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을 하나의 큰 덩어리로 놓고 보면,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제일 아래층은 물건입니다. 이 물건들은 이 물건들이 태어나는 좋은 길이 있어야만 좋은 물건이 생산됩니다. 물건들이 태어나고 돌아다니는 길, 이것을 우리는 제도라고 합니다. 이 제도는 제도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가능하게 하는 어떤 것의 지배를 받습니다. 제도를 가능하게 하는 어떤 것, 그것을 우리는 생각, 사유, 철학, 문화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중략)
구체적으로 경험되는 물건에만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은 나라를 우리는 후진국. 제도까지도 시선을 붙일 수 있는 단계, 이 단계를 우리는 중진국. 생각의 방식, 생각의 틀 이런 것들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 단계, 이것을 우리는 선진국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선진국의 가장 큰 특징은 새로운 과학기술 문명에 맞는 삶의 방식을 앞서서 만들어 나간다는 겁니다.선진국의 특징은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인간이 물건을 만들 때, 무엇을 가지고 만듭니까? 생각을 가지고 만듭니다. 먼저 생각한 사람은 먼저 물건을 만들고, 나중에 생각한 사람은 나중에 물건을 만듭니다. 삶의 제도도 생각이 만듭니다. 그래서 먼저 물건을 만든다. 그러면 먼저 생각한다는 뜻이에요. 먼저 생각하면, 앞서가게 됩니다. 이것이 선진국의 특징입니다. 중진국은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물건과 제도들을 삶 속에서 적용하거나, 사용하거나, 수용하는 일을 하죠.
우리나라는 어느 단계냐? 우리나라는 지금 중진국 상위레벨 입니다. 물론 얼마 전에 국제적으로 후진국 레벨이서 선지국 레벨로 들어갔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말하는 선진국은 지금 우리가 말하는 선도력을 가진 선진국과는 다릅니다. 그때 우리나라가 편입되고 나서 선진국은 세계 32개국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도력을 가진 단계에서 선진국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략국가를 선진국이라고 부르죠. 우리는 지금은 선도력을 가진 선진국 레벨은 아니고 중진국 상위 레벨에 있는, 그것도 최상위 레벨에 있는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선진국적인 면도 보이지만, 아직은 우리가 중진국 상위레벨로 포함된다고 인식하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논쟁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논쟁은 여전히 제도논쟁입니다.공수처를 만들 것이냐, 안만들 것이냐, 검찰제도를 어떻게 바꿀 것이냐, 정치제도를 어떻게 바꿀 것이냐, 교육제도를 어떻게 바꿀 것이냐. 이것을 개혁이라는 말로 하지만, 이 개혁은 전부 제도 높이 이상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철학 논쟁, 문화 논쟁은 시작되어 본 적은 없습니다. 물론, 이데올로기 논쟁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데올로기 논쟁은 가장 높은 수준의 사유인 철학이나, 문화논쟁으로 포함시키기에는 수준이 낮습니다.
우리는 왜 제도 논쟁까지만 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실력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도 논쟁 너머의 것들은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체적으로 경험되고 감각되는 물건의 높이에만 시선이 작동되는 사람들은 제도도 현실적인 것으로 보이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한 단계 더 도약한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제도 논쟁에서 철학 논쟁, 제도 논쟁에서 문화 논쟁으로 상상한다는 것입니다. 생각으로 만들어진 제도보다는 생각 그 자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된다고 봅니다. (중략)
우리가 제도 단계까지 우리 삶의 수준을 일단 높였으면, 그 제도를 조정할 수 있고, 지배할 수 있는 생각하는 능력, 이것을 배양하는 데 힘을 쏟아야 됩니다. 그래서 제도가 생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제도를 지배할 수 있는 단계로 이제는 상승해야 합니다.