져요.분명한 꿈이 있으면 가능해져요. 분명한 소명이 있으면 가능해져요. 저는 하나의 소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는 나 자신으로 완성되는 삶을 살고 싶어요. 나 자신으로 완성되는 이 삶이 공동체의 완성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래서 나의 한 단계 도약이 우리나라의 한 단계 도약과 긴밀하게 연결되면 좋겠다는 소명과 소망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런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왜 후진국으로 살던 사람이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못하는가?’ ‘왜 어떤 사람이 물건을 만들고 어떤 사람은 물건을 못 만드는가?’ ‘어떤 사람은 생각을 하고, 어떤 사람은 못하는가?’하는 이 문제들을, 이런 인식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런 문제를 내가 발견하게 된 나의 동기는 무엇이냐? 나한테는 야망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소명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꿈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야망, 소명, 꿈은 무엇이냐? ‘지금까지 종속적으로 살아왔던 우리나라가 어떻게 하면, 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국가가 될 수 있을까’ ‘식민지를 겪었던 나라가 어떻게 하면 다시는 식민지를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중국의 종속국가로 살아왔던 그 역사를 어떻게 하면,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저는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내가 자유롭게 살다가는 것이고, 우리나라를 자유로운 국가로 만드는 것이라고, 믿고 있고 그 소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훨씬 더 예민하고, 그래서 불편함이 보이고, 문제점이 보이는 것입니다. (야망, 꿈, 소명을 가져야 ) 죽기 전까지 꼭 완수하고 싶은 야망이 있으면, 꿈이 있으면, 비전이 있으면, 소명이 있으면, 이 세계가 자기 삶의 현장으로 인식됩니다. 이 세계가 자기 삶의 현장으로 인식되면, 예민해집니다. 예민해지면, 불편함과 문제점이 보입니다. 그러면, 불편함과 문제점이 보이면 그 불편함과 문제점을 붙들고 혹은 늘어지고 싶어집니다. 그러면, 하루하루가 제대로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지루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고 행복한 느낌이 듭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힘입니다. 지치지 않게 하는 힘입니다. 자유롭게 하는 힘입니다.
최진석, <생존철학>ep_1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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